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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꽃 같고 별 같은 소나무 평면성의 미학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빛을 받아 반짝이는 대상과 어두운 배경의 밝기 차이에서도 기인

▎사진 1. 소나무 잎
'장님 코끼리 더듬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불교 경전 ‘열반경’에 나오는 우화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코끼리가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이고, 제각각 만져 본 부분만 얘기하다 보니 서로 틀리게 말합니다. 우화에는 부분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일침이 담겨있습니다. 그렇지만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해서 지금은 잘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코끼리 만지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서양화가 엄정순이 2009년부터 재능봉사로 진행합니다. 우리나라 12개 시각장애인 학교 학생들이 차례로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만지고 그 느낌을 얘기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도 합니다. 해마다 전시회도 엽니다. 전시 제목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전(展)’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에 ‘도전장’을 낸 것입니다.

사진은 태생상 추상성 강조


▎사진 2. 야자수 잎
화가는 한 언론매체 기고에서 프로그램 기획의도를 이렇게 얘기합니다.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 우화가 시각장애인에 대한 비하로 오해될 때면 아쉬웠다. 그리고 의문이 생겼다.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을 만났을 때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표현할지, 정말 우화 속 사람들 같을지….”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습니다. 결과는 어땠을 까요. 전시작품을 본 화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코끼리 형상은 없다, 동시에 너무나 코끼리답다”고 말했습니다. 미술 전문가들은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조형성과 미학에 가깝다”고 칭찬했습니다. 코끼리에 대한 지식과 직접 손으로 만져본 느낌을 예술적 이미지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시각은 지각과 인식의 출발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훈련된 촉각 역시 시각에 못지 않습니다. 현대예술이 시각 중심에서 촉각, 후각을 강조하는 등 ‘감각의 해방’을 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코끼리 형상은 없지만 너무나 코끼리답다’는 작가의 말을 사진에 대입해 곱씹어 봅니다. 이는 코끼리의 추상이자 심상(心像)입니다. 심상은 개인차가 큽니다. 망막에 맺히는 형상은 똑같지만 마음속에 자리잡는 이미지는 심리적인 편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성격에 따라,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당시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지요. 다르기 때문에 예술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현대예술은 정답이 없습니다. ‘닮음’보다는 ‘다름’을 추구합니다.

이는 사진이 추구하는 정신과도 통합니다. 사진은 태생상 추상입니다. 좋건 싫건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프레임의 제약 때문입니다. 또 같은 대상이라도 보는 위치에 따라서, 빛에 따라서, 시간대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보입니다. 사진가는 다름의 미학을 창출해내는 사람입니다. 달리 보기로 창조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얼마 전 사무실 비상계단을 오르다 발 아래 있는 소나무를 봤습니다[사진 1]. 나무를 위에서 내려다 볼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소나무 잎의 단면이 둥글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부랴부랴 카메라를 들고 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소나무가 꽃 같고, 별 같습니다. 사진의 평면성도 한몫했습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소나무 잎과 어두운 배경의 밝기 차이도 보이지 않는 원을 만들어 냅니다.

코끼리 더듬기 우화는 부분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전체를 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부분으로 전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면, 현실의 한 단면에 압축된 상징성을 담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추상 작품이 됩니다.

덧셈보다는 뺄셈

추상은 애매모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핵심만을 추출한 것을 말합니다. 사진가는 대상의 정수를 취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덧셈 보다는 뺄셈이 낫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어느 한 부분만을 보여주는 물리적인 뺄셈 만으로는 추상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마음의 추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상과 교감하고, 머리 속에서 정교하게 이미지를 재단해야 합니다. ‘뜻이 먼저고, 붓이 나중’이라야 좋은 사진이 됩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상징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사진가는 ‘코끼리를 더듬는 사람’입니다.

[사진 2]는 동남아 여행 중에 찍은 야자수 잎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번뜩 와 닿는 게 있습니다. 짙은 갈색에서, 녹색으로 또 연두색으로 변해가는 야자수 잎에서 우리 인생사를 봅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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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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