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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 논란 부른 상법 개정안 어디로] 재계 “다가올 2라운드(대선 주자의 재벌개혁 공약)가 더 걱정” 

 

남승률 기자 nam.seungryul@joongang.co.kr
타격 큰 조항 2월 임시국회에선 빠져...규제보다 기업 내부통제 시스템 작동에 초점을

여당·재계와 야당·시민단체가 첨예하게 맞섰던 상법 개정안 논란이 일단락됐다. 2월 임시국회에서 재계에 타격이 클 조항은 통과되지 않았다. 다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 반재벌 정서가 강해졌다는 점에서 언제든 재연될 소지가 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대선 주자들이 경제공약의 핵심 사항으로 재벌개혁을 내세우고 있어서다. 국내외 경제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계는 과도한 ‘경제 옥죄기’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분위기상 목소리를 크게 낼 상황은 아니라 속이 탄다. 재벌개혁 논란을 부른 상법 개정안의 내용과 문제점 등을 짚었다. 개선되고 있는 총수 일가 사익 편취 현황, 현재진행형인 재계 3·4세 경영승계 움직임도 살펴봤다.


“2라운드가 더 걱정입니다.”

여당·재계와 야당·시민단체가 첨예하게 맞섰던 상법 개정안 논란에 대한 대한상공회의소 고위 관계자의 반응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는 재계에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수 있는 조항은 통과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가올 대선 정국에서는 이번에 빠진 쟁점이 야권 후보의 공약으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커서 재계가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논란이 된 상법 개정안 조항은 크게 6가지였다. ▶이사회 독립성 제고를 위한 감사위원 분리 선출 ▶소액주주 권한 강화를 위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전자투표제 의무화, 주주대표 소송제 강화 ▶재벌 총수가 비상장 자회사를 통해 사익을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재벌 총수의 편법 지배력 강화에 제동을 걸기 위한 자사주 신주 배정 금지다.

야권에서는 지난해 “재벌의 후진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상법 개정안을 잇따라 내놨다. 실제로 개정안 내용은 대부분 이사회 독립성 확보와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로 대주주를 견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 재벌개혁 목소리가 더욱 커지자 정부와 여당, 재계는 ‘경제 옥죄기’라며 반발해왔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월 2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초청 조찬 강연에서 “상법 개정안을 도입해야 한다면 경영권 방어제도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 사령탑인 유 부총리가 상법 개정안과 관련해 경영권 방어수단의 병행 입법을 제시한 건 처음이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이날 “최근 정치권에서 쏟아내는 규제 법안을 보면 걱정이 많이 된다”며 “20대 국회에서 지금까지 약 580개 법안이 발의됐는데 그중 407개가 규제 법안이고 나머지가 지원 법안”이라고 섭섭함을 나타냈다.

그나마 여야의 의견 차이가 적었던 쟁점은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다. 둘 다 재벌 오너의 경영권 문제와는 상관관계가 높지 않아 상대적으로 합의점을 찾기가 수월했다. 전자투표제는 주주총회에 가지 않고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는 제도다. 개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한해 전자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주주총회에 참석할 수 없는 주주들에게 권리 행사의 기회를 부여하고 정족수 확보를 통한 주주총회 활성화와 외국인 주주의 투자를 유도할 목적으로 2009년 5월 상법 개정 때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의무사항은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후 재벌개혁 목소리 커져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경영진의 임무 태만 등으로 자회사에 손해가 발생했을 때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여야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라는 총론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적용 대상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렸다.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비율 조건을 두고 야당은 30~50%를, 여당은 100%를 주장해서다. 세계적으로는 일본만 다중대표소송제를 채택하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는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100%를 가진 경우에만 다중대표소송을 허용하고 있다. 시간을 두고 지분 비율 제한을 낮춰가겠다는 포석이었다.

재계에서는 이 두 가지 안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재계 의견을 대변하는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전자투표로 의결권이 행사된 주식 비율은 2015년 1.62%, 2016년 1.44%에 불과했다"며 “전자투표제를 의무화해도 회사가 부담해야 하는 업무나 리스크에 비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에 대해 한 대기업 임원은 “자회사 경영진이 장기적 안목에서 결정한 투자를 모회사 주주의 이익을 단기적으로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소송에 나설 수 있다”며 “지분 조건이 100%이면 사람들이 알 만한 기업은 대부분 적용대상이 아니라서 큰 영향은 없긴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소송 남발로 기업 경영에 부담이 커지고, 장기적인 투자 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전자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만으로는 제대로 된 경제민주화 입법이라고 부르기 민망하다”며 “자유한국당 등에서는 내용도 모르고 무턱대고 (개정안을) 반대한다”고 비난했다.

전자투표제 의무화에만 여야 합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월 20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 부총리 초청 CEO 조찬 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정국이 대선 국면으로 본격 접어들면 국회에서의 입법활동은 주춤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야권의 이런 분위기는 대선 정국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여야 대선 후보의 경제공약 핵심은 경제민주화, 특히 재벌개혁 등에 무게가 실려있다. 진보 진영은 물론 보수 진영의 ‘잠룡’들 역시 성장론보다는 분배에 초점을 맞춘 경제개혁에 동참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다르다는 점을 내세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좀 더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을 강조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불공정한 산업 생태계나 경쟁구조를 바로잡는 것이 재벌개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예전부터 우리 경제를 재벌에 종속된 동물원에 빗대왔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 역시 성장론보다 경제민주화에 방점을 찍었다. 대기업 순환출자 구조 해소,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재벌 총수 사면·복권 금지 등에서 야권의 대선 후보들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럴 경우 휴화산으로 남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의무화, 주주대표 소송제 강화, 자사주 신주 배정 금지 조항도 활화산으로 바뀔 수 있다. 박용진 의원은 “대선 정국에 밀려 국회의 관심권에서 멀어질 수 있지만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기 때문에 언제든 통과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다. 기존 순환출자 3년 내 해소 의무화와 자사주 의결권 행사 금지 등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보험사가 갖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평가 기준을 취득가액에서 공정가액(시가)으로 바꾸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도 삼성을 필두로 재계를 짓누를 수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보험업법 개정안은 재벌개혁 관련 주요 법안으로 주목받았지만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는 관련 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주주에게 무기 몇 개 더 주는 게 과연 현명한가

재계 역시 대선 정국을 거치며 재벌개혁 바람이 더욱 거세질까 우려한다. 특히 상법은 기업 활동의 근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금도 상법의 각종 규제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에서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기업의 행태가 드러난 탓에 여론이 나빠지자 기업 규제를 덧씌우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야당이 잇따라 발의한 상법 개정안에 담긴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를 도입한 나라는 세계에 한 곳도 없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만 도입했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서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멕시코·칠레뿐이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러시아·필리핀·대만·이탈리아·중국 등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긴 했지만 기업이 자율적 또는 임의로 이를 채택할 수 있다.

김화진 교수는 미국 회사법의 발전 방향에 비춰 볼 때 ‘주주에게 몇 가지 더 강한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결정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경영진이 헤지펀드를 포함한 기관투자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라 주주를 보호해야 한다는 회사법의 전제 자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헤지펀드를 포함한 기관투자자는 속성상 기업의 중단기 실적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게 장기적으로 (소액)주주에게 도움이 되느냐는 것이다. 김 교수는 “미국 회사법 역사를 보면 ‘경영진·이사회 권한 강화→(소액)주주의 권리 확장→펀드·기관투자자 영향력 확대’의 과정을 거쳐왔는데 한국 상법도 동조화 움직임을 보여 왔다”며 “소액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결국 펀드·기관투자자만 웃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무게 실리는 스튜어드십 코드 적극 활용론

규제로 억누르기보다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준법경영·준법문화를 확산시키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규제만 자꾸 강화하면 결국 더 강한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며 “상법 규정은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의 강도인 만큼 대주주 견제는 개별 기업의 기존 내부통제 시스템이 더욱 잘 작동하도록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상의는 지난해 도입이 확정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를 적극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상의 관계자는 “선진국에서 기업지배구조가 비교적 잘 자리잡은 것은 규제보다 기관투자가의 감시 역할이 컸다”며 “정부가 추진한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성화시키면 오너의 독단에 따른 경영 리스크를 꽤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374호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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