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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로가 만난 사람(2) |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정부가 청년들 공시족으로 내몰아”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
벤처 1세대에서 창조경제 전도사로... “창업은 실패할수록 성공 확률 높아져”

이민화(64)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은 개척자로 불린다. 벤처라는 말조차 낯설던 1985년 의료기기업체 메디슨을 창업했다. 1995년에는 벤처시장의 경영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했다. 초대 회장이었던 그는 96년 코스닥 설립, 97년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에 앞장섰다. 창업지원정책을 담은 벤처기업특별법은 세계 최초다. 그는 “나는 벤처시대가 열리기 전에 시작한 세대”라며 “지금 벤처 1세대라고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도 이때 만들어진 생태계 속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창조경제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때 그는 창조경제에 대해 공부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혁신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은 고등학교 2년 선배인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새로운 산업을 여는 개척자로서 그가 생각하는 한국 창조경제 해법을 듣기 위해서다. 지난 3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도곡동 캠퍼스에서 만났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이하 이민화): 어서 오세요. 잘 지내셨죠?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하 윤용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이사장님 활동하는 것을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실 것 같아요.

이민화: 한 달에 20~30회 정도 강의를 하고 있어요. 제가 1991년부터 지금까지 21권의 책을 냈는데 올해 4권의 책이 더 나와요. 여기(창조경제연구회)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발행하는 보고서도 내야하니 정신이 없긴 해요(웃음).

윤용로: 이사장님께서는 강의 중에 청년 일자리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지난 2월 통계에서 청년실업률이 10%까지 치솟았던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민화: 사실 매월 통계로 나오는 실업률에 일희일비하면 안됩니다. 단기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숫자로만 보니 정부도 단기정책만 쏟아내는 겁니다. 가령 실업, 교육, 출산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요. 지난 10년간 한국은 출산정책을 위해 80조원을 쏟아부었어요. 근데 성과가 있었을까요? G20 국가 가운데 한국 출산율(2013년 기준)이 1.2%로 가장 낮아요. 정부가 실업률 낮춘다고 정책들을 내놓지만 대부분 진짜 일자리가 아니라 가짜 일자리에요.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게 일자리를 마련하는 건가요? 일자리는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령 스타트업(startup) 벤처를 성장시켜가는 게 진짜 일자리를 만드는 거에요.

윤용로: 창업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사장님은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하셨는데 시작한 동기가 뭡니까?

이민화: 그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카이스트에서 초음파 진단기 연구를 끝냈는데 사업할 곳이 없었어요. 여러 회사에 가서 써달라고 설득했는데 모두 실패했어요. 결국 딱 한 명을 설득했죠. 바로 나에요(웃음). 같이 연구하던 7명에게 직접 해볼까 물어보니까 젊을 때 한번 말아먹자며 시작하게 됐죠.

윤용로: 창업 시작 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잖아요.

이민화: 새로운 일들을 많이 했어요. 메디슨은 2000년에 3500억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기록적이죠(메디슨은 지난 1990년 국내 의료기기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 국내를 대표하는 의료기기 업체로 성장했다. 이전에는 삼성과 글로벌 기업 제너럴 일렉트릭(GE)사가 1984년 합작해 세운 삼성GE의료기기가 1위였다). 당시 70개 나라에 기기를 수출하게 되니까 한국 의료기기 업체들도 우리를 통해 동반 진출했죠. 그때 산업 전체가 커지면서 한국 의료시장도 20% 성장했어요.

윤용로: 승승장구하던 메디슨이 2002년 부도가 났는데 원인이 뭔가요?

이민화: 내가 잘못해서 그렇죠.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이 꺼지면서 미국 나스닥 시장이 붕괴됐어요. 한국 코스닥 시장도 함께 폭락했죠. 그때 메디슨은 코스피 시장에 상장됐지만 메디슨 자회사들은 모두 코스닥 시장에 있었거든요. 당시 2조원에 달했던 자회사 주식가치가 10분의 1로 쪼그라들었어요. 메디슨에 대출해줬던 금융회사들이 빌려준 3000억원을 갚으라고 연락이 온 거죠. 거기서 파도를 넘지 못했어요.

메디슨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인수합병(M&A)을 통해 한때 23개 계열사 총 40개 회사를 보유했다. 메디슨은 2001년 자금난이 심해졌고 그해 10월 이 이사장은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메디슨 회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2002년 부도 처리됐다. 법정관리를 받던 메디슨은 2006년 6월 법정관리를 벗어난 후 칸서스 사모펀드(PEF)에 인수됐다. 2010년 메디슨은 시장에 매물로 나왔고, 삼성전자가 메디슨을 인수했다.

윤용로: 벤처시장에서는 떠났지만 이사장님에게는 그때 경험이 현재 활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현재 몸담고 계신 창조경제연구회가 뭔가요?

이민화: 말 그대로 창조경제를 연구하는 곳이에요. 지난 2009년 연구모임인 창조경제연구회를 만들었어요. 이후 2013년 당시 고정식 특허청장과 함께 사단법인으로 발족시켰죠. 1997년 영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가 영국 부활을 위해 창조산업을 추진하고, 2008년 유엔(UN)에서 창조경제보고서를 내놨어요. 전 세계에 창조경제를 얘기하는데 한국에서는 할 생각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해야겠구나’ 하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창조경제를 외치면서 관심을 받더라고요. 정부가 하니까 처음 하는 걸로 국민이 오해를 한 거죠. 전 세계가 이미 다 하고 있던 건데 말이죠.

윤용로: 다음 정권에 창조경제가 위축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민화: 영향을 받겠죠.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아요. 지난 2003년 당시 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국가개혁안인 ‘아겐다(Agenda) 2010’을 발표했을 때, 개혁안이 미진하다고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이 비판했어요. 그런데 메르켈이 총리에 올랐지만 슈뢰더 전 총리의 개혁안을 이어갔죠.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 때 독일 경제는 놀라운 경쟁력을 보였어요. 독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다면 메르켈 총리가 이를 승계했겠어요. 우리도 이래야해요.

윤용로: 요즘 4차 산업혁명으로 다시 벤처 붐이 불기 시작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에 대해 물으면 정부 돈만 까먹었다며 좋은 평가가 나오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보시나요.

이민화: 1차 벤처 붐은 오해가 많아요. 지난 2001년 정부가 벤처사업에 투입된 돈은 2조2000억원이에요. 이 중 1조6000억원은 회수가 됐어요. 회수 못 한 돈은 6000억원이죠. 근데 외환위기 때 기업에 투자된 공적자금은 180조원이에요. 이 중 60조원이 회수가 안 됐어요. 대기업에 들어간 공적자금 회수율이 벤처사업보다 더 적어요. 벤처 붐은 코스닥 시장과 벤처특별법 두 제도 때문이에요. 이 두 제도는 1996~97년 김영삼 정부 때 만들어졌어요. 다행스럽게 이걸 만들고 외환위기를 맞이했죠. 외환위기 이후 많은 기업의 재원들이 나와서 벤처기업을 만들었어요. 이 제도를 활용한 게 김대중 정부에요. 그런데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그 생태계를 파괴시켜 버렸지요. 큰 폐해가 지난 2004년 한국증권거래소, 코스닥, 한국선물거래소, 코스닥위원회가 합병된 통합거래소인 한국거래소를 만든 거에요. 코스닥 시장에서는 1년에 250개씩 기업이 상장됐어요. 근데 합병된 이후 지금은 20개 상장이 전부에요. 코스닥 시장이 위축되면 벤처투자도 위축됩니다. 벤처 인증기준도 연구개발 중심에서 기술 보증으로 바뀌어버리고요. 이런 제도들이 10년을 후퇴시켰죠. 10년 빙하기가 없었다면 우리가 미국 다음으로 대국이 되었을 거에요.

윤용로: 최근 이스라엘 창조경제를 배우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민화: 한국의 인큐베이터를 배워간 게 이스라엘인데 이제 와서 그들을 배우자니 그게 말이 됩니까? 한국의 벤처 붐은 우리가 생태계를 만들었어요. 미국식 선거제도를 우리가 도입한다고 하면 성공하겠어요? 지금 우리가 벤치마킹해야할 것은 2000년 벤처 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공부해야 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한 나라 중에 성공한 곳이 없어요.

윤용로: 벤처 붐을 일으키려면 뭘 해야 합니까?

이민화: 스타트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거죠. 벤처는 산업과 금융의 만남이에요. 벤처기업에 혁신자본이 들어오고, 내 돈을 잘 회수할 수 있는 회수시장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벤처 붐이 일어나는 거죠. 회수시장이 사라지면 벤처캐피털(VC), 엔젤투자자(벤처기업들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도 사라져요. 회수시장은 정부가 나서면 안 돼요. 크라우딩 펀드도 투자하는 시장이잖아요. 근데 국회에선 투자자 보호 명목 아래 투자 총액을 제한했어요. 혁신자본은 대수법칙을 따라요. 하나는 위험할 수 있지만 분산투자로 다수가 투자할 경우 일정한 확률로 수렴이 되는 거죠. 결국 크라우드 펀드는 엉망 됐어요. 투자 못 하게 하는 걸 투자자 보호라고 하는 게 답답하죠.

그는 회수시스템에 대한 중요성을 대화 중 몇 차례 강조했다. 회수 구조는 두 가지다. 주식 상장(IPO)를 통한 자본 회수 또는 인수·합병(M&A)이다. 가령 2012년 기업가치를 5억 달러로 평가 받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에 10억 달러(1조2100억원)에 매각했다. 매각 후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민화 이사장과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이 3월 21일 카이스트 도곡동 캠퍼스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윤용로: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취업 준비생 중 26만 명이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라고 합니다. 청년들의 창업정신이 예전보다 약해진 걸까요?

이민화: 국가 정책이 문제에요. 반(反) 기업정책 이후에 벤처창업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커졌죠. 결국, 정부가 청년들을 공시족으로 내몬 거죠.

윤용로: 넷마블이나 라인 같은 기업은 해외로 진출했습니다. 벤처 글로벌화는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성장했나요?

이민화: 아직 멀었죠. 현재 1000억원 매출이 넘는 460개 벤처 기업은 해외로 나가야해요. 삼성과 현대도 벤처로 시작됐고 글로벌 기업이 됐죠. 글로벌화는 필연적으로 가야하는 길인데 방법이 점진적으로 가느냐, 한번에 가느냐 에요. 해외시장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리스크가 존재하죠. 답은 개별적으로 개척하기 어려우니까 판매망을 이용해야 합니다. 예컨대 해외시장에 진출한 메디슨이 국내 의료기업들의 플랫폼이 되어준 것처럼 말이죠. 분야별로 필요해요.

윤용로: 대기업이 벤처기업의 기술을 빼간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이민화: 기업 간의 불공정거래는 여전히 이루어져요. 차단한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요. 인식의 문제도 있어요. 삼성이 벤처기업을 인수한다고 하면 고운 눈으로 안 봐요. 정부도 문제에요. 대기업의 벤처캐피털(VC)을 제한하고 있어요. 이 문제를 풀어야 해요. 또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M&A가 활발할 수 있도록 해야해요. M&A 없이는 클 수가 없어요.

윤용로: 김종인(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 선배를 만나서 얘기 좀 하시죠(김종인 대표는 이 이사장과 윤 전 행장의 고등학교 선배다).

이민화: 허허. 다 아실 텐데요 뭐. 정치를 하다 보면 국민의 눈 높이를 맞춰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윤용로: 요즘 관심 있는 분야가 무엇입니까?

이민화: 현실과 가상의 융합, 4차 산업혁명이에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는데 이는 과도한 상상이에요. 인간은 그리 멍청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일자리 줄어든다는 가설들은 200개가 넘어요. 근데 사실로 입증된 건 한 개도 없어요. 사람들은 낙관론보다 비관론, 종말론에 더 관심이 많아요. 일자리의 원천은 욕망이에요. 욕망이 무한해서 없어질 수가 없죠.

그는 산업혁명은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말한다. 1차 산업혁명은 기계 기술로, 인간의 생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기술로, 편리함의 욕구를 충족시킨 냉장고와 세탁기 같은 제품이 나왔다.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 기술로, 인간의 사회적 욕구인 연결을 만족시켜주는 ‘혼술’과 같은 사회적 현상이 등장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를 대입을 해보면 4차 산업혁명에서는 자기실현과 자기 표현할 수 있는 일자리가 나올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윤용로: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 이사장이 한 포럼에서 미국은 창업에 실패할수록 투자 조건이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한국은 왜 이렇게 안 되는 겁니까?

이민화: 자본시장 구조도 다르고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평가의 기준이 달라서죠. 벤처기업에 대해서는 포트폴리오에 대한 평가를 해야해요. 사전평가에서 사후평가까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는 거죠. 그냥 정부는 숫자만 들여다보거든요. 결과가 성공이냐 실패로만 나뉘기 때문이죠. 창업자들도 한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 무서워서 용기를 못 내요. 재작년에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어요. 창업하겠느냐고 물으니까 3%가 하겠다고 답했어요. 근데 실제로는 0.1%만 했어요. 두 번째 질문으로 창업 후 망해도 신용불량자가 안될 테니까 창업하겠느냐고 물으니 3%가 20%로 늘었어요.

윤용로: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선배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민화: 통계를 보면 처음 스타트업를 해서 성공확률은 0.18%이에요. 실패 후 두 번째 성공확률은 0.21%에요. 실패할수록 확률이 높아지는 거죠. 창업은 좋은 사업계획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구성원이에요. 창업은 절대 혼자 할 수 없어요. 협력하는 괴짜가 돼야해요. 그리고 많은 돈이 필요한 창업보다 가볍게 할 수 있게 해요. 가볍게 만들어져야 실패를 해도 빠르게 일어날 수 있어요.

이민화 이사장 이력

- 1953년 대구 출생
- 중앙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 1985~2001년 메디슨 대표이사
- 1999~2002년 경제사회연구회 이사
- 2006~2009년 한국기술거래소 이사장
- 2009년 카이스트 초빙교수, 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 2009~2010 중소기업옴부즈만
- 2013년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 1977년 행정고시 21회에 수석 합격해 관직을 시작했다. 그 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은행제도과장과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공보관·감독정책2국장·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까지 지낸 후 금융인으로 변신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장(2007~10년)을 거쳐 시중은행인 외환은행장(2012~14년)을 지냈다.

1378호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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