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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대어 낚은 낚시꾼 … 렌즈의 마술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렌즈 종류에 따라 원근감, 피사체 크기 달라져 … 전달할 메시지에 맞는 렌즈 골라야

▎사진 1.
사진은 사람의 눈과 렌즈의 싸움입니다. 여기서 이기면 좋은 사진이 되고, 패하면 그렇고 그런 사진에 머물게 됩니다. 아직은 기계적인 눈이 생물학적인 눈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카메라의 눈은 사람의 눈을 이길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렌즈의 종류, 즉 초점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원근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의 원근감을 카메라 렌즈로 비교하면 약 50㎜ 표준렌즈에 가깝습니다. 이보다 초점거리가 짧은 것을 광각렌즈, 긴 것을 망원렌즈라고 합니다. 광각(廣角)렌즈는 글자 그대로 프레임 상하좌우의 폭이 넓습니다. 화각이 넓다 보니 가까운 거리에서 넓게 흩어져 있는 피사체 전체를 다 넣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광각렌즈는 원근감이 과장되게 나타납니다.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작게 표현됩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휴대폰 카메라는 보통 28㎜ 정도쯤 되는 광각렌즈입니다. 여성들이 함께 어울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얼굴이 작게 나오려고 서로 뒤로 한 발짝 물러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카메라에 가까이 있는 사람은 얼굴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또 전신을 찍을 때 같은 눈높이로 찍으면 머리가 크게, 다리가 짧게 나옵니다. 반대로 앉아서 찍으면 다리가 길게, 머리가 작게 보입니다. 광각렌즈의 특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물사진은 만드는 시대


▎사진 2.
요즘 인물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시대가 됐습니다. 포토샵 후 보정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연예인들이 광고 사진을 찍을 때는 다리를 늘이고, 얼굴을 적게 하고, 피부를 매끈하게 밀고, 얼굴에 있는 잡티를 없앱니다. 마치 성형수술을 하듯이 인조인간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공항 광고판에 있는 걸그룹 다리 모양이 다 똑같다’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망원렌즈는 화각이 좁습니다. 그러나 멀리 있는 피사체를 확대해서 찍을 수 있습니다. 이때 피사체가 일렬로 서 있을 경우 망원렌즈를 사용하면 뒤에 있는 피사체까지도 당겨지게 됩니다. 렌즈 특성 때문에 원근감이 줄어듭니다. 사진을 찍을 때 렌즈 선택은 바로 이 원근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로 결정해야 합니다. 물론 ‘넓게 찍을 때는 광각렌즈, 확대할 때는 망원렌즈’ 식으로 단순하게 결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좋지 않은 습관입니다. 렌즈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라던가 사진 특유의 맛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줌렌즈보다 ‘발줌(사진 찍을 때 다가가거나 물러서서 찍는 것을 일컫는 은어)’을 쓰라고 이야기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진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이냐에 따라 렌즈 선택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퇴근길 초승달이 떴습니다. 휴대폰으로 찍어 보니 너무 작게 나옵니다. 초승달의 고운 선도 뭉개집니다. 줌 기능을 이용해 화면을 확대해서 찍어보니 사진의 질이 거칠 뿐만 아니라 셔터타임이 길어져 흔들립니다. 이는 휴대폰, 아니 광각렌즈 탓입니다. DSLR 카메라에 200㎜ 망원렌즈로 아파트와 초승달을 찍었습니다[사진 1]. 물론 야간이기 때문에 삼각대가 필요합니다. 사진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파트도 달도 선명하게 나옵니다. 또 아파트와 달 사이의 원근감이 줄어 달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아파트와 가까워 보입니다. 베란다에서 긴 장대에 갈고리를 달고 손을 뻗으면 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달을 볼 틈도 없습니다. 달이, 저렇게 예쁜 초승달이 가까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시각의 내성을 무력화시킬 창의성 필요

이번에는 해를 찍어 볼까요. 제주 모슬포항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사진 2]. 멀리 떨어져서 400㎜ 망원렌즈로 사람과 해를 찍어 보았습니다. 400㎜ 렌즈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50㎜)보다 8배의 배율로 피사체를 확대해서 찍을 수 있습니다. 낚시꾼과 해의 거리, 즉 원근감도 8배 좁혀집니다. 망원렌즈 덕분에 낚시꾼은 대어(?)를 낚았습니다.

우리는 영상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미지의 홍수입니다. 거리에 나서면 우리가 사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우리를 봅니다. 우리 머리 속에는 이미지의 데이터베이스가 이미 꽉 차 있습니다. 그만큼 시각적인 내성도 강해졌습니다. 사진은 이 시각의 내성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눈과의 한판 승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은 카메라 렌즈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 기능이 앞서 있습니다. 전면전을 벌이면 백전백패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연구하고 이를 역이용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사진만이 갖고 있는 무기를 이용해 게릴라전을 펼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카메라와 렌즈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매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그만큼 더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집니다. 시각적인 내성이 작용하지 않는 선도 높은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진은 ‘착한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392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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