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마다, 렌즈마다 색감 달라 … 사진의 완성은 프린트
▎[사진1] 모네의 루앙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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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과 형태는 시각예술의 핵심 요소입니다. 색이 감정과 관련이 있다면 형태는 다소 이성적인 개념입니다. 형태는 객관적이며 사물의 구체적인 형상을 설명합니다. 이와 달리 색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며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인상파 화가들은 빛과 색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물의 색, 그 느낌까지를 재현하려고 애썼습니다. 카메라의 등장으로 수 천년 이어져 오던 재현의 전략을 수정한 것입니다. 모네는 루앙성당[사진 1]을 수 백번 고쳐 그리며 색채 연구를 했습니다. 성당의 벽면은 각기 다른 낯빛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여러 색 중 어느 것이 성당 벽면의 진짜 색일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색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기 때문입니다.야수파는 서양미술사에서 색을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티스가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현실에 보이는 자연색을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색 개념으로 바꿔 버렸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살색이 아니라 붉은 색이나 파란색으로 칠하기도 했습니다. 색감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명예스럽게 ‘야수’라는 별명을 얻게 됐습니다. 객관적인 색을 무시하는 화가는 마치 짐승이나 다름없다는 비하의 뜻이 담긴 표현입니다. 야수파의 등장은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색감정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사진에서 색을 다루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사진은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현실을 찍어내듯 복사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떤 카메라도 자연의 절대색을 재현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같은 것을 찍어도 카메라마다 각기 다른 색이 나옵니다. 같은 카메라도 렌즈에 따라 색이 달리 나타납니다. 결국 색 재현의 기준은 사진가가 현장에서 본 ‘느낌색’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사진 2]는 팔당호 근처에서 본 일출 장면입니다. 먼동이 트는가 싶더니 강렬한 붉은 색이 꿈틀대며 세상을 붉게 물들입니다. 깜깜한 어둠이 걷히고 갑자기 솟아오르는 붉은 기운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공포감마저 들었습니다. 육사의 시 ‘광야’의 첫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사진2] In the beginning,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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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느낀 그 신비한 붉은 색을 카메라는 어떻게 구현했을까….’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리적인 붉음의 순도는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피보다 붉은 빛이 뿜어낸 신비·공포·전율의 느낌은 없었습니다.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신내림 같은 색의 기운을 0과 1의 과학으로 풀어내기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유한한 수(數)로 무한한 신성을 가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색이 아니라 어떤 ‘기운’이고 숭고의 감정이었습니다.그런 느낌색을 재현하기 위해 ‘포토샵’과 씨름을 했습니다.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을 얻었습니다. 후보정 작업을 끝내고 사진에 ‘In the beginning(태초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써 색을 손봤는데 컴퓨터 모니터마다 색감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A사가 제조한 모니터에는 유치한 빨간색이 나는가 하면 B사의 모니터에는 보라빛이 돌았습니다. 도대체 색의 기준을 어디에다 맞춰야 할까요. 결국 기댈 곳은 최종 출력물인 프린트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의 완성은 프린트’라고 합니다.그림은 화가가 물감을 조합해 색을 만들어 씁니다. 그것이 최종 작업입니다. 그러나 사진은 과정이 매우 복잡합니다. 촬영에서 프린트에 이르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수와 맞닥뜨려야 합니다. 카메라와 렌즈에 따라 색이 다릅니다. 촬영 때 측광을 밝게 하면 색이 옅어지고, 어둡게 하면 짙어집니다. 사진편집 프로그램 역시 영향을 미칩니다. 색 보정 작업을 하는 컴퓨터와 모니터도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을 보입니다. 프린트 기기와 잉크는 인쇄 품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인화지 역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색감이 달라집니다. 사진가와 인쇄업자가 종종 고함을 치며 멱살잡이를 하는 이유도 사진의 복잡한 공정 때문입니다. 원하는 색을 얻으려면 사진가는 촬영에서부터 최종 출력까지 모든 부분에 직접 관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항상 현장에서의 ‘느낌색’이 돼야 합니다. 사진을 보고 “이거 뽀샵질한 거 아니냐?”라고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