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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그 바다에 원양선원들의 눈물이 흘렀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무기력한 서민의 삶 그린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원양어업, 60~70년대 경제개발 시대 외화벌이 일등공신

▎1977년 8월 좌초한 원양어선 남해 208호 선원들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서울 사람들에게 잠실이 상전벽해의 땅이라면, 부산 사람들에게는 낙동강 하구의 명지와 하단이 그렇다. 명지와 하단은 강남만큼 부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갈대가 무성한 모래톱이 도시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뽕밭과 배밭이 강남으로 탈바꿈한 것과 비교할 만 하다. 강남 개발이 그랬듯 급격한 개발의 뒷면에는 삶터에서 쫓겨나야 했던 서민들이 있게 마련이다. 요산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는 부산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다.

이 소설은 1960년대 낙동강 하구 모래톱으로 만들어진 섬인 ‘조마이섬’에 사는 건우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정한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모래톱이야기]도 당시 사회의 부조리함을 파헤치고 저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리얼리즘소설’이라는 꼬리표가 뒤에 붙는다. [사하촌](1936)과 30년 터울을 두고 나온 [모래톱 이야기](1966)는 김정한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일제시대도, 개발독재시대도 서민들이 살기는 녹록치 않았다. 김정한은 소설가이면서 교육자면서 언론인이었다. 김정한의 문학정신을 기려 1984년 요산문학상이 제정됐다. 요산문학상은 매년 10~11월 부산에서 열리는 김정한문학제(요산문학제) 기간 중 시상된다.

일제 →권력 →자본에 빼앗긴 땅


소설은 K중학교 교사인 ‘나’의 눈으로 진행된다. 내 반에는 지각이 잦은 건우라는 학생이 있다. 나룻배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이다. 김해 맹지면(鳴旨面)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에는 ‘조마이섬’이라는 모래톱으로 이뤄진 섬이 있다. 건우는 이 섬에서 배를 타고 하단나루로 나온 뒤 학교까지 온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 할아버지와 산다. 가정 방문차 건우네 집에 들르고 보니 가정형편이 좋지 못하다.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전사했지만 죽음을 확인할 길이 없어 연금을 받지 못한다. 지금 살고 있는 조마이섬은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 소유가 됐다가, 해방 후에는 어떤 국회의원 명의가 됐다가, 지금은 앞강의 매립허가를 얻은 어떤 다른 유력자의 손에 넘어가 있다. 선조 때부터 발을 붙이고 살아오던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소유자가 도깨비처럼 바뀌고 있지만 어찌해볼 도리는 없다.

‘갈밭새 영감’으로 불리는 건우의 할아버지는 조마이섬을 빼앗으려는 외부자들에게 굴하지 않는다. 몽둥이, 괭이, 쇠스랑 할 것 없이 마구 들이대고 싸우며 조마이섬을 지켜낸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 처서. 1960년이래 최악이라는 폭풍우가 쏟아진다. 낙동강 물이 불어나면서 강변 마을들이 잠기기 시작한다. 모래톱마을인 조마이섬도 예외가 아니다. 걱정되어 조마이섬에 가보려고 해도 이미 물바다다. 집이고 농작물이고 모두 떠내려간다. 건우네는 일제시대부터 1960년대 개발시대를 거쳐 살며 허리 한번 펴기 힘들었던 서민의 모습을 대변한다. 일제시대는 일제에 땅을 빼앗겼다. 해방이 됐지만 땅은 권력과 자본의 손에 차례로 넘어간다. 주어진 것은 의무뿐이다. 전쟁에 차출된 아버지는 어디서 죽었는지조차 모른다. 건우네의 비극은 또 있다. 삼촌이다. 삼촌은 원양어선을 탔다가 실종된다. 같밭새 영감은 토로한다.“작은 놈은 머 사모아섬이라 카던가요. 그곳 바닷속에 너어(넣어) 버렸지요. 와 언젠가 신문에도 짜다리(많이) 안 났던기요. ‘허리켄’인가 먼가 하는 폭풍을 만내 시운찮은 우리 삼칫배들이 마구 결단이 난 일 말임더.”

60년대 한국경제를 살린 숨은 주역들이 있다. 원양어선원들이다. 최근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부각됐지만 원양선원들은 아직 조명되지 못하고 있다. 60년대 원양어업은 외화를 벌어오는 최고의 효자산업이었다. 60~70년대 원양어업이 벌어들인 외화는 20억 달러로 파독광부·간호사들이 벌어들인 1억 달러의 20배나 됐다. 특히 71년 원양어업 수출액은 5510만 달러로 당시 한국 전체 수출액(10억6760만 달러)의 5%에 달했다. 요즘으로 치면 반도체나 자동차와 같은 존재였다. 정부는 그 돈으로 중화학 공업에 투자하면서 한국 경제는 발전의 길로 들어선다. 원양선원들의 목숨과 맞바꾼 돈이었다.

‘없는 놈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시대

올해는 한국 원양어업이 시작된 지 60년째다. ‘지남호’는 57년 6월 29일 부산항을 출발했다. 우리나라의 첫 원양 출어였다. 지남호는 8월 15일 인도양에서 처음으로 참치(당시는 새치)를 잡았다. 지남호는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부를 건져라’는 의미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선명을 지었다.

한국의 원양어선은 대부분이 중고선이었다. 지남호는 원래 미국 시애틀 수산시험장이 보유했던 종합시험선이었다. 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면서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도 일본의 중고어선과 어구를 대량 들여왔다. 한창 새 배를 건조하면서 중고선을 처분해야 했던 일본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딜’이었다. 57년 지남호 1척 뿐이던 원양어선은 70년에는 278척까지 늘어났다. 중고선이 주력 선단이었으니 선원들의 안전은 언제나 위협받았다.

“낙동강 잉어가 뛰니 정지(부엌) 바닥에 있던 부지깽이도 뛴다 카듯이, 배도 남 쓰다가 버린 걸 사 가지고 제법 원양 어업인가 먼가 흉내를 낼라 카다가 사람들까지 떼죽음을 안 시킷능교. 게다가 머 시체도 못 찾았거니와 회사가 워낙 시원찮으니 위자료란 거나 어디 제대로 나왔능교. 택도 아이지, 택도 아이라!”

갈밭새 영감의 한탄은 원양산업 발전의 이면에 희생해야 했던 원양선원들의 비애가 숨어있다. 60~70년대 원양산업은 분명 기회의 땅이었지만, 그만큼 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원양어선들이 경제성장기 한국경제에 기여한 바는 크지만 한국문학에서는 원양선원들의 흔적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수산업을 통한 외화 획득, 이를 종자돈으로 한 성장은 ‘한국 모델’로 개발도상국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개도국의 경우 인구의 12~13%가 수산업에 종사하고, 국내총생산(GDP)의 14~15%가 수산업에서 나온다. 세계은행은 수산업을 이용한 개도국 개발프로젝트를 준비 중인데, 한국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물이 범람하기 전 갈밭새 영감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엉터리 둑을 허물어 버린다. 유력자들이 매립을 위해 만든 실하지 않는 둑으로 만약 이 둑이 무너졌다면 마을 전체가 물에 휩쓸려갔을 것이다. 갈밭새 영감은 둑 허물기를 막던 유력자의 앞잡이를 물속에 던져버린 혐의로 끝내 구속된다. 갈밭새 영감의 말마따나 ‘없는 놈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시대였다.

무기력한 서민의 시대를 그렸지만, 그럼에도 김정한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두고 봐. 언젠가는 너희가 이 땅의 주인이 될 거야. 우선은 어떠한 괴로움이 있더라도, 억울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꾹 참고 살아가야 해”라고. 어른이 된 건우는 마침내 모래톱마을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상상에 맡긴다.

1381호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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