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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산업계 이끄는 인도 출신 CEO들] 구글의 피차이, MS의 나델라… 글로벌 ‘파워 피플’로 자리매김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전문성과 리더십·선견지명 앞세워 종횡무진 활약 … 美 이민정책 변화에 인도 정부는 긴장

▎2015년 10월 취임한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호평 속에 구글을 이끌고 있다. 빼어난 능력을 가진, 피차이 같은 인도 출신 인재들이 글로벌 산업계 ‘파워 피플’로 주목받고 있다. / 사진제공·블룸버그
창업주가 아니었다. ‘흙수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령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40대 초반에 세계 제일의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순다르 피차이(46) 구글 CEO 얘기다. 인도 남부 첸나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한 번 익힌 전화번호는 모두 기억할 만큼 수학적 재능이 빼어났다고 전해진다. 인도 IT 인재들의 요람 인도공과대(IIT)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주머니를 탈탈 털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과 재료공학 석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땄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잠시 일했다.

그런 그가 30대 초반이던 2004년 구글에 평사원으로 입사했을 때만 해도 장래에 CEO가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학과 과학, 엔지니어링에 능통한 인재는 이미 구글 안에 무수했다. 미국인이 아니라는 핸디캡도 있었다. 그를 낭중지추(囊中之錐)로 만든 덕목은 학구열에서 비롯된 혜안, 그리고 과묵하면서도 어떤 갈등이든 중재해낼 수 있는 포용적인 리더십이었다. 엔지니어 시절 “독자적인 웹 브라우저를 만들어야 한다”며 에릭 슈미트 당시 구글 CEO를 설득한 일화는 그가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갖춘 인재였음을 보여준다. 당시 슈미트는 과한 비용이 드는 것을 우려해 브라우저 개발을 반대했지만, 피차이는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에서 구글 툴바 설치를 제한하는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봤다. 그는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틈틈이 시장 분석을 끝마친 상태였다.

피차이와 몇 명의 개발자들이 만든 자체 브라우저 ‘크롬’ 시제품은 슈미트를 만족시켰다. 이렇게 해서 2008년 세상에 나온 크롬은 그 편의성에 대한 소문이 자자해지면서 세계 1위 브라우저로 등극했다. 이는 피차이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했다. 2015년 10월, 그는 수석부사장에서 승진해 구글의 새 CEO로 취임했다. “탁월한 식견과 사업 감각을 가졌다. 기술적 전문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에 대한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주의 평이다. “조용하고 학구적인 CEO”라는, 취임 당시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평가는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리더십에선 약점을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갖게 했다.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부서 간 갈등 해결과 교류·협력 증대에 수차례 기여하면서 안팎으로 신망이 두터웠다. 수줍은 듯 열정적인 그는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경청하고, 대화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면서 솔선수범하는 데 능하다. 지금껏 호평 속에 CEO로 활약하고 있는 이유다.

피차이 CEO, 구글 크롬 히트시킨 주인공


▎사티아 나델라 MS CEO. / 사진제공·블룸버그
인도 출신 인재들이 피차이처럼 글로벌 산업계를 주름잡는 ‘파워 피플’로 자리매김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모두 선견지명과 리더십을 갖추고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IT 업계의 경우 구글에 피차이가 있다면 MS에는 사티아 나델라(49) CEO가 있다. 인도에서 태어나 망갈로르대 산하 마니팔공과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마찬가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 위스콘신대와 시카고대 대학원에서 각각 컴퓨터과학 석사, MBA 학위를 딴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잠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MS에 1992년 정식 입사했다. 소프트웨어(SW) 기술 부문 등에서 눈에 띄는 업무 성과를 거두고 입사 15년 만에 수석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클라우드(SW·데이터를 중앙 컴퓨터에 저장해 인터넷 접속자가 언제 어디서든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사업을 이끌어 대성공을 거뒀다.

구글과 IBM, 아마존 같은 경쟁 상대들이 미래 먹거리로 보고 집중 육성하고 있던 클라우드 사업에서 MS는 뒤처진 상태였지만, 나델라의 지휘 아래 MS의 클라우드 사업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는 3년 만에 클라우드를 MS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로 만들었고, 그 공로로 2014년 2월 CEO가 됐다. 빌 게이츠 MS 창업주, 스티브 발머 전 CEO에 이어 세 번째로 MS 수장에 오른 것이다. 취임 후에도 그는 자신의 강점인 추진력과 통솔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MS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와 ‘오피스365’ 등은 업계 1위 ‘아마존웹서비스(AWS)’를 맹추격하고 있다. MS는 올 초 2000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시가총액 5000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나델라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인드라 누이(61) 펩시코 CEO처럼 명망 높은 여성 리더도 인도 출신이다(그는 최근 미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통상 인도는 여권(女權)이 낮기로 악명이 높지만, 20대 때 미국 유학에 나섰던 그에게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모토로라 등에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1994년 펩시코 수석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펩시코는 펩시콜라로 유명한 미국의 청량음료 업체다. 탁월한 재무관리 능력과 여성 기업인 특유의 친화력을 겸비한 그는 최고재무관리자(CFO) 등을 거쳐 2006년 CEO, 2007년 회장 겸 CEO가 됐다. 안팎으로 “당연한 수순”이라는 말이 나왔다. 코카콜라에 밀려 만년 업계 2위였던 펩시코를 2004년, 무려 100년 만에 1위로 끌어올린 주인공이 그였다. 누이는 청량음료 시장이 사양세로 돌아설 것을 예측하고 건강음료 등 사업 다각화에 힘썼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인도 출신 여성이라는 약점을 딛고 ‘펩시코의 잔 다르크’가 된 그의 입지는 10년째 굳건하다.

이밖에 ‘포토샵’으로 유명한 미국의 SW 업체 어도비시스템즈의 샨타누 나라옌(53) CEO, 올 1월부터 덴마크 완구 업체 레고그룹을 이끌고 있는 발리 파다(60) CEO도 인도 출신이다. 나라옌은 2007년부터 10년째 어도비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2009년 웹 데이터 분석업체 ‘옴니추어’를 인수하고 디지털 마케팅 솔루션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성과를 냈다. 최근 어도비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할 만큼 성장세가 무섭다. 파다의 경우 1932년 설립된 레고가 84년 만에 처음으로 발탁한 외국인 CEO다. 그는 12세에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2002년 레고에 입사했다. 레고의 4대 소유주인 토마스 키르크 크리스티안센 부회장은 파다를 두고 “그룹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레고의 차기 전략을 세울 적임자”라고 평했다.

84년 전통의 레고, 첫 외국인 CEO는 인도 출신


▎인드라 누이 펩시코 CEO.
이들은 선견지명·리더십이라는 개인적인 능력 외에 또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을 지녔다. 인도가 아닌 미국 등 선진사회에 유학이나 이민 등으로 편입돼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미 CNN은 2015년 미국의 이민법 개정 50주년(1965년 ‘국가별 쿼터제’ 폐지)을 조명하면서 “인도 출신 CEO들의 부상은 개방적인 이민정책의 뒷받침 속에 일어난 현상”으로 분석했다. 올해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反) 이민정책에 인도 정부가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18일(현지시간) 해외 전문 인력에 대한 취업비자(H-1B비자) 발급 규정을 손보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H-1B비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 같은 해외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매년 8만5000건 가량 발급된다. 이 H-1B비자 신청자의 약 70%가 인도인이다. 트럼프는 자국민 위주의 일자리 정책을 계속 펼친다는 입장이라 ‘제2의 피차이’, ‘제2의 나델라’가 계속해서 등장해 든든한 외부 지원군이 돼주기를 바라는 인도 정부로서는 순항 중에 암초와 마주친 격이다. 미국의 반 이민정책에 H-1B 비자 신청 건수는 5년 만에 첫 감소세로 돌아섰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을 낙관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아난드 마힌드라(62) 인도 마힌드라그룹 회장이 “인도 IT 아웃소싱 업체들엔 기회일 수도 있다. 미국에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차제에 아웃소싱에만 의존해 매출을 올리던 데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과 관련된 사업을 키우면서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인도는 타타 컨설턴시서비스, 인포시스, 테크마힌드라 같은 대규모 IT 아웃소싱 업체들을 대거 보유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500대 기업의 75% 이상이 인도의 아웃소싱 업체를 활용 중이다.

1386호 (2017.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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