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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1) | 동물들의 겨울나기] 5g짜리 작은 새가 혹한을 이겨내는 비결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체온 유지 위해 쉼없이 움직여... 생존 위한 치열한 열정과 독창적 전략으로 무장

36억 년 동안 진행되어온 생명의 역사에는 켜켜이 쌓인 생존의 지혜가 있다. 수많은 생명체들이 끊임없이 생존 가능성을 시도하고 터득해온 덕분이다. 많은 경영자가 자연 다큐멘터리를 ‘필수 취미’로 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와 최고경영자(CEO)에게 필요한 자연의 지혜를 경영의 관점에서 소개한다. [편집자 주]


얼마 전 20년 넘게 사업을 해온 사장이 긴 한숨을 토해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통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하긴 요즘 누구인들 그렇지 않을까. 겨울은 끝나가고 있지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마음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얘기를 듣다 보니 생각나는 자연의 생존기가 있어 공유한 적이 있다. 그는 “힘이 됐다”며 ‘전선’으로 돌아갔다. 다음은 그 이야기이다.

요즘 가까운 겨울 산에 올라보면 의외의 등반객들이 있다.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날아다니는 아주 작은 박새들이다. 손에 쥐여 보면 공간이 한참 남을 정도로 작다. 엄지보다 조금 큰 10cm를 조금 넘을 정도다. 그래도 얼마나 눈이 좋은지 뭐라도 흘리면 쏜살같이 달려와 ‘사냥’해 간다. 손바닥에 땅콩 같은 걸 놓고 손을 높이 들면 못 믿겠다는 듯 경계심을 보이다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채간다. 언젠가 아빠를 따라온 한 초등학생이 궁금한 듯 물었다. “아빠, 이렇게 추운데 쟤네들은 뭘 먹고 살아요?” 아빠의 대답은 간단했다. “글쎄, 뭐든 먹고 살겠지.” 문득 궁금해졌다. ‘겨울 산은 혹독하리만큼 춥고 먹을 것도 없는데 저 녀석들은 뭘 먹고 살고, 기온이 더 내려가는 밤은 또 어떻게 보내는 걸까?’

베르그만 법칙이라는 게 있다. 추운 곳에 사는 동물일수록 덩치가 크고, 또 커져야 잘 살 수 있다는 법칙이다. 특히 같은 종일수록 그렇다. 열 표면적이 넓을수록 열을 많이 잃기 때문에 추운 곳에서 잘 살려면 덩치가 클수록 유리하다. 같은 돌이라도 큰 돌은 더 천천히 식고, 작은 돌은 빨리 식는 이치와 같다. 북극곰이 아래쪽 위도의 곰들보다 크고, 북유럽인들이 지중해 근처의 남유럽인보다 큰 이유다. 이 법칙으로 보면, 이 작은 박새들은 혹독한 겨울에서 살아있을 수 없어야 한다. 덩치가 훨씬 큰 우리 인간도 체온이 몇 도만 떨어지면 응급실로 달려가야 하지 않는가.

겨울은 혹독한 생존의 시험대


▎사진:중앙포토
사실 박새뿐만이 아니라 겨울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위기의 계절이다. 숲과 들판에 가득했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온 세상이 텅 비는 시공간이 되고, 눈이라도 내리면 하얀 사막으로 변해버리는, 말 그대로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에 생명체들은 보통 세 가지로 대응한다. 추워서 못 살겠으니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고(철새), 춥고 먹을 게 없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고라는 듯 겨울잠(동면)을 선택한다(개구리와 곰). 마지막으로 드물지만 정면으로 겨울을 돌파하는 녀석들이 있다. 박새 같은 텃새들이 이런 녀석들인데 겨울을 이겨낼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박새들은 다른 새들보다 더 높은 체온(42℃)으로 겨울을 이겨낸다. 문제는 이 체온을 유지하려면 다른 새들보다 더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겨울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을 일찌감치 가진 사람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생물학과 교수를 지내다 모든 걸 뒤로 하고 미국 동부의 숲 속으로 들어간 베른트 하인리히라는 학자다. 울창한 숲 속에 통나무집을 짓고 사는 그는 몇 년에 한 번씩 신선한 충격을 담은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내놓는 ‘현대판 헨리 소로’이기도 하다.

어느 겨울, 숲 속을 탐색하던 그에게 문득 궁금증 하나가 날아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숲 속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작은 상모솔새들이 어떻게 겨울을 날까,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보통 영하 20℃를 오르내리고, 한겨울 밤에는 영하 30℃까지 내려간다. 눈보라에 매서운 바람까지 불면 체감온도는 영하 50℃ 가까이 내려간다. 이뿐인가. 작은 햇볕이라도 쬘 수 없는 밤이 15시간 이상씩 계속 된다. 더구나 상모솔새는 박새보다 더 작다. 약 10cm 정도의 길이에 무게는 5g 정도이니 딱 어른 엄지만 하다. 더 의아했던 건 얼음장 같은 밤을 보낼 따뜻한 보금자리(둥지)를 짓지도 않고 겨울을 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엔 연구 과제가 되었다. 그는 이 내용을 담은 책 [동물들의 겨울나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겨울이라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놀랍고 독창적인 전략을 진화시켜온” 이 작은 새는 “겨울 세계의 표상이다.” 이 새들만의 비결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베르그만의 법칙을 무색하게 하는 상모솔새의 첫 번째 비결은 누구보다 촘촘한 깃털로 단열 공기층을 확보하는 것이다. 깃털을 잔뜩 부풀려 덩치를 키우면 따뜻한 공기층을 조금이라도 더 크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날기 위한 깃털보다 단열을 위한 깃털을 4.5배나 더 많이 갖고 있다. 체중의 7.4%를 단열에 투자하는 것이다. 묘한 건 하인리히가 자신이 숲 속을 돌아다닐 때 입었던 겨울 장비, 그러니까 옷과 신발을 측정해보니 수치가 비슷했다는 점이다.

이걸로 혹독한 추위를 이길 수 있을까. 턱없이 부족하다. 추워지면 이 작은 몸은 상상을 뛰어넘는 열 손실을 시작한다. 영하 34℃일 때 최소한 1분에 13칼로리를 열로 발생시켜야 살아있을 수 있는데, 체감온도가 낮아진다면 열 손실은 더 커진다. 작은 몸으로 겨울을 이기려면 남들이 가지지 않는 것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이 녀석들도 박새처럼 높은 체온 전략을 쓴다. 다른 새들보다 3℃ 정도 높고 박새보다 1~2℃ 높은 43~44℃나 되는 체온이다. 몸집이 작으니 체온을 더 올리는 것이다(인간이 이 정도 체온이 되면 살아있을 수 없다).

베르그만 법칙 무색케 하는 상모솔새


문제는 박새들이 그렇듯 영양가 높은 먹이를 많이 먹어야 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녀석들은 이른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숲을 뛰어다닌다. 추위와의 격전을 치르고 난 아침에는 칼로리가 거의 바닥난 상태라 한두 시간만 먹지 못해도 죽을 수 있다. 마치 월급을 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어 다시 죽어라 뛰어다녀야 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처럼 말이다. 측정을 해보니 1분에 평균 45회나 뛰고 날고 있었다. 1, 2초에 한 번씩 뛰고 나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종일!

하지만 겨울은 텅 빈 공간. 나무 열매는 다 떨어졌고 눈은 두껍게 쌓였는데 뭘 먹는 걸까. 위장 속을 확인해보니 생각지도 않은 내용물이 들어있었다. 땅속에서 겨울을 난다는 자벌레 유충들이었다. 알고 보니 이곳 자벌레 유충들은 겨울을 보내고 있었고 숲 속을 부지런히 탐색하던 상모솔새들이 이걸 찾아낸 것이었다. 유충들은 아주 작은데다 나무와 구별이 안 되게끔 완벽하게 위장을 해서, 우리는 눈앞에 두고서도 얼른 찾아내지 못할 정도다. 콩알만한 녀석의 뇌를 분석해 보니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었다. 전체 몸무게에서 뇌가 차지는 비율이 6.8%나 됐다. 동물계에서 전체 몸 대비 뇌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분수라고 할 정도로 큰 우리 인간(약 1.9%)보다 훨씬 높다. 혹한이라는 위기를 이겨내려면 보통 ‘머리 쓰기’로는 힘들다는 걸까. 이 좋은 머리를 가졌는데 왜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따뜻한 보금자리(둥지)를 만들지 않을까. 아침이면 칼로리가 바닥을 드러내다 보니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데 급급해 둥지를 지을 시간조차 없는 걸까.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새끼를 키울 때 녀석들은 둥지를 짓는다. 문제는 이 둥지에는 덮개가 없어 쌓인 눈이 깃털을 적실 경우 그렇지 않아도 덩치가 작은 녀석들이라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겨울에는 사소한 것이 생사를 결정하는 일이 많은데 깃털이 젖으면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녀석들은 결점이 있는 둥지를 포기한다. 마치 고정비용을 아끼려는 회사가 사옥을 갖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15시간이 넘는 긴긴 밤을 이겨낼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잠을 잘 때 체온을 낮춘다. 물질대사를 낮추는 휴면이다. 대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가 추울 때 덜덜 떨어 체온을 조절하는 것처럼 격렬한 몸 떨림을 밤새 견뎌야 한다. 녀석들보다 좀더 큰 북미쇠박새들도 다른 새들보다 높은 체온(42℃)를 갖고 있는데 잘 때는 30~32℃로 10~12℃ 정도 낮춘다. 우리로 치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혹독한 겨울 밤을 이겨낼 수 없다.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겨울 숲을 뛰어다니는 녀석들이 항상 두 마리에서 다섯 마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알래스카 에스키모들이 엄청나게 추운 날 썰매를 끄는 허스키 개들과 함께 껴안고 자듯이 다 같이 함께 모여 온기를 나누는 것이다. 녀석들이 하루 종일, 단 몇 초도 조용히 입을 다물지 않는 것도 넓고 울창한 숲에서 난로 역할을 해줄 동료가 밤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주는 마법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연에 맡길 문제가 아니니 낮부터 서로 끊임없이 의사를 확인하고 위치를 확인해서 헤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무리지어 겨울 밤 버텨

놀라운 것은 겨울이 되면 같은 종뿐만 아니라 종이 다른 새들끼리도 무리를 이루어 같이 지낸다는 것이다. 상모솔새는 자기네들보다 조금 더 큰 북미쇠박새와 함께 무리를 이룬다. 무리를 이루면 눈이 많아져 포식자를 빨리 발견할 수 있는데다 밤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다. 겨울 숲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새들에 이런 현상이 많은 것은 서로 먹는 먹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종 업종 협력의 전제 조건은 어디서나 같은 듯 하다.

그럼에도 이 작은 새가 겨울을 무사히 보낼 확률은 높지 않다. 순백색의 아름다운 겨울 숲은 보기와는 달리 불확실성이 워낙 크고 위험천만한 곳인 까닭이다. 녀석들은 이런 손실을 종 차원에서 보전하는 생존전략을 갖고 있다. 다른 새들과는 달리 번식기에 ‘두 집 살림’을 한다.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라 한 부부가 두 개의 둥지를 만들어 차례로 8~11개의 많은 알들을 낳는다. 생존의 한계점에서 살아야 하고 단열과 보온 효과는 뛰어나지만 무거운 깃털 코트로 인해 높아지는 사망률을 높은 출산율로 상쇄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은 새들은 마법의 열쇠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고 독창적인 여러 능력을 개발한 덕분에 위기를 ‘뜨겁게’ 헤쳐나가고 있었다. 하인리히는 이렇게 말한다.

“끝없이 뛰고, 날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상모솔새를 볼 때면 그 엄청난 열정에 전염되는 것 같고 삶에 대한 크고 한없는 열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게 없이는 그 가혹한 세계를 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물리학의 법칙을 거부하며 놀라운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과연 그렇지 않은가. 상모솔새라는 단어 대신 중소기업 사장을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살아가는 원리는 같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라는 위기는 역설적으로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혹독한 환경과 먹고 사는 문제,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진다. 생과 사가 아주 짧은 시간에 결정되기에 어떤 생명체의 세상을 살아가는 힘, 다시 말해 생존능력이 어느 정도인지가 간결하고 명료하게 드러난다. 겨울이야말로 생존의 진정한 시험대이다. 이 작은 새들은 자기만의 능력을 끊임없이 터득한 덕분에 겨울이라는 위기를 이기고 봄을 맞는다. 올해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어떤 나만의 능력으로 이 혹독한 겨울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박스기사] 상모솔새는 어떻게 혹한을 견딜까

- 촘촘한 깃털. 보온용 깃털에 많은 투자를 해서 기본적인 온기를 확보한다.
- 뜨거운 체온. 다른 새들보다 뜨거운 피로 1초도 쉬지 않고 하루 종일 뛰어다닌다.
- 엄청난 뇌 크기. 신체 대비 뇌 비율이 6.8%나 된다. 우리 인간의 뇌 비율은 1.9%다.
- 함께하는 따뜻한 밤. 밤이면 공동 숙소를 만들고, 팀워크를 위해 끊임없이 의사소통한다.
- 두 집 살림. 개체 차원의 손실을 높은 출산율로 보충하는 종 차원의 전략을 갖고 있다.

[박스기사] 당신은 …

- 위기에 대비한 투자를 얼마나 하고 있는가?
- 뜨거운 피로 누구보다 많이 뛰고 있을까?
-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
- 어려울 때 온기를 나눌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가?
- 작은 실패를 상쇄할 큰 전략(대비책)이 있는가?

상모솔새: 노랗거나 붉은 머리 깃털이 마치 상모(象毛)처럼 나 있어 붙은 이름이다. 상모란 풍물놀이에서 쓰는, 벙거지 꼭지에 붙인 털 같은 장식을 말한다. 상모솔새는 흔치 않지만 서울 부근 겨울 산에서도 볼 수 있다. 주로 북미와 서유럽, 그리고 동북아시아에 서식한다. 서유럽에서는 철새로, 북미와 동북아시아에서는 텃새로 산다. 텃새지만 추워지면 좀더 지내기 좋은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부근 겨울 산에 나타나는 녀석들은 북한에서 오고, 이 시기에 북한에 사는 녀석들은 그 위쪽에서 내려오는 식이다.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1373호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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