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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내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복용량·기간 처방대로 지켜야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치료제는 내성 걱정 덜해... 항생제는 복용 중단하면 증상 나빠져

고혈압을 비롯해 당뇨병·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을 관리하려면 치료제를 매일 복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약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는 환자가 많다.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고, 앓는 기간이 오래 될수록 점점 더 강한 약으로 바뀐다는 점도 내성을 우려하게 하는 이유다.

진통제는 남용하면 내성 생길 수도


하지만 이런 우려는 착시현상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만성질환 치료제는 내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 고혈압을 예로 들면, 혈압약의 치료 목표는 망가진 혈관을 건강하게 되돌리는 것이 아니다. 매일 혈압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도다. 점점 강한 약으로 바뀌는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혈관이 점점 약해지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으면 세포도 늙는다. 세포 속 지방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반면 수분은 줄어든다. 이에 따라 지용성인 약과 수용성인 약을 적절히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멋대로 약을 끊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약을 얼마나 잘 먹는지는 병의 예후에 큰 영향을 끼친다. 고혈압을 비롯한 만성질환의 경우 이런 경향이 훨씬 강하다. 실제 지난해 원자력병원에서 발표한 연구에선 복약순응도가 낮을수록 심장병·뇌졸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처방된 약을 80% 이상 복용했을 때(좋음), 50~80% 복용했을 때(양호), 절반도 복용하지 않았을 때(나쁨)로 나눈 후 사망과 연관성을 분석한 결과, 심장병으로 인한 사망 위험은 나쁨일 때 최대 1.64배 컸다. 뇌졸중 사망위험도 최대 2.19배 컸다. 서울시보라매병원 가정의학과 오범조 교수는 “고혈압약은 내성이 거의 없는데 오히려 약을 끊었다가 먹으면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통제 역시 내성에 대한 우려가 큰 편이다. 진통제는 종류에 따라 내성 및 의존성이 다르다. 마약성 진통제는 내성과 의존성에 주의해야 한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야만 먹을 수 있다. 암을 비롯한 중증 질환이거나 교통사고 등으로 외상이 심할 때가 아니면 처방받을 일이 거의 없다.

약국에서 쉽게 구하는 진통제는 모두 비마약성 진통제다. 해열진통제든 소염진통제든 카페인 성분이 포함된 복합진통제든 정해진 용법·용량만 따르면 내성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단, 남용할 경우엔 내성이 생길 수 있다. 약을 지나치게 자주 먹으면 몸이 약효에 익숙해지고 간과 신장에서 약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져 약효 지속시간이 짧아진다.

대한두통학회는 어떤 진통제든 월 15회 이상 또는 주 3회 이상 복용하지 말라고 권유한다. 이 용량으로도 조절되지 않는 통증은 병원을 찾아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평소 먹던 진통제가 잘 듣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성이 아니라 통증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한다. 내성이 생긴 게 아니라 통증의 강도가 전보다 심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진통제 개수를 늘리기보다는 병원을 찾는 게 좋다.

반대로 내성 걱정에 통증을 무작정 참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무작정 약을 피하면 더 심한 통증에 시달린다. 이땐 더 많은 양의 진통제가 들어가야 통증이 잡힌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가장 원치 않던 더 많은 약을 복용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을지병원 신경과 김병건 교수(대한두통학회장)는 “통증이 시작된 지 30~60분 안에 약을 복용해야 한다”며 “그 이후에는 몸에서 신경을 흥분시키는 물질을 분비해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말했다.

일부 진통제는 의존성도 문제가 된다. 카페인 성분이 함유된 복합 진통제는 장기 복용했을 때 의존성을 유발한다. 카페인은 중추신경을 자극해 머리를 맑게 하는 각성 효과가 있다. 진통 성분의 흡수를 도와 빠르게 효과가 나타나게 한다. 효과가 좋은 대신 하루 3회 이상 꾸준히 복용하면 효과가 점차 감소한다. 내성과 함께 의존성이 생겨 진통제를 끊으면 반작용으로 다시 두통이 올 수 있다. 의학계에선 ‘금단 두통’이라고 설명한다. 남용 자체가 두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땐 치료가 굉장히 어렵다.

내성이 말썽을 부리는 건 항생제다. 항생제 내성은 전 세계적인 문제다. 특히 한국은 내성 문제가 심각하다. 국내 항생제 처방률은 31.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3.7%) 대비 8.0%포인트 높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병원 감염의 82.2%, 지역사회 감염의 61.5%가 페니실린계 항생제인 암피실린에 내성이 생긴 상태다. 암피실린 약제가 감염병 치료제로서 효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의미다.

항생제 내성 문제가 심각해진 데에는 오용이 한몫했다. 처방받은 항생제를 제대로 복용하지 않아 내성을 키우는 것이다.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복용 기간이다. 일주일치 항생제를 처방받았다면 병이 나은 것 같아도 반드시 끝까지 복용해야 한다. 열이 떨어지고 기침이 사라졌다고 복용량을 줄이거나 중단하면 세균이 완전히 사멸하지 않고 남는다. 항생제에 대응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다. 같은 항생제에는 반응하지 않는 내성균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용기간을 정확히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항생제 내성을 걱정해 최대한 짧게 복용하려고 한다. 내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경향이다. 실제 아시아태평양감염재단이 국내 20대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증상이 나아지면 항생제 복용을 중단해도 되나’라는 질문에 73.5%가 ‘그렇다’고 답했다.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병원에서는 세균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용량과 기간을 정해 항생제를 처방한다”며 “복용량과 복용 기간을 따르지 않으면 완전히 죽지 않은 세균이 유전자를 변형해 내성균으로 바뀌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스테로이드 제재도 내성에 주의해야

스테로이드 제재도 내성에 주의해야 하는 약 중 하나다. 스테로이드는 악명과 달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부신피질에서 매일 5㎎씩 생성된다. 몸에서 나오는 스테로이드만으로 부족할 때 외부에서 일시적으로 필요한 양을 주입한다. 그러나 항생제와 마찬가지로 적정 복용량과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

일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연고 형태의 스테로이드다. 주로 피부 질환에 사용된다. 정해진 기간 이상 사용하면 부신피질이 착각을 하게 된다. 스스로 분비량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점점 더 많은 양을 외부에서 주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존성도 생긴다. 스테로이드를 사용해야만 증상이 가라앉는다. 약을 끊으면 반동에 의해 증상이 나빠질 우려가 크다. 서울시보라매병원 정선회 약제부장은 “스테로이드는 필요할 순간에 필요한 양만 정확히 사용하고 서서히 줄이는 방식으로 부신피질이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며 “처방받은 약을 들쑥날쑥 투약하거나 정해진 기간보다 오래 사용하면 내성과 의존성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1393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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