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 높이는 영양의 보고 … 물 속에 담가놓고 씻어야

▎사진:아이클릭아트

식재료의 뿌리·껍질은 늘 홀대받는다. 식감이 좋지 않다거나 잔류 농약을 제거한다며 알맹이만 먹기 좋게 손질하고 버린다. 하지만 식물의 핵심 영양성분은 뿌리·껍질에 있는 경우가 많다. 뿌리는 흙속 자양분을 흡수한 후 싹을 틔우기 위해 저장한다. 껍질에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는 항산화 성분(파이토케미컬)이 가득하다. 가능하다면 뿌리·껍질까지 모두 먹어야 좋다. 식재료에 담겨있는 영양소를 완전히 섭취하는 셈이다. 뿌리·껍질에 숨겨진 영양과 활용법을 알아봤다.

뿌리·껍질은 생명력이 가득한 양양 덩어리다. 가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박희옥 교수는 “뿌리나 껍질 채 잘 먹지 않는 식물이라도 오히려 뿌리·껍질에 알맹이보다 영양분이 풍부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일부 영양소는 껍질·뿌리에만 존재하기도 한다. 입에는 거칠어도 생긴 그대로 몸통은 물론 뿌리·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뿌리에서 황산화 물질 생산·비축

뿌리는 땅 속에 숨어 있는 보석이다. 싹을 틔우고 꽃·열매를 키우는 데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뿌리에 저장된다. 뿌리는 땅속의 박테리아와 끊임없이 싸우면서 몸에 유익한 항산화물질을 생산·비축한다. 몸을 활성화시키는 생리활성물질이 뿌리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다. 강동경희대병원 한방내과 박재우 교수는 “한의학에서 식물을 약용으로 사용할 때는 약성이 강한 뿌리 부분만 잘라 사용한다”며 “한약재의 70%가량은 식물의 뿌리”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파 뿌리에는 항산화 성분인 폴리페놀이 잎·줄기보다 두 배가량 많다. 약용으로 사용할 때는 뿌리 부분만 잘라 사용한다. 인삼·우엉·감초·당귀·작약 같은 한약재 역시 식물의 뿌리다.

뿌리를 다듬어 먹는 식재료에도 버려지는 영양성분이 가득하다. 콩나물이 대표적이다. 가느다란 잔뿌리에도 영양성분이 밀집돼 있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의 생성을 돕는 콩나물의 아스파라긴산 80% 이상이 잔뿌리에 존재한다. 콩나물 뿌리가 길수록 아스파라긴산 함량이 크게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경북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2008). 숙취해소를 위해 콩나물국을 먹는다면 콩나물 뿌리를 다듬지 말아야 한다.

껍질도 버려서는 곤란하다. 알록달록한 껍질은 식물을 보호하는 방패다. 식물은 동물처럼 움직일 수 없어 외부의 세균·자외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수많은 면역물질을 껍질에서 생성한다.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김범택 교수는 “껍질에 풍부한 펙틴은 과육이 상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말했다. 예컨대 사과의 껍질을 깎아 놓으면 하얀 알맹이가 금방 산화돼 갈색으로 변한다. 이와 달리 껍질에 둘러 쌓여있는 부분은 본래 그대로의 속살을 유지한다.

음식물 쓰레기로 취급되는 불그스름한 양파 껍질도 의외로 건강 식재료다. 양파 특유의 영양소인 퀘르세틴은 양파의 속보다 껍질로 갈수록 함량이 높아진다. 목포대학교 식품공학과 박양균 교수 연구팀은 양파의 부위별로 퀘르세틴 함유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양파의 가장 바깥쪽 껍질의 퀘르세틴 함량은 322㎎인데 반해 가장 안쪽 알맹이의 퀘르세틴 함량은 1.1㎎에 불과했다. 농촌진흥청 국립과학원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도 두세 겹에 불과한 양파 껍질에는 양파 전체의 6.5%에 달하는 퀘르세틴이 함유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과·수박·포도·참외·배·귤 같은 과일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먹는 과육보다는 껍질에 다양한 항산화 성분이 집중돼 있다. 사과 한 개를 껍질을 제거하고 먹으면 비타민C 섭취량이 8.6㎎이지만, 껍질까지 먹으면 이 수치는 10.3㎎으로 높아진다. 식이섬유도 섭취량이 2배가량 늘어난다. 강동 경희대병원 영양팀 이정주 파트장은 “껍질을 두껍게 깎아 제거하면 껍질에 있는 영양소는 섭취하지 못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수박의 하얀 속껍질에는 다이어트로 근육이 빠지는 것을 막는 시트룰린이, 검붉은 포도껍질에는 인간 수명을 연장하는 핵심 단백질을 활성화하는 레스베라트롤이 들어있다. 반면 과육에는 이 같은 항산화 물질이 매우 적다. 박희옥 교수는 “과육을 보호하는 껍질은 빨간색(라이코펜)·보라색(안토시아닌)·주황색(카로티노이드)·초록색(클로로필)·하얀색(안토잔틴) 같은 색을 띠는데 이 색에 항산화 성분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과육보다 껍질에 다양한 항산화 성분 많아

뿌리·껍질에 숨어있는 영양소를 제대로 섭취하려면 세척을 잘 해야 한다. 농약은 대부분 표면에 묻어있다. 문미선 요리 연구가는 “과일은 흐르는 물에 씻는 것보다 물이 담긴 큰 그릇에 잠시 넣어놓고 손으로 표면을 닦아내듯 씻으면 잔류 농약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표면에 흙이 묻어있는 뿌리채소는 굵은 소금으로 문질러야 틈새까지 깨끗이 씻을 수 있다.

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복숭아·키위처럼 까슬까슬한 털이 있는 껍질은 과일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 김범택 교수는 “알레르기에 예민한 사람은 털이 달린 과일의 껍질은 가급적 제거하고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평소에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은 껍질을 많이 먹지 않도록 조심한다. 껍질에 풍부한 식이섬유는 잘 소화·분해되지 않는다. 갑자기 많은 양의 식이섬유를 섭취하면 메탄·이산화탄소 등 가스가 생성돼 복부 팽만감·더부룩함 같은 소화 장애를 겪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