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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나무가 된 개나리 프레임의 마법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사진의 미학은 창조 아닌 취사선택의 발견...시간과 공간의 전략적 선택

▎개나리.
대학 다닐 때 당구에 미친 적이 있습니다. ‘여친’을 만나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지요.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삐쳐서 나가버린 여친이 다음날 “당구가 좋아, 내가 좋아?” 하고 묻는 통에 많이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사각형으로 된 형태를 보면 당구대가 생각났습니다. 책·노트·유리창·문….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정이 당구대로 보였습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이른바 ‘알다마’을 칠 때 당구공이 튀는 방향과 속도, 당구공 모으는 방법, 쓰리 쿠션의 각도까지. 당구가 너무 좋았습니다. 친구들과 모이면 나중에 집안에 당구대 하나는 꼭 설치하겠다고 얘기했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짜장면을 먹을 때는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사진을 배우고 나니 이번에는 사각형으로 된 창문이나 열린 대문이 카메라의 파인더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가며 구도 잡는 연습을 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눈을 사각형으로 뜨고 다녔습니다. 광각렌즈를 이용한 넓은 사각형, 망원렌즈로 바꿨을 때의 좁은 사각형. 세상을 온통 사각형 눈으로 스캐닝 합니다. 머리 속으로 시각화가 잘 안되면 어릴 때 미술시간에 배웠던 구도 만들기 기법까지 동원합니다. 엄지와 검지를 엇갈리게 해서 사각형을 만듭니다. 눈에서 가깝게 또는 멀게 해서 구도를 잡습니다. 눈에 가까운 것은 광각렌즈고, 먼 것은 망원렌즈가 됩니다.

구도는 사후 분석의 개념


▎미인.
그런데 사진과 그림은 같은 사각형 프레임을 쓰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용어부터가 다릅니다. 그림은 ‘구도’라는 말을 씁니다. 사전 설계의 개념입니다. 그림은 허구성을 전제로 구도를 잡습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사각형 틀 속에 사람이나 사물을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이때는 화가의 미적 감각과 표현이 가미됩니다. 그리고 상상력을 보태 자유롭게 화면을 구성합니다.

사진은 구도 대신 ‘프레이밍(framing)’이라는 말을 씁니다. 구도는 사후 분석의 개념일 뿐입니다.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슬린다고 뺄 수도 없고, 필요하다고 넣을 수도 없습니다. 엄격한 취사선택의 미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화가는 중심에서 선을 긋기 시작하고 사진가는 테두리에서 표현하기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프레임은 사진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사진의 표현성은 ‘프레임의 마법’에서 출발합니다. 사진1 [개나리]를 볼까요. 봄이 되면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는 개나리 꽃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니 개나리가 나무로 돌변했습니다. 곧게 뻗은 나무에 개나리 꽃이 흐드러집니다. 전형적인 나무의 형상이 됩니다. 가까이에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을 넓히면 개나리 덤불을 뚫고 솟아 있는 나무가 보입니다. 프레임의 마법이 개나리를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사진2는 [미인]이라는 작품입니다. 퇴근 길 우연히 만난 장면입니다. 자동차 문 손잡이가 사람의 눈으로 보입니다. 가무잡잡한 피부와 두툼한 입술을 가진 미인입니다. 자동차 손잡이에 빛이 반사됩니다. 마치 긴 속눈썹을 붙인 여자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빛에 반사된 발판은 마치 밝은 분홍 립스틱을 바른 것 같습니다.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를 역임한 존 자코우스키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사진가는 상상의 프레임으로 세계의 의미들과 모습들을 편집한다. 이 프레임이 바로 사진가가 찍은 사진의 시작이다.”

정제된 상징성·추상성으로 세상 비춰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전략적인 선택’입니다. 시간은 사진을 찍은 시점이자, 빛을 뜻합니다. 공간은 프레임이 오려낸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사진은 프레임 안에 있는 것들만 설명할 뿐, 밖에 있는 현실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현실의 맥락을 사진 한 장으로 오롯이 표현할 수 없습니다. 뉴스 사진에서 왜곡, 편파 시비가 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진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매체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진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미적 감각입니다. 사진의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대한 깨우침을 줍니다. 또 시적 레토릭을 부여하는 틀이 됩니다. ‘포토아이(photo-eye)’로 정제된 상징성과 추상성으로 세상을 비춥니다. 사진의 미학은 창조가 아니라 발견입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391호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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