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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석의 의예동률(醫藝同律) '마지막회'] 천식환자의 ‘봄앓이’ 과식 습관부터 고쳐야 

 

윤영석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복부 비만 상태에선 약·침 효과 발휘 못 해 … 비장·신장 허증에 의한 천식은 봄에 심해져

▎약함은 가정에서 환약이나 약초를 담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기 위해 만든 나무상자다. / 사진제공·춘원당한방박물관
"해마다 해동할 무렵이면 ‘봄앓이’를 치르는 것이 유별난 내 체질이다. 겨울에는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쌩쌩한데, 2월 말에서 3월 초가 되면 어김없이 그 증상이 찾아온다.”

“재채기와 콧물이 심할 때는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코가 막히고 눈두덩이 가렵다. 그리고 사지가 나른해져 자꾸만 아랫목에 눕고 싶어진다. 이런 증상이 봄내 지속되기 때문에 나는 봄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위의 글은 법정스님이 쓴 [텅 빈 충만]이라는 책에서 따온 내용입니다. 법정스님은 알레르기 체질이었습니다. 사실 비염보다는 천식으로 더 많이 고생했습니다. 숨이 차서 날 밤을 샐 때도 가끔 있었다고 합니다. 법정스님은 입적하시기 얼마 전까지 필자에게 약을 지으러 왔습니다. 알레르기 체질 개선과 고질인 천식 치료를 위해서였습니다. 올 때마다 본인이 저술한 책 한 권씩 주었는데 어느 날은 책 대신 보자기로 싼 커다란 꾸러미를 가져왔습니다. 풀어보니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소박하게 생긴 약함(藥函)이었습니다. 뚜껑 안쪽에는 본인의 필적도 있었습니다. 워낙 차를 좋아하는 분이라 약함에 한약재를 담아두고 수시로 약차를 끓여 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법정스님의 천식 앓이

약함은 가정에서 환약이나 약초를 담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쓰기 위해 만든 나무상자입니다. 한약장을 구비하기가 여의치 않을 때 사용했는데, 대부분 직사각형이고 깊이가 얕으며 뚜껑이 있습니다. 여러 개의 칸막이가 있어 잘게 썬 한약재를 종별로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소나무로 된 것이 가장 흔하고 당시에는 귀했던 오동나무나 대추나무로 만든 것도 간혹 볼 수 있습니다. 뚜껑에는 수·복·강·령(壽福康寜) 전부이거나 그 중의 한두 글자가 적혀 있습니다. 사대부집에서 쓰는 약함에는 옻칠을 가볍게 했습니다. 나무에 광택을 내고 오래 사용해도 벌레 먹거나 뒤틀리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더구나 옻에는 어혈과 염증을 치료하고 잡균을 죽이는 효과도 있습니다.

필자가 약함을 모으기 시작한 초기에는 찬함(餐函)을 약함으로 알고 잘못 구입한 적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양반가에서 반찬을 담아 운반했던 찬함은 약함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뚜껑의 높이가 낮고 양쪽에 손잡이가 있는 것이 다릅니다. 약함을 방에 두고 한방차를 즐겼던 법정스님은 아이스크림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한때에는 ‘바밤바’를 한 번에 두세 개씩 들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천식환자는 지나치게 차거나 단 음식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술을 비롯해 달걀, 우유, 푸른 생선, 집 먼지, 진드기, 동물의 털, 바퀴벌레 등은 천식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환경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감기, 담배연기, 실내오염, 식품 첨가물, 황사나 미세먼지 등의 대기오염은 천식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천식치료의 첫 단계는 이러한 원인을 제거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카펫과 커튼을 없애고 수시로 진공청소기를 돌리거나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환기를 자주 시키고 애완동물은 키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후에 적당한 운동, 심신안정, 충분한 휴식과 수분섭취,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적절한 한방치료를 받는다면 천식은 완치도 가능합니다.

한의학에서는 폐의 열(肺熱)과 비장과 신장의 허증(脾腎兩虛)을 천식의 주원인으로 봅니다. 따라서 폐 기능을 강화시키고 비장과 신장을 보호해서 면역력을 키우는 것에 치료의 주안점을 둡니다.

폐의 열로 인한 천식은 가을과 겨울에 심해집니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통증도 느낍니다. 숨차고 호흡이 곤란해지며 걸쭉한 가래와 기침이 나옵니다. 목에서는 가랑가랑 소리가 나고 식은땀이 나면서 맥박도 빨라집니다. 천식의 3대 증상인 기침, 호흡곤란, 쌕쌕 소리가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비장과 신장이 허한 것이 원인이 된 천식은 봄과 여름에 심해지는데 호흡이 급해지기는 하나 증상이 쉽게 악화하지는 않습니다. 가래와 침이 맑은 것이 특징입니다.

도라지, 탱자껍질, 살구씨 치료에 도움

열증이든 허증이든 천식은 아침과 밤에 심해집니다. 기침과 가래가 호전되더라도 향후 이차적으로 습진, 아토피, 기관지 확장 등의 합병증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쌕쌕거리는 소리가 심하게 나면서 눕지 못하고 앉아서 지내며 숨을 내쉬기 힘들어 하는 천식환자는 기관지 점막이 과민해진 것이므로 체질개선이 필수적입니다.

천식을 치료하는 한약재는 무척 많지만 그중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도라지(桔梗), 탱자껍질(枳殼), 살구씨(杏仁)입니다. 체질과 병증을 잘 파악해서 처방을 받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선은 이들 세 가지 약재를 달여 마시는 방법을 권할 만합니다. 이들 약재를 가루로 내어 매일 10g씩 먹거나 물 2L에 30g 정도 넣고 십분 정도 끓여서 수시로 마시면 증세가 다소 호전될 수 있습니다.

식은땀이 나고 입술과 코끝이 창백해지면서 숨소리가 거칠어지면 폐에 열이 심해지고 하체는 차가와지는 상열하냉(上熱下寒)이 된 상태이므로 족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족욕을 할 때에는 안이 우묵한 용기에 40~43℃의 물을 넣고 종아리 아래를 십분 정도 담그는 것이 요령입니다.

천식이 오래돼 약도 안 듣고 숨쉬기가 많이 힘들어지면 침 치료도 같이 받는 편이 좋습니다. 급할 때에는 가정에서 경혈을 이용한 지압법도 한번 해 볼만합니다. 발작이 시작되면 천식의 특효 혈인 천돌(天突)혈을 엄지손가락으로 20초 누르고 5초 정도 쉬는 방식으로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한 세트에 10회 이상씩 눌러줍니다.

천돌혈은 목 앞부위 정준선 위, 목 아래 패인 곳의 가운데 중심에 있습니다. 대추혈도 천식이나 알레르기 증상에 많이 쓰입니다. 대추혈은 고개를 숙였을 때 목 위 정중앙의 가장 많이 튀어나온 뼈 바로 아래에 위치합니다. 체기가 있으면서 천식이 심하면 명치 바로 아래쪽의 갈비뼈가 갈라지는 곳인 구미(鳩尾)혈을 지압해주면 좋습니다. 구미혈은 침놓기는 어렵지만 뜸이나 지압이 효과적인 경혈인데 천식에 효과가 좋아서 ‘천식혈’이라고도 불립니다.

모든 병이 다 그렇긴 하지만 천식치료는 특히 생활 속의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중 우선적으로 할 일은 과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부 비만인 상태에서는 약도, 침도, 지압도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식환자에게는 ‘봄앓이’를 고치기 위한 법정스님의 식사 지침이 참고가 될 듯싶습니다.

“아침식사는 부드럽게, 점심식사는 제대로, 저녁식사는 가볍게.”

윤영석 - 경희대 한의과대학을 졸업했다. 한의학 박사.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면서 7대째 가업을 계승해 춘원당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학 관련 유물 4500여점을 모아 춘원당한방박물관도 세웠다. 저서로는 [갑상선 질환, 이렇게 고친다] [축농증·비염이 골치라고요?] 등이 있다.

1385호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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