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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인생·경영·정치 모두 바둑을 닮았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포석·자충수·꽃놀이패 등 일상에서 바둑 비유법 많이 쓰여

한국 사람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종종 바둑으로 비유하곤 한다. 경제운용전략을 바둑에 비유하면 어떻다거나, 자유무역협정(FTA)을 바둑에 비유하면 어떻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바둑으로 비유하면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싸움에 관한 것을 바둑에 비유한다. 예를 들어 대선 구도나 부부싸움 등 대립적인 상황을 곧잘 빗댄다. 실례로 “선거를 바둑에 비유하면 공천은 포석에 해당한다”라는 말이 있다. 포석은 흑과 백의 돌을 배치하여 진(陣)을 짜는 것이다. 포석을 잘해야 다가올 중반전을 잘 치를 수 있다.

주식 투자에 관해서도 바둑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 주식 전문가는 바둑에도 기본 포석, 정석과 중요한 맥(脈)이나 급소자리가 있듯이 주식에도 포석이나 정석 그리고 중요한 급소가 있다고 한다. 맥이나 급소는 그 곳을 두면 신통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자리를 말한다. 서양의 바둑팬 중에는 바둑의 맥에 관한 책을 찾는 이가 꽤 많다. 주식에도 그런 것이 있다면 투자자들은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미디어에서 쓰는 바둑 용어 30여 가지


경제정책이나 경영의 원리를 바둑으로 비유한 경우도 있다. 잘못된 정책을 반성하지 않고 또다시 되풀이하는 우를 가리켜 ‘바둑으로 치면 복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다. 프로 기사들은 시합을 하고 나서 그 과정을 되돌아보며 수의 잘잘못을 분석하는데, 이것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실력을 늘리는 데 매우 유익하다.

이처럼 사람들이 바둑으로 비유한 예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50가지가 넘었다. 그 중에는 커피, 담뱃값 인상, 신앙, 동서 문명 등과 같은 분야도 있다. 교회의 목사 중에는 설교를 하면서 바둑으로 신앙의 수준이나 설교방식을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학자들도 바둑 비유법을 쓴다. 이명숙 교수와 곽광제 교수가 쓴 [철학과 학문의 노하우]에서는 선배 철학자들의 저작을 공부하지 않은 채 철학적 물음들에 도전하는 것은 바둑 게임의 ‘포석 기법’과 ‘정석 수순’을 전혀 모른 채 바둑 시합에 도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고 있다. 박이문 교수도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사회의 윤리규범을 바둑의 규칙에 비유해 설명했다. 아예 인생살이 자체를 바둑으로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박정원의 [내가 걷는 이유]에서는 “잘 풀리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깜박 저지른 한 번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바둑도 영락없는 인생과 같다”라고 한다.

바둑을 사회현상의 비유로 쓰는 것은 미디어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에서는 포석이나 정석과 같은 바둑 전문용어를 끌어다 헤드라인으로 쓰고 있다. 대기업의 운명을 비유하는 말인 ‘대마불사(大馬不死)’는 유명한 바둑 격언이다. 바둑에서 덩치가 큰 대마는 쉽사리 잡히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이 외에도 수순이나 초읽기, 무리수 등 바둑용어를 끌어다 시사용어로 쓰고 있다.

그 중에는 자충수나 꽃놀이패와 같이 바둑을 둘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들도 있다. 가끔 신문에서는 ‘자충수(自衝手)’라는 한자를 쓴다. 이것은 좌충우돌하듯 무모하게 부딪쳐가는 수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둑용어 ‘자충수(自充手)’는 스스로 자기 수를 채워 수명을 단축하거나 해롭게 만드는 수를 가리킨다. 스스로 자기 발목을 묶는 수라고 할 수 있다.

꽃놀이패는 벚꽃놀이를 즐기듯 여유 있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패싸움을 말한다. 이기면 좋고 져도 다른 대가를 얻을 수 있는 부담없는 패를 말한다. 여기서 쓰는 ‘패’는 순수한 우리말로 한 점씩 따내기를 계속하는 바둑의 독특한 모양을 말한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사용해 온 바둑용어를 모아 보면 30가지가 넘는다. 이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바둑 시사용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대량으로 쓰고 있지는 않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바둑과 매우 친화적인 국민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부터 20여 년간 일본을 꺾고 세계 바둑 최강국으로 군림하며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흙과 백의 수 읽기가 곧 인생이고 경영

한국 사람들이 바둑으로 세상사를 비유하거나 매스미디어에서 바둑용어를 끌어다 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바둑판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나 바둑을 두는 방식이 세상살이와 닮았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바둑 팬들은 바둑을 두면서 인생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즈니스나 일상의 문제를 처리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대안을 검토한다. 이것은 바둑의 수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선택에서 깊이 생각지 않고 감각적으로 급하게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려면 차분하게 수 읽기를 해야 할 것이다. 바둑의 속기파 즉 감각적으로 빨리 두는 타입처럼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 사람은 실수를 하기 쉽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철학자처럼 존재의 본질이나 삶의 궁극원리를 깊숙이 파고들다 보면 세상의 많은 문제를 처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바둑에서는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는 말이 생겼다. 이것저것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보면 오히려 나쁜 수를 두게 된다는 것이다. 놀부처럼 자기 혼자만 이익을 차지하려는 태도도 바둑이나 인생에서 문제가 된다. 바둑은 영토싸움이지만 또한 거래이기도 하다. 바둑의 수많은 정석은 ‘거래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1도]를 보자. 백1에 다가서고 흑2로 받아줄 때 백3에 두 칸 벌리는 것은 가장 간명한 정석이다. 흑은 귀의 집을 차지하고 백은 우변에 자리를 잡아 피차 만족이다. 서로가 차지한 이익을 보면 흑은 10집쯤 되고 백은 5집 정도다. 그 이유는 흑이 먼저 귀를 차지한 기득권 때문이다. 좌상귀에 흑4로 다가가 10까지 되는 모양도 중급 정도의 바둑팬이라면 알고 있는 정석이다. 기득권을 감안하여 백이 약간 유리하지만 서로 불만 없는 갈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거래는 경제적 이익 공유의 성격을 띠지만 다른 한편으로 싸움이기도 하다.

[2도] 흑1 때 백이 평화공존하지 않고 2로 공격을 하면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흑3과 5로 뛰어 중앙으로 달아난 다음 흑9로 협공하여 전투 모드에 들어간다. 비즈니스 거래도 한 쪽이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면 싸움이 벌어지기 쉽다. 이와 같은 거래와 전투의 양면은 외교나 정치도 비슷하다. 이 예처럼 바둑판의 사태들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렇다면 바둑의 원리나 노하우를 통해서 삶과 경영의 지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와 경영의 고수가 되기 위하여 바둑 비유법을 터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382호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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