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시대정신과 리더십 

 

타마키 타다시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니혼게이자신문 서울지국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60여 년 전 총리로서 일본을 이끌었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40대 젊은 나이에 장관에 오른 엘리트 관료 출신이다. A전범으로 체포된 뒤 무죄를 선고받고 정계 진출에 성공해 1957년 수상이 됐다. 기시 정권의 일본은 좌우 진영 대립이 첨예했다. 기시는 미·일 안보조약 개정을 강행하려 했고, 이에 반대한 시위대가 연일 국회를 압박했다. 도쿄대에 재학 중이던 한 여학생이 시위 도중 사망하자 반대 여론은 극에 달했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일 계획도 무산됐다. 기시 전 총리는 끝내 안보조약 개정을 관철시켰지만, 성난 민심에 밀려 즉각 퇴진해야 했다.

강경파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케다 하야토 전 총리가 기시의 뒤를 이었다. 교토대를 졸업한 이케다는 도쿄대 법대 출신이 즐비한 대장성에 들어가 격무에 시달렸다. 과로에 큰 병을 얻은 그는 2년간 휴직했다. 난치병을 기적적으로 이겨냈지만 출세 레이스에서는 크게 뒤처지고 말았다. 그러나 인생은 모르는 일이다. 이 좌절이 이케다를 더욱 큰 인물로 키워냈다. 경쟁에서 탈락한 경험 덕분에 시야는 더욱 넓어지고, 폭 넓은 인간관계를 맺었다. 병치레로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했다.

격동의 시대에는 예정조화(豫定調和)적인 엘리트가 무난히 출세할 리 만무하다. 전후 부흥의 기초를 다진 요시다 시게루 전 수상은 이런 이케다의 경력과 업무방식에 주목했다. 요시다는 이케다를 국장과 차관에 기용했으며, 정계진출도 도왔다. “애초부터 총리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다. 소득배증(所得倍增)을 실현하기 위해 총리가 된 것이다.” 1960년 7월 총리에 취임한 이케다는 ‘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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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1호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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