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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고통스런 피부병, 낫는다는 믿음이 최고 치료제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피부는 폐의 바로미터 … 폐 다스리는 치료하며 면역력 강화해야

▎조선 중기 한의들이 종기를 치료할 때 사용한 침과 칼. / 춘원당한방박물관 제공
문종(文宗)과 정조(正祖). 조선의 두 임금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종기로 인해 돌아가신 겁니다. 그 시대에 왕의 피부에 발병한 종기는 침으로만 치료할 수 있었습니다. 종기를 째고 환부를 도려내는데 쓰여야 할 칼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왕은 암살이 걱정됐고, 종기를 치료하는 어의(御醫)는 용체에 칼을 대었다가 자칫 종기가 악화해 왕이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다면 본인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요즘에야 종기는 별로 위중한 병이 아니지만 옛날에는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섭고 두려운 병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보면 조선의 임금 스물 일곱 분 중 열 두분이 종기로 고통을 호소하고 치료를 받으신 기록이 있습니다. 종기가 얼마나 심하고 안 낫던지, 임진왜란이 끝나고 난 다음인 1602년에는 전적으로 종기만 치료하는 치종청(治腫廳)을 설치하고 치종의(治腫醫)를 두었을 정도입니다.

종기 때문에 승하한 문종과 정조

치종의는 아홉 가지 종류의 침(九鍼)과 칼을 사용해서 종기를 치료했습니다. 그중에서 피침(鈹鍼)은 주로 곪은 곳을 째는데 사용했는데 가늘고 긴 형태가 화살촉 모양과 비슷합니다. 사진에 보이는 유물은 조선시대에 종기 치료를 담당하던 한의들이 시술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피침과 칼입니다. 종기를 째는 용도의 침이나 칼은 은이나 철로 만들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쇠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한의서에는 환부에서 피를 내거나 고름 주머니를 쨀 때에는 쇠로 만든 침과 칼을 마유(麻油)에 불을 붙여 달구어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종기가 심각했던 문종과 정조의 몸에 칼을 대어 치료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조선의 역사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조선시대의 피부병은 잘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해 피부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주변 위생 환경이 엉망인 것이 원인이 되어 주로 발병했습니다. 종기가 대표적입니다. 반면, 요즘의 피부병은 영양 과다로 인한 비만, 너무 잦은 목욕 등으로 피부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미세먼지, 스모그, 밀폐된 공간에서 거주하는 등 안 좋은 환경 때문에 주로 생깁니다. 조선시대에는 없었던 인스턴트음식, 유전자 변형음식, 가공식품, 식품첨가물, 항생제로 키운 어류나 육류, 유제품의 과다복용은 피부병을 유발합니다. 또한 밀폐된 공간, 수면 부족, 운동 부족, 스트레스는 피부병을 악화시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별로 없었던 새로운 피부병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태열(胎熱)이 대표적입니다. 태열은 태중(胎中)에서부터 열성 체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의미인데, 아토피성 피부염도 이름만 다르지 같은 맥락의 피부병입니다. 그래서 태열환자는 열 받을 일을 멀리하고 열성 식품을 피하고 환경적으로도 열이 안 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후 2개월 이상 된 아기 10명 중 한두 명은 태열 증세를 보이는데 호전과 악화를 반복합니다. 가려움, 붉은 발진, 진물, 각질, 부스럼, 딱지가 생겼다 없어졌다 하고 피부가 점점 두꺼워져서 코끼리 피부처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기는 태생적으로 열이 많습니다. 그래서 툭하면 열이 잘나고 찬물이나 찬 음식을 좋아하고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반면에 겉으로는 열이 있으나 속으로는 찬 체질인 소음인 아기도 30% 정도는 됩니다. 태열은 긁지 않는 것이 1차 치료입니다. 그러나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가려운 것은 참기 어렵습니다. 한번 긁기 시작하면 계속 긁게 됩니다. 긁지 못하게 말리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가려움을 정 못 참을 때에는 환부에 냉찜질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지퍼 백에 얼음이나 식품용 보냉제를 넣고 수건을 감싼 다음 환부에 대어주면 가려움이 훨씬 완화됩니다. 30초간 대어주고 3분 정도 떼어낸 다음 다시 30초 정도 대어주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야 피부가 손상되거나 감기 걸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태열은 폐 약하고 위에 열 많으면 생겨

동의보감에서는 태열은 폐가 약하고(肺虛) 위에 열(胃熱)이 많은 체질에서 생긴다고 했습니다. 위와 폐로 들어온 독소가 폐를 상하게 하고 열을 발생해 피부로 증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폐와 피부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피부는 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가렵거나 반점이 생겼다는 것은 피부의 면역력이 떨어지고 폐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때에는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도 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들 질환의 초기에는 생지황, 금은화, 연교 등의 청열해독(淸熱解毒)시키는 약을 써서 치료하고 증상이 없어지면 황정, 하수오, 맥문동 등의 자음보혈(滋陰補血)시키는 약으로 몸의 진액을 보충해주고 체질과 피부의 면역력을 강화시켜주는 치료를 합니다. 이때 대변으로 체내의 독소를 빼주면 더욱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방 치료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스테로이드제를 장기 복용한 환자들은 치료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해독치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진물이 심하지 않고 몸이 냉한 체질은 짬짬이 온천욕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사정상 온천욕이 어려운 경우에는 한약재를 이용한 목욕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고삼(苦蔘), 형개(荊芥), 백선피(白鮮皮)를 각각 30g씩 1.8L의 물에 2시간 정도 담가 놓습니다. 약재가 들어가 있는 채로 5분간 끓인 후 약재는 건져내고 이 물을 목욕물에 섞습니다. 적당히 전신욕을 한 다음 머리만 감고 잠자리에 들면 됩니다.

피부병으로 한약을 복용하고 있는 중이라면 달이고 남은 한약재를 받아다가 재탕한 후에 그 물을 목욕물에 섞는 것도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됩니다. 태열환자는 때를 밀지 말아야 합니다. 비누칠도 꼭 필요한 부위에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에는 적정 습도를 유지하고 실내 온도는 항상 선선하게 해야 합니다. 인스턴트음식, 유제품, 계란, 고기는 되도록 적게 먹고 채식을 위주로 한 균형 잡힌 체질식이 필요합니다. 피부 마찰이나 조임이 없는 순면으로 된 옷을 입고 실내의 페인트나 벽지도 친환경 제품으로 되었는지 챙겨봐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런 것보다도 태열이나 아토피 환자는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것이 완치의 필수조건입니다. 오래된 태열이어도 환자가 나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못 고칠 바도 아닙니다.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68호 (2017.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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