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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권력기관 차마사 ‘비리 백화점’으로 변질 

 

서영수
명나라 때 조공 형태로 차마무역 바뀌며 위상 높아져... 상인들과 결탁해 밀매매 눈감고 부정 축재

▎사천성 명산지구에 있는 차마사 유적지.
차마사(茶馬司)는 송나라 6대 황제 신종(神宗)이 1074년 감숙성(甘肅省) 남부 교통 요충지인 진주(秦州)에 처음 설치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세금을 다루는 관청은 국가 핵심 권력기관이다. 세금과 무역을 동시에 관장하는 관청이었던 차마사는 중국 변경지대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세금으로 거둬들인 차로 차마무역(茶馬貿易)을 독점했던 차마사는 직접교역에 참여하거나 허가권을 준 특정 상인을 통해 간접 무역을 하기도 했다.

차마사는 명나라 초기부터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됐다. 명 태조(明太祖)는 1368년 1월 4일 명나라를 건국했지만 몽골고원으로 돌아간 원(元)나라의 후예 북원(北元)과 14년 동안 전투를 이어갔다. 우수한 전마(戰馬)의 지속적인 공급이 필요했던 명 태조는 차마사를 통해 차발마(差發馬) 제도를 1371년부터 시행했다. 현물조세제도인 차발마 제도는 티베트가 명나라에 말을 바치면 차(茶)로 보상하는 제도였다. 명나라 이전에는 평등한 교역형태로 이뤄졌던 차마무역이 세금과 조공형태로 바뀌며 명나라는 티베트를 정치적으로 장악했다. 명 태조는 개인이 사사로이 차를 팔아 말로 교환하는 사차(私茶)무역을 금지했다. 이를 어기면 목을 베는 참형(斬刑)에 처했다. 사차무역을 엄하게 금지한 이유는 전투마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물자로서 차를 비축해야 하는 동시에 유목민족의 생존필수품이 된 차의 수급 조절을 통해 주변국을 통제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의 수급 조절로 주변국 통제


▎차마사에서 사용하는 금패신부는 특별히 차마금패(茶馬金牌)라고 불렀다.
차마사를 변경지대에 추가로 설치해 전투력이 뛰어난 전마를 다량 확보한 명 태조는 1382년 북원을 멸하고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 명 태조는 차발마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보완책으로 금패신부(金牌信符) 제도를 1393년부터 확대 시행했다. 금패신부는 황명(皇命)으로 죄를 사면하는 징표로 고안됐지만, 전쟁 중에 지역과 소속이 다른 장졸 간의 신분확인과 군령을 받아 물자를 징발하고 인원을 징집할 때도 널리 사용됐다. 차마사에서 사용하는 금패신부는 특별히 차마금패(茶馬金牌)라고 불렀다. 쇠로 만든 재질에 구리로 도금을 했기에 금동신부(金銅信符)라는 별칭도 있다. 명 태조는 금패와 신부를 가진 자만이 차와 말을 교환할 수 있도록 차법(茶法)을 제정했다.

차마사에서 사용한 금패신부는 구리로 만들어진 금패와 쇠로 제작된 신부가 위아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금패는 전서체(篆書體)의 문자(文字)가 양각(陽刻)으로 새겨져 있다. 신부는 음각(陰刻)으로 문자가 새겨져 있다. 금패에는 ‘황제의 명령으로 징발하는 것을 거역하면 목을 벤다’는 내용으로 12자의 한자가 적혀있다. 신부는 말을 바쳐야 하는 티베트 지역의 족장과 승려에게 지급하고, 금패는 차마사 관리가 보관했다. 차와 말을 교환 할 때 양측의 금패와 신부를 맞춰보고 한 쌍으로 짝을 이뤄야만 공식적인 세금납부 효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금패신부는 중요한 징표였다.

차마사는 금패가 없는 자가 차를 밀매하는 것을 방지해 우수한 전마가 밀수입돼 사유화되는 것을 차단했다. 신부를 갖고 있는 티베트는 금패가 없는 탐관오리에게 속아 부당하게 말을 상납하는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금패신부는 사차무역이라 칭하는 밀매매와 지방관리가 직위를 이용해 암암리에 자행하던 부당 거래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명나라는 전국의 차나무 숫자를 파악해 세금과 무역에 활용할 정도로 차의 유통에 철두철미했다. 사차무역을 막기 위해 만든 차법을 어긴 자뿐 아니라 이를 눈감아주거나 감시를 소홀히 한 자도 사형에 처했다. 가혹한 처벌위주의 강력한 법이 오히려 한탕주의를 조장해 밀매매를 성행하게 한 측면도 있다.

차마사를 책임지는 대사(大使)는 명나라 초기에는 정9품, 부사(副使)는 종9품의 비교적 낮은 직급 관리로 중앙정부에서 파견했다. 지방의 재정과 민정을 책임지는 지방관리보다 중앙정부와 직결된 차마사의 권위가 실제로 더 강했다. 정6품의 관리가 1380년부터 대사로 부임하며 차마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높아진 위상만큼 관리의 부패도 가속화했다. 중앙정부 기관이지만 중앙과 거리가 먼 변방에 위치한 차마사는 변방의 최고 권력기관에서 법의 무풍지대로 변질됐다.

티베트 부족장에 뇌물 요구

차마사가 설치되기 이전부터 변경지대의 주민과 군인들은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사차무역을 해왔다. 티베트로 몰래 차를 가져가 특산품과 우량한 말로 교환한 후 이익을 붙여 국가와 상인에게 되팔았지만 이들 모두를 법대로 처벌할 수는 없었다. 서민들의 보따리 무역보다 더 큰 문제는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들이 조직적으로 대량의 차를 운반해서 말을 밀수해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차마사의 묵인과 결탁은 필수였다.

차마사의 묵인은 사차무역을 성사시키는 절대적 조건이어서 상인과 티베트 부족장이 모두 뇌물을 바치거나 요구받았다. 부패의 달콤한 맛에 취한 차마사는 관전자의 입장에서 부수입을 올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주전 선수로 뛰기 시작했다. 상인에게 뇌물을 받은 대가로 금패를 가진 관리가 정식 교역을 하는 사이 동행한 상인이 불법 밀매를 하도록 방조했다. 금패를 상인에게 빌려줘서 정식 거래로 위장해 불법 이윤을 챙겼다. 중앙정부를 빙자해 차발마 제도를 남용해서 말을 멋대로 상납받아 사리사욕을 채웠다.

차마사를 감찰하기 위해 중앙정부는 수시로 차어사(茶御史)를 내려 보냈지만 차마사의 직권남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차무역을 단속한 실적을 허위 보고하고 차마사에 보관중인 양질의 차를 조악한 품질의 차로 바꿔치기하는 교묘한 수법으로 감찰의 눈을 피해갔다. 화물 운반용 저급한 말을 국가에 납품하고 고가의 전투마를 착복하는 국방 비리를 저질렀다. 숱한 상소와 고발에도 사차무역은 근절되지 않고 나날이 성행해서 국가 주도의 무역량을 능가하게 됐다. 비리 백화점으로 전락한 차마사는 직권남용과 부정 축재의 주역이 되어 명나라 경제와 국력을 갉아먹는 존재로 타락했다. 엄정한 법과 감찰제도가 있었지만 인간의 그릇된 욕망 추구 앞에서는 무력했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394호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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