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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의 국제적 야망] 합법적 독재권 얻고 광폭 외교 횡보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의원 ciimccp@joongang.co.kr
4월 개헌 투표 승리 후 내부 장악하고 다각 외교 나서... 터키·에르도안의 국제적 위상 더욱 커질 듯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3) 터키 대통령과 부인 에민 여사가 지난 4월 16일 개헌안 국민투표가 통과된 뒤 이스탄불에서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터키는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중동, 기독교권과 이슬람권의 경계에 위치한다. 국토의 3%가 유럽의 발칸반도에, 97%가 아시아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한다. 터키와 국경을 맞댄 나라들은 이런 성격을 잘 반영한다. 서쪽으로는 유럽 기독교권인 그리스와 불가리아가 자리 잡고 있다. 터키가 2005년부터 가입 협상을 벌이고 있는 유럽연합(EU)의 회원국이다. 동북쪽으로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카프카스 반도의 정교국가 조지아와 아르메니아가 있다. 동쪽으로는 이슬람권 아제르바이잔의 영외 영토로 아르메니아에 둘러싸인 나히체반, 이슬람 시아파의 종주국 이란과 맞닿아 있다. 동남쪽으로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싸우고 있는 이라크와 내전 중인 시리아와 맞닿아있다. 이라크는 이슬람 수니파가 주류이며 시리아는 인구 구성으로는 이슬람 시아파가 다수이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집권층은 시아파의 소수파인 알라위파다.

에르도안 카리스마 강화

냉전 시기 터키는 서방세력의 최전선이었다. 미국은 터키를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끌어들이고 막대한 무기를 원조했다. 심지어 핵무기 폭격 훈련까지 함께했다. 터키는 소련 내부를 감청하는 정보기관의 최전방 기지이기도 했다. 국경을 맞댄 그루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과거 소련의 공화국이었다가 독립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리아 내전은 물론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IS와 맞상대할 최전선 역할을 하는 나라가 터키다. 정보수집과 무기공급, 작전 등 모든 부분에서 미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은 터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터키의 전략적 가치이자 국제정치적 위상이다.

이런 터키의 스트롱맨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갈수록 카리스마를 강화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2003년 총리에 취임한 뒤 대통령으로 말을 갈아타면서 14년째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선 지난해 7월 15일 군부 쿠데타를 진압하면서 마지막 대항 세력의 기세를 완전히 꺾었다. 그는 세속주의 국가인 터키에서 친이슬람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유언론을 억압하고 사법부, 교육계 등에서 반대파를 몰아내 왔다. 그러자 세속주의 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에르도안에 밀린 것이다.

터키공화국은 1923년 건국 이래 아타 튀르크(터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국부 케말 파샤가 제정한 헌법에 입각해 세속화, 서구화, 민주화를 추구해왔다. 건국 헌법은 세속주의를 국가의 근간으로 명시했다.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케말 파샤가 의도한 터키의 서구화를 이룰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케말 파샤는 터키 공화국을 건국한 뒤 문자를 아랍 문자에서 라틴 문자로 바꾸었으며 군대, 정치, 행정, 교육 등 분야에서 서구화를 진행했다. 종교를 정치에서만 분리한 게 아니라 사회 분야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애썼다. 최근엔 오히려 그 반대로 흐르고 있긴 하지만 한때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고다니는 것조차 금지했을 정도다. 히잡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이슬람에 대한 사회의 복종을 의미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케말 파샤는 헌법에 ‘군은 헌법의 수호자’라는 구절도 넣었다. 터키의 정치에 종교가 개입하려고 하거나 개혁정신에서 벗어나 부패했다고 판단되면 군부가 자동으로 개입해 이를 저지하고 세속주의와 개혁주의 정치를 재건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세속주의라는 대의명분은 정부를 종교에서 분리되도록 하긴 했지만 가난까지 구제하진 못했다. 정부가 해주지 못하는 따뜻한 복지와 배려를 받은 주민들은 에르도안의 친이슬람 정당인 정의개발당을 지지한다. 이슬람주의와 그 정신을 구현하는 이슬람정당은 에르도안의 정치적인 자산이다. 그는 국가구제당, 복지당, 미덕당 등 여러 이름으로 이슬람정당을 창당해 운영했는데 과거 군부 쿠데타 정권의 탄압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 등으로 줄줄이 해산됐다. 국가구제당은 이슬람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는 의미이며, 복지당과 미덕당은 이슬람 정신으로 주민 복지를 구현하고 이슬람의 미덕을 장려하겠다는 뜻이다. 군부와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정신을 앞세워 정치활동을 벌이는 것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와 세속주의 정치를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해 해산을 명령하거나 결정했다. 권력을 거머쥔 에르도안이 군부와 법조계의 숙청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에르도안은 군부 쿠데타를 막은 뒤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해 비상대권을 거머쥐고 전국에서 대숙청을 벌였다. 군인은 물론 법관, 공무원, 교사 등 6만 명을 현직에서 쫓아냈다. 일부는 사법처리 과정으로 넘겼다. 이런 정치적 숙청과 탄압은 겉으로는 민주주의와 법치, 시민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내 걸고 있지만 유럽을 비롯한 서구권에서는 이를 명백한 인권탄압의 비민주주의적인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헌으로 막강한 권한으로 장기집권 길 열어

그런 에르도안은 지난 4월16일 헌법을 고쳐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대통령 중심제를 구축했다. 이날 이뤄진 개헌 국민투표에서 에드도안의 개헌안은 2515만7025명이 지지해 51.41%의 찬성으로 통과됐지만 부정선거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대에 투표한 국민이 투표자의 48.59%인 2377만 7091표나 된다는 점도 정치적인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나라를 딱 둘로 나눈 셈이다. 85.32%라는 높은 투표율은 국민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찬성파도 반대파도 격앙된 상태라는 사실도 함께 보여준다. 이를 통해 에르도안은 국부 케말 파샤가 만든 의원내각제를 허물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장기 통치가 가능한 제왕적 대통령제를 새롭게 확립했다. 독재권을 헌법으로 확보한 셈이다.

에르도안이 이제 외교 활동을 강화하면서 해외에 카리스마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에르도안이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 정상회담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 국무부는 개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된 에르도안 대통령이 4월 말 대규모 숙청 작업을 재개하자 비판 성명을 냈지만 트럼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트럼프는 앞서 에르도안이 자신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국민투표에서 승리하자 축하 메시지를 보내 유럽 등의 동맹국들로부터 맹 비판을 받았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에르도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ISIS(IS의 다른 명칭), 쿠르드노동자당(PKK, 터키 내부 쿠르드족 무장단체) 같은 테러단체와의 싸움에서 터키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테러 세력에게 안전한 장소는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시리아 내전 개입과 관련한 터키의 지원에도 감사했다. 그는 ”시리아의 끔찍한 살육을 끝내기 위한 터키 지도부의 노력에 감사한다”며 “미국은 시리아 내부의 폭력사태 완화와 평화적 해법을 위한 여건 조성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아세안 가입 타진하며 영향력 확대 노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이날 에르도안은 미국이 시리아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반군의 무장을 지원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미국은 이달 초 시리아의 IS 수도인 락까에서 IS와 대치 중인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IS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에서다. 하지만 에르도안은 이들 쿠르드 반군 역시 PKK와 마찬가지로 테러단체라고 주장하며 “어떤 나라든 이들을 지원한다면 테러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합의한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모습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회원국인 터키는 미국과 동맹 관계다. 하지만 쿠르드족과 관련해서는 서로 양보를 하지 않고 있다. 터키의 에르도안 지지자는 투르크 민족주의자가 많아 쿠르드족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지원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 차례도 민족 국가를 만들지 못한 쿠르드족은 인구가 330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터키에 45%, 이란에 24%, 이라크에 18%, 6%는 시리아에 나뉘어져 살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 쿠르드족이 IS는 물론 아사드 정권과도 싸우고 있어 이들을 지원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시리아의 쿠르드족이 미국의 무기를 받으면 터키에도 위협이 되며 이들 무기가 자국 내 PKK에 공급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지난 14~15일 중국 베이징에서 130개국 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일대일로(육상 및 해상 신실크로드) 국제 협력 정상포럼에도 28명의 정상 중 한 명으로 참석했다.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서 그를 만난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에르도안이 아세안에 가입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순회의장국인 필리핀의 대통령에게 가입 의사를 타진한 것이다. 뿐만 아니고 몽골도 가입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세안은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0개국이 가입하고 있는 지역국가 협의체다. 터키의 가입은 중국의 팽창에 불안해하는 동남아 국가들에 비빌 언덕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터키가 가입한다면 협의제의 성격 자체가 변할 수밖에 없다. 대폭 확대하기 전에는 이뤄지기가 쉬지 않다. 아세안은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 및 일본과는 별도로 협의와 정상회의를 하는 ‘아세안+1’ 회담을 정례적으로 열고 있다. 회원국이 돼 함께 하기에는 너무 큰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에르도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인도엔 카슈미르 사태 중재 제안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포럼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대표단의 기념 촬영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옆에 섰다.
에르도안은 지난 1일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신흥국가의 두 정상 간 만남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다음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슈미르 문제 해법으로 다자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이 문제를 터키가 나서서 중재를 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카슈미르 문제는 힌두 국가 인도가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과 오랫동안 벌이고 있는 영유권 분쟁이다. 카슈미르는 이슬람교 주민이 과반수이지만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에서 분리 독립할 당시 힌두교 신자인 이 지역 군주의 의사에 따라 인도에 귀속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 뒤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 지역 영유권을 놓고 두 차례 전쟁까지 벌이면서 앙숙이 됐다. 현재 사실상의 국경인 통제선(LoC)을 경계로 3분의 2는 인도가, 3분의 1은 파키스탄이 어정쩡하게 분리 점령하고 있다.

카슈미르 문제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모디 총리의 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다뤘지만 인도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는 카슈미르 문제는 인도가 파키스탄과 양자 관계에서 해결할 문제이며 터키가 중재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을 전했다. 게다가 카슈미르 전체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는 것이 인도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인도는 트럼프의 중재 제안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에르도안이 이를 제안한 것이다.

에르도안의 이런 제안에 대해 일부 인도 언론은 같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을 위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최근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이 키프로스의 분단 해결을 위해 인도가 도와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한 응분의 대응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터키 남쪽 동 지중해에 있는 섬나라 키프로스는 1974년 터키군의 침공으로 터키계 지역과 그리스계 지역으로 분단돼 있다. 결국 에르도안의 발언은 키프로스 문제를 건들이면 카슈미르 문제를 건드릴 테니 가만히 있으라는 무언의 경고로 보인 것이다. 그러면서 이슬람권에 대한 영향력 확대까지 노린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터키 국내에서 정치적인 책략과 밀어붙이기로 권력을 정점에 오른 에르도안이 이젠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고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사실 터키는 이번 개헌으로 EU 가입이 더욱 어려워졌다. EU가 받아들이지 않는 사형제를 부활했기 때문이다. EU는 사형을 집행하면 가입 협상이 끝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반세기의 숙원인 EU 가입이 무산되면 에르도안은 국내 정치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의 활발한 해외 행보는 이런 반발을 사전에 잠재우기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정학적인 중요성과 경제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터키의 국제적 위상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며 에르도안의 위상도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다.

1385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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