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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교수의 ‘중소기업 강국으로 가는 길’(2)] ‘大-中’ 갈등보다 ‘中-中’ 갈등 먼저 풀어야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중기 대부분은 대기업 아닌 중소기업에 납품 … ‘갑질’만큼 ‘을의 병에 대한 횡포’도 심각

▎많은 대기업이 동반성장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공정 거래의 핵심인 중소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사회 갈등은 깊어졌다. 그러나 선진국과 한국은 달랐다. 미국이나 유럽은 1%의 가진 자와 99%의 덜 가진 자의 갈등이었다. 우리는 대기업(1%)과 중소기업(99%)의 갈등이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추진한 배경이다. 이후 동반성장은 경제민주화로 바뀌었다.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의 새로운 이름이다. 목적이 다르지 않다. 어찌 됐던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 모두 여기에 매달렸다. 8년여가 지났다. 달라진 것은 없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많은 관심에도 정책의 현장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중소기업은 아직도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과거보다 심드렁해졌고,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통계는 숫자라 건조하다. 그러나 잘 뜯어보면, 정책의 오류와 방향이 보인다. 동반성장이나 경제민주화가 더딘 이유가 보인다.

한국의 사업체 수는 354만5473개(2014년)다. 대기업은 0.1% (3213개)고, 중소기업은 99.9%(354만2350개)다. 중소기업 중 제조업은 40만 개가 채 되지 않는다. 이를 종사자 규모별로 구분하면, 종사자가 5인 이하인 사업체가 67.9%(26만 6478개)다. 영세 제조 중소기업이다. 아쉽게도 5인 이하 제조 중소기업에 대한 통계는 없다. 국가 통계는 종사자 5인 이상인 12만 6187개를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들을 들여다보면,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가 더딘 이유를 알게 된다.

한국의 제조 중소기업은 계열화를 통해 성장했다. 계열화는 생산 측면에서 분업이라고 말하며, 판매 측면에서 납품이라고 말한다. 중화학공업은 최종재를 만들기까지 많은 공정과 부품이 필요하다. 그래서 납품이 중요하다. 1975년 정부가 계열화촉진법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계적으로 납품하는 기업을 수급기업이라고 한다. 수급기업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파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에 판다. 다른 기업에 판다는 것이 흔히 말하는 납품이다. 12만여 제조 중소기업 중 수급기업은 46%(5만8298개)에 달한다. 나머지 기업은 단순 제조로 소비재를 만들어 시장에 팔고 있다. 수급기업의 납품 대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뉜다. 6만여 개 수급 중소기업 중 대기업과 거래를 하는 기업은 14.7%(8569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27.4%(1만5973개)다. 이 두 집단을 합쳐도 42.1%(2만4542개)로 절반이 되지 않는다. 전체 중소기업을 놓고 보면, 0.7%도 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경제민주화인가?


결국, 수급 중소기업의 57.9%(3만3754개)는 중소기업과 납품 관계를 맺고 있다. 여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5인 이하 제조 중소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납품한다. 이를 고려하면, 중소기업의 수급과 납품은 대부분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발생함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의 동반성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를 바로 잡고자 함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납품 단가다. 대기업은 수출경쟁력을 이유로 납품 단가 인하를 압박한다. 여기게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도 이를 반영해주지 않는다. 의존도가 워낙 높기에, 목줄을 죄고 있기에, 대기업은 늘 ‘갑’이었다. 중소기업은 힘없는 ‘을’이었다. 이에 우리 사회는 대기업의 ‘갑질’을 질타했다. 통계대로라면 중소기업 간 납품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도 말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의 하청은 밑으로 꼬리를 물고 내려가기 때문에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제대로 반영하면 나머지 하청기업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말이다. 틀린 말이다. 한국 중소기업은 90% 이상이 2차 하청에서 끝난다. 분업구조나 계열화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진정한 동반성장은 중소기업 간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숨어있는 문제가 있다. 대·중소기업 간 갈등에서 우리는 적어도 중소기업 편을 들어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간 갈등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기 어렵다. 중소기업 간 거래에서 강자는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소위 ‘잘나가는 중소기업’이다. 지난해 추석 때, 30대 대기업은 현금과 현금성 결제 비중이 97.9%에 달했다. 어음결제는 2.1%에 불과했다. ‘잘나가는 중소기업’은 현금을 손에 쥐었다. 중소기업 간 거래는 어음결제가 여전하다. 추석 상여금을 위해 어음 할인을 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중소기업 사장의 지친 얼굴이 떠오른다.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명확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전속고발제는 공정위의 고발 없이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제도다. 충분하지 않은 탓에 경제민주화의 하나로 3년 전 여야 합의로 의무고발제도를 도입했다. 검찰, 감사원, 조달청, 중소기업청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한다.

최근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가 이슈로 등장했다. 이를 폐지하면 누구나 공정 거래 위반을 고소·고발하고, 공정위는 물론 검찰과 경찰도 관련 수사를 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 더욱 많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대기업의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자 함이다. 앞서 말한 통계를 다시 보면, 과연 누구를 위한 전면 폐지인지 명확해진다. 결국, 중소기업 간 거래가 공정거래의 실체인데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아직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문제에 집착한다. 엄청난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중소기업 간 문제에만 집착 말아야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갈등의 연속이다. 갈등은 사회의 분절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갈등을 순리대로 풀지 못했다. 목소리가 큰 사람 소리에만 집중했다. 집단의 이기주의로 갈등을 풀었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그러하다. 정치권도 그런 집단을 대변하기 바쁘다. 침묵하는 다수에 관해 관심도 없다.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려간다면 침묵하는 다수의 고통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대기업과 ‘잘나가는 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만 되면,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은 아예 관심에서 벗어날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은 정직한 관점에서,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다.

1373호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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