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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보다 뜨거운 맥주 전쟁] 수입·수제 대공세에 국산 수성 나서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편의점 맥주 매출 수입·수제 제품 국산 앞질러 … 맥주 제조법 배우는 사람도 늘어

▎사진 : 프리랜서 김정한
서울 강남구에 사는 강지현(40·여)씨는 지난 2월 일본 여행 중 삿포로맥주 박물관에 들렀다가 현지 맥주의 맛에 매료됐다. 한국에선 맛보지 못한 시원하고 깊은 맛이었다. 현지 맥주의 역사, 제조 과정, 맛 결정 요소에 대해 설명을 들으니 맥주의 맛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요즘 강씨는 퇴근 후 편의점에서 그 맥주를 사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

강씨처럼 편의점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무더위를 식히는 ‘편맥족’이 늘었다. 편의점 CU에 따르면 무더위가 시작된 6월 1~18일을 기준으로 맥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특히 수입 맥주의 매출이 37%나 뛰어올랐다. 한 자릿수 성장률을 보인 국산 맥주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단순히 시원하게 들이키는 맥주 맛을 넘어 맛·향은 물론 원산지까지 구분해 개인 취향을 만족시키는 트렌드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주 수입량이 늘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수입량은 2억2055만L로 2014년(1억1946만L)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늘었다. 수입 맥주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많아진 데다 편의점·대형마트에서 묶음 판매 등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올해 수입 맥주가 국산 맥주의 매출을 앞질렀다. 2015년 수입 맥주의 매출 점유율은 36.4%에 불과했지만 2017년 51.4%로 국산 맥주(48.6%)를 뛰어넘었다. 편의점 GS25도 2014년 국산 맥주가 76.2%, 수입 맥주가 23.8%의 매출 비율을 보였지만 2017년 1~5월 기준 44.6%대 55.4%로 수입 맥주가 역전했다.

다양한 맛에 가격 경쟁력도 갖춰


수입 맥주 할인 행사도 소비를 부추긴다. 홈플러스는 6월 1~28일 전국 매장에서 ‘세계맥주 페스티벌’ 행사를 진행했다. 네덜란드 ‘하이네켄’, 덴마크 ‘칼스버그’, 독일 ‘파울라너’, 미국 ‘밀러’, 멕시코 ‘코로나’, 벨기에 ‘스텔라’, 아일랜드 ‘기네스’, 일본 ‘아사히’, 중국 ‘칭다오’, 체코 ‘필스너우르켈’ 등 27개국 200여 종의 맥주를 팔았다. GS25는 2015년 6월부터 수입 맥주 4캔을 1만원에 제공하는 행사를 꾸준히 펼치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수입 맥주는 국산 맥주보다 마진을 유동적으로 붙일 수 있어 대폭 할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수입 맥주도 우후죽순 나오고 있다. 편의점 CU는 6월 22일 수입 맥주 3종을 새롭게 출시했다. BGF리테일 이용구 MD(상품기획자)는 “수입 맥주 열풍이 지속되면서 나라별 개성 있는 맥주를 저렴하게 선보이기 위해 현지 브루어리(양조장)로부터 직수입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맥주 맛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사람들은 점차 수제맥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제맥주란 독립된 양조장에서 자체 레시피로 소량 제조하는 맥주를 일컫는다. 법적으론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가진 사람이 5~75kL의 양조 시설을 갖춘 곳에서 만든 맥주가 수제맥주다. 맥주 원료 배합비율에 따라 맥주 제조자의 ‘손맛’을 탈 수 있어 다양한 맛을 연출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규제 완화로 수제맥주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수제맥주는 2010년대 초 서울 이태원·홍대 인근에서 젊은층을 대상으로 팔리면서 전국적으로 확장됐다. 2014년 4월 주세법이 개정된 후에는 대기업, 중소 수입사, 브루어리(양조장)가 수제맥주 시장에 뛰어들면서 급성장했다.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에 따르면 2002년 단 한 곳에 불과했던 국내 소규모 양조장은 현재 70~80곳으로 늘어났다.

하이트진로·롯데주류 잇따라 신제품 내놔

수제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과 손잡고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늘었다. 홈플러스는 6월 7일 수제맥주 ‘해운대 맥주’를 출시했다. 쓴맛·알코올을 낮춰 대낮에 마셔도 부담 없는 ‘낮맥’용으로 기획한 에일 맥주다. 국산 수제맥주 양조장인 ‘코리아 크래프트 브류어리(KCB)’가 제조했다.

수제맥주에 ‘맛 들인’ 사람들이 맥주를 직접 만드는 방법을 배우려는 열풍도 뜨겁다. 서울 이태원에서 수제맥주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욱연 대표는 “주말마다 두 시간씩 수제맥주 만드는 법을 강의하는데 7월까지 예약이 꽉 찼다”며 “수제맥주를 마시러 왔다가 제조법을 배워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집에서도 쉽게 맥주(자가소비맥주)를 만들 수 있도록 맥아·홉·효모 등으로 구성한 양조 도구 세트도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해외 체류 경험이 과거보다 많아지면서 수입·수제 맥주를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도 맥주 시장의 다양화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여행 블로그에는 해외 여행길에 마신 맥주의 맛을 그리워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와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김숙희(37·가명)씨는 “해외에 나갈 기회가 없다 보니 가보지 못한 나라의 맥주 맛을 느끼고 싶어 수입맥주를 즐겨 산다”고 말했다. 여기에 조금 더 값을 치르더라도 가치 있는 소비를 하겠다는 2030세대 ‘욜로(YOLO)’족과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 문화도 수입·수제 맥주 소비를 촉진하고 있다.

독일에서 맥주양조책임자 과정을 졸업한 류강하 맥주 전문가는 “1차에서 소주에 고기를 먹은 후 2차에서 입가심용 맥주를 마시던 문화에서 점차 첫 술로 맥주를 찾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다양한 맛을 추구하는 트렌드와 관련 법령의 개정 등이 맥주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전과학기술대 식품영양과 김창임 교수는 “수제맥주는 만드는 사람, 환경에 따라 맛·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만의 취향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새롭고 다양한 맥주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국내 맥주 업계도 전략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대형 양조시설을 갖추고 있는 주류 대기업은 수제맥주를 만들 수 없다. 대신 기존 맥주와 차별화한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 신제품 ‘필라이트(Filite)’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맛은 맥주와 같지만 ‘기타 주류’로 분류된다. 기존 맥주 제조공법에서 맥아 같은 원료의 비중을 달리해 원가를 낮췄다. 알코올 도수는 4.5도다. 롯데주류는 6월 라거 신제품 ‘피츠 수퍼클리어’를 출시했다. 자체 개발한 고발효 효모(수퍼 이스트)를 사용해 발효도를 90%까지 끌어올려 잡미·잡향을 최소화했다. 카스는 첨단 냉각필터 기술을 맥주 제조에 응용해 신선하고 톡 쏘는 맛을 더욱 강화했다.

1391호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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