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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하는 전통의 패션 강자, 돌파구는] SPA·스포츠 키우고 중저가·아웃도어 통폐합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이랜드·삼성물산 해외 진출 승부수 … LF·신세계 사업 다각화 나서

▎LF 편집숍 '어라운드코너' 가로수길점. LF는 라이프 스타일 편집숍, 주류 사업 등 이종 산업에 진출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믿을 것은 SPA(제조·유통 일괄)와 스포츠 의류뿐이다.”

한 패션업체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장기화된 경기 불황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며 팔리는 옷은 오직 기능성을 갖춘 스포츠 의류와 저가 SPA 브랜드뿐이라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애슬레저(운동·여가를 즐길 때 입는 스포츠 의류) 열풍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웃도어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반면, 일상생활과 운동할 때 모두 입을 수 있는 피트니스 컬렉션이 인기를 끌며 패션 업계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룰루레몬’ ‘아보카도’와 같은 해외 애슬레저 브랜드가 국내 시장에 속속 진출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의류 브랜드 ‘언더아머’도 국내 시장에 직접 진출을 앞두고 있다. SPA 브랜드 역시 스포츠·애슬레저 라인을 강화해 글로벌 트렌드를 발 빠르게 반영했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지난해 국내 스포츠웨어 시장 규모를 전년 대비 5.8% 성장한 6조9807억원으로 추정했다. 업계 또한 국내 애슬레저 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전체 스포츠웨어 매출의 10% 가량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나금융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애슬레저 시장 규모는 1조5000억원, 2018년에는 2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요가 등 애슬레저 전문 브랜드 국내 속속 상륙


이 같은 흐름을 타고 스포츠 의류는 올해 패션 업계의 최대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LF는 여성복 질스튜어트 내 스포츠 라인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LF 관계자는 “요가와 피트니스 등 애슬레저 의류에 초점을 맞춰 디자인과 기능성을 갖춘 전용 라인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형지는 자사 아웃도어 브랜드 와일드로즈를 통해 지난해 애슬레저 라인을 전년 대비 30%가량 확대했다.

반면 패션 업계의 매출을 이끌던 여성복·캐주얼 브랜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브랜드 통폐합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월 남성복 브랜드 ‘엠비오’ 사업을 중단한다. 론칭 20년을 넘긴 장수 브랜드임에도 부진한 실적을 견디지 못했다. 여성 액세서리 브랜드 ‘라베노바’는 출시 1년 만에 정리됐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남성복 브랜드 라인을 단순화해 브랜드 효율을 높이고, 내실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랜드그룹은 지난해 재무구조 개선 방안의 하나로 주력 사업인 ‘티니위니’를 중국 패션 업체인 브이그라스에 59억 위안(약 1조원)에 매각하는 등 최근 2~3년간 상당수 브랜드를 정리했다.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던 LS네트웍스는 ‘프로스펙스’만 남겨두고 ‘몽벨’ ‘스케쳐스’ 등 다른 브랜드를 모두 정리했다. 희망퇴직을 통해 전체 직원의 절반 가량을 감축하는 등 몸집 줄이기에 안간힘이다. ‘조프레시’ ‘포에버21’ 등 SPA 브랜드 역시 국내 사업을 철수하거나 수익성이 악화돼 매장을 정리했다.

고가 브랜드는 백화점, 저가 브랜드는 온라인에 집중


▎2015년 중국 상하이에 문을 연 이랜드 신발 SPA 브랜드 슈펜 매장.
높은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는 백화점 대신 온라인망으로만 사업을 전개하는 브랜드도 있다. 형지는 북유럽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케이프’의 오프라인 사업을 접고, 온라인에서만 판매하기로 했다. 전국 70여 개 매장은 형지의 다른 브랜드로 운영한다. LF는 지난해 말 중가 브랜드 ‘질바이질스튜어트’와 ‘일꼬르소’의 백화점 매장을 철수시켰다. 두 브랜드는 온라인 유통망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LF 관계자는 “현재 패션시장이 고가와 저가로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고급 브랜드는 백화점 사업에, 중저가 브랜드는 온라인에 집중해 각각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유통 채널에서 판매한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린 곳도 있다. 2009년 국내 첫 SPA 브랜드인 ‘스파오’를 론칭한 이랜드는 2013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스파오를 비롯해 여성복 SPA 브랜드 ‘미쏘’와 신발 SPA 브랜드 ‘슈펜’을 중국에 선보인 이랜드는 중국 내에서 현재 44개 브랜드, 730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20년까지 전 세계 1만 개 SPA 매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영캐주얼에 머물던 SPA 브랜드를 여성복·캐주얼·신발 등으로 세분화해 론칭 3년 만에 1000억원대 브랜드로 키운 이랜드는 올해도 SPA 브랜드의 전문화·세분화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 캐주얼 브랜드였던 ‘후아유’를 SPA 브랜드로 전환한 데 이어 캐릭터 생활용품 SPA 브랜드 ‘버터’를 론칭해 영역을 확장했다. 2015년엔 액세서리와 시계·잡화 등 4000여 가지 상품을 파는 잡화 SPA 브랜드 ‘라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랜드 측은 “글로벌 경기가 악화된 가운데 SPA 시장은 올해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며 “올해는 인도·베트남 등지에 자체 생산공장을 확대하는 등 가격 경쟁력을 더욱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9월 ‘에잇세컨즈’를 중국 상하이에 론칭한 데 이어 여성복 ‘구호’로 뉴욕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1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에잇세컨즈는 2020년까지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 매출액 10조원을 달성할 계획이다. 구호는 최근 홍콩의 레인크로포드 백화점에 이어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과 입점 계약을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자사 브랜드 ‘지컷’과 여성복 ‘보브’의 중국 진출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반영하듯 올해 인사에서 해외 유통에 경험이 많은 차정호 신임 대표를 선임했다. 차 대표는 2015년까지 호텔신라에서 면세유통 사업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신세계인터내셔날이 본격적으로 해외 패션사업을 강화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섬은 지난해 ‘시스템’과 ‘시스템옴므’를 통해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백화점·쇼핑몰 패션 전문 유통 기업인 ‘항저우지항실업유한공사’와 5년간 836억원 규모의 독점 유통 계약을 하면서 글로벌 브랜드 육성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O2O 서비스 강화로 유통 채널 확대


모바일 플랫폼을 중심으로 온·오프라인(O2O)을 연계한 유통채널도 강화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2015년 출시한 모바일 ‘SSF샵’은 출시 1년 만인 지난해 10월 기준 매출액이 222%나 증가했다. 이에 삼성물산은 전면적인 개편을 통해 고객 유입률을 높이고 전국 50여 개의 직영매장과 연계를 강화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을 수 있고, 반품·교환도 가능하다. 박솔잎 삼성물산 패션부문 온라인 사업담당 상무는 “패션산업에서도 온라인 비즈니스가 점차 중요해지는 점을 고려해 모바일 환경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펼쳐 경쟁력을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섬도 지난해 업계 최초로 글로벌 모바일 사이트를 열며 유통 채널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40여 개국에서 ‘타임’과 ‘시스템’ 등 주요 브랜드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올해는 취급 브랜드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LF도 모바일숍 ‘LF몰’ 애플리케이션을 전면 리뉴얼 하는 등 온라인몰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삼성패션연구소 측은 “경기 침체 탓에 현상 유지에 급급했던 패션 업계가 올해는 본격적인 활로 모색을 위한 공격 경영을 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패션사업 외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LF는 1월 4일 주류 사업 진출을 전격 발표했다. LF는 주류수입 유통전문기업 ‘인덜지’ 지분을 50% 이상 인수해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인덜지는 스파클링 와인 ‘버니니’와 프리미엄 테킬라 ‘페트론’ 등을 수입해 국내에 독점 유통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하반기 중 강원도 속초에 맥주 증류소 공장을 설립하고, 소규모 맥주(크래프트비어)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LF는 앞서 침구·화장품 사업 진출과 동아TV 인수 등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뷰티사업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이탈리아 화장품 제조 업체인 인터코스그룹과 손잡고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를 설립했다. 현재 경기도 오산시에 제조 공장과 R&D(연구개발)센터를 건립 중이며 이르면 올해부터 제품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신세계 그룹과 연계해 백화점 뷰티 유통채널 ‘시코르’와 드럭스토어 ‘분스’ 등을 이용해 매출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1369호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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