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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JLPGA투어 휩쓰는 한국 여전사들] 미국행 대신 일본행 택한 ‘세리 키즈’ 맹활약 

 

남화영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편집장
생활 편리하고 국내보다 상금액수도 높아...안선주·이보미·신소애 승승장구

▎탄탄한 실력에 겸손함까지 갖춘 이보미는 일본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TV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 말려'에 ‘보미짱’ 캐릭터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0년 7월 18일 일본 시즈오카현 도메이 골프장.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1년차 루키 안선주가 스탠리레이디스골프토너먼트에서 이지희와 연장전 끝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국에서는 팡파레가 울렸다. 1985년 구옥희가 일본에서 첫 승을 올린 후 26년 만에 한국 선수가 100승째를 기록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불과 7년 만인 올해 6월 말 현재, 200승에 단 하나의 우승만 남겨두고 있다.

100승까지 25년 … 구옥희·이지희·전미정 고군분투


▎지난해 6월 어스 몬다민컵에서 우승한 후 V자를 그리고 있는 이보미.
1978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선수권이 경기도 고양의 한양컨트리클럽에서 처음 열렸다. 이듬해는 3개로 대회 수가 늘더니 1980년에는 한 해 5개로 증가했다. 이 해에 5승을 싹쓸이 한 구옥희는 이듬해 5개 대회에서 4승, 다음 해에 열린 6개 대회에서도 5승을 했다. 1982년부터 그는 큰 무대인 일본으로 진출하려 백방으로 애썼다. 1983년 구옥희는 국내에서는 수원오픈 1승에 그쳤다. 대신 그 해의 대부분은 일본 투어를 따라 다녔다. 고생한 보람도 있었다. 이듬해에는 JLPGA투어 상금 랭킹 13위에 올랐다. 선수들의 평균 실력과 대회 환경이 한국에 비할 바 없이 월등했다. 구옥희는 생전에 “당시 여행자유화 시대가 아니어서 비자 발급이 까다로웠지만 여러 대회를 쫓아다녔다”고 회고한 바 있다. 구옥희는 85년 기분레이디스를 시작으로 JLPGA투어 3승을 거둔다. 첫 상금은 720만엔이었다. 그후로 2005년까지 23승을 올렸다. 메이저인 LPGA선수권을 두 번 쟁취했으며, 49세인 2005년에는 아피타서클K선크스레이디스에서 JL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도 세웠다. 한국인의 JLPGA투어 100승에 구옥희가 4분의 1을 짊어졌다면, 90년대 일본에 진출한 고우순과 이영미가 2002년까지 8승씩, 원재숙이 6승을 거두었다. 그 밖에 한희원과 신소라가 2승씩, 김애숙·김만수가 1승씩을 보탰다.

98년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스타덤에 오른 후 국내 유망주들이 미국행을 목표로 삼을 때 일본을 택한 선수도 나왔다. 2000년 이후 국내 무대에서 실력을 쌓고 검증받은 후 JLPGA투어에 진출한 이지희와 전미정이 그들이다. 97~98년 국가대표를 거쳐 KLPGA에 데뷔한 이지희는 2년간 국내 무대를 경험하고는 JLPGA투어 퀄리파잉을 치러 일본 투어에 진출했다. 2001년 첫 승을 거둔 이래 2003년 한 해 4승까지 거두었다. 그 뒤로 이지희는 거의 매년 우승을 쌓아 나가더니 지난해 2승을 포함해 21승을 기록했다. 그렇게 17년 동안 총 434개 대회에 출전해 통산 상금 10억3811만3390엔으로 일본 역대 상금 순위 2위로 올라섰다(상금 1위는 50승의 후도 유리).


전미정은 2001년 프로에 데뷔한 이래 2002년 신세계 KLPGA선수권, 이듬해 파라다이스여자인비테이션널에서 우승하더니 역시 미국 대신 일본행 티켓을 뽑았다. 비거리가 길지 않다는 자신의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고 생활 여건이 편리하다는 게 일본을 택한 이유였다. 그런데 2006년에 3승을 몰아치더니 이듬해 4승으로 상금왕에 오르고 2009년, 2012년에도 각각 4승을 거두면서 현재까지 25승을 올렸다. 지난해 7월 중순 사만사타바사걸스컬렉션레이디스에서 우승하며 구옥희의 23승을 깬 데 이어 올해도 요코하마타이어골프PRGR레이디스컵에서 우승하면서 통산 25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전미정이 13년간 일본에서 번 상금을 분석해보니 놀라웠다. 2005년 일본 진출 이래 ‘100억원 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올해는 10억3663만엔을 넘어서면서 통산 상금 3위에 올라 있다. 따라서 1승부터 100승까지를 분석하면 구옥희를 비롯한 올드 세대의 선수들이 절반을, 나머지 절반은 이지희와 전미정 둘이서 합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보미는 일본 남녀 골프 사상 최다 상금 기록


한국 여자 골퍼들은 2010년 7월 100승째를 돌파한 뒤로도 늦가을까지 8승을 더 추가했다. 물론 이지희·전미정도 변함없이 활약하지만 새로운 선수들이 한 축을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미국 무대와 일본을 함께 저울질하다가 교통과 생활편의 등이 뛰어난 일본을 타깃으로 정한 88년생 세리키즈 3총사가 두드러진다. 10년 전 이지희·전미정 시절에는 JLPGA는 미국에 이어 차선이었지만 이들 3총사는 일본에 좀 더 최적화된 스펙이었다. 세 명이 일본 진출 7년 만에 거둔 승수가 무려 58승에 이른다. 안선주(30)는 미국 투어를 몇 번 두드리다가 일본으로 선회했고, 신지애(29)는 미국에서 2008년부터 6년간 생활하면서 11승을 거둔 후 일본을 택했다. 이보미(29)는 애초부터 일본 투어를 목표로 잡았다.

2010년의 JLPGA투어 상금왕은 데뷔전 첫 승을 시작으로 시즌 4승을 거둔 안선주였다. 한국인으로 상금왕을 차지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7월 중순 도메이 골프장에서 이지희와의 연장 두 번째 홀에서 버디를 잡아 우승한 건 2승을 거둘 때에 불과했다. 안선주는 이듬해에도 4승을 올리면서 상금왕을 2년 연속 차지한다. 2012년에도 3승을 올렸으나 상금왕은 놓쳤고, 2014년에 무려 5승을 거두면서 다시 상금왕을 차지한다. 안선주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8년간 상금왕을 3년간 지켰고 구옥희가 쌓은 23승과 타이 기록으로 올라섰다.


▎올 시즌 일본 투어에 데뷔한 안신애는 섹시스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안신애를 대서특필한 일본 신문.
이보미는 2010년까지 KLPGA투어에서 4승을 올린 후 2011년부터 JLPGA투어에서 뛰기 시작했다. 첫 해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우승이 없었으나 2012년부터 승수를 쌓기 시작한다. 그 해 3승에 이어 2승(2013년)→3승(2014년)→7승(2015년)→5승(2016년)으로 5년 만에 무려 20승 고지를 밟았다. 특히 지난 2년은 상금왕, 최저타수, 대상 등 JLPGA 통계 항목의 6개 분야를 석권했다. 2015년에는 7승을 거두면서 상금 2억3049만엔을 벌었는데, 이는 일본 남녀 골프 역사상 시즌 최다 상금 기록을 경신한 액수였다. 5년간 170개 대회에 출전해 통산 상금은 7억5208만엔을 넘겨 역대 7위에 올랐다. 구옥희가 평생 쌓은 상금을 5년 만에 훌쩍 넘겼다. 이보미는 귀여운 외모에 뛰어난 성적, 그리고 친절한 팬서비스를 갖춰 일본 골프팬에게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갔다. 각종 골프 미디어와 잡지에서 특별히 다루는가 하면 TV 예능 프로 그램에서도 그녀를 초대한다. 심지어 ‘짱구는 못말려’와 같은 애니메이션에도 등장하는 스타가 됐다. 2014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서 당부한 ‘일본 여자 투어 상금왕’을 이루겠다는 효녀 이미지가 어느새 일본 골퍼들과 동화되면서 이보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보미가 출전하는 대회는 특급 대회가 되고 출전하지 않으면 갤러리가 대폭 줄어드는 현상마저 나타났다.

신지애는 2013년 전격적으로 JLPGA투어로 무대를 옮겼다. 티샷이 정확하지만 비거리가 미국 선수들보다 짧아 우승에 부담감을 가지던 터에 일본은 신지애로서는 선호할 만한 투어였다. 진출 이전에도 5승을 기록한 터라 2014년에는 4승을 거두었고, 이후로도 승수를 쌓으면서 JLPGA 통산 15승을 쌓아 올렸다. 신지애는 KLPGA투어에서 2006년부터 3년간 상금왕이었다. 2007년 한 시즌에는 역대 최다승인 9승을 일궜다. 이후 LPGA에서 11승, 유럽레이디스투어와 아시안투어에서도 각각 1승씩을 더했다. 각종 투어에서의 우승을 모두 합치면 총 49승에 이른다. 이는 구옥희의 국내 20승·, 해외 24승을 합친 44승보다도 5승이 더 많은 국내 최다승 기록이기도 하다.

김하늘·안신애, 일본 투어의 새 얼굴


▎이보미가 올해 일본 여자프로골프에서 우승 없이 주춤한 가운데 2015년에 진출한 김하늘이 3승을 거두면서 각 분야 선두를 점령했다.
한국 선수들이 승수를 추가하는 기간이 점차 단축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3년 JLPGA투어에서 51승째를 올리면서부터 매년 평균 승수도 늘었다. 2008년 6명이 10승을 합작하면서 두 자릿수 우승 시대가 열렸다. 최근 2년간은 예닐곱 명의 선수가 무려 17승씩을 거두었다. 2015년 이보미의 7승 외에도 신지애가 3승, 이지희·전인지·안선주가 2승씩 올렸다. 특히 전인지는 초청받은 두 개의 메이저(일본여자오픈·살롱파스컵)에서 모두 우승했다. 지난해는 이보미의 5승에 세리키즈인 신지애·안선주·김하늘이 2승씩을 거뒀다. 2000년대부터 진출한 이지희와 전미정도 2승 씩에, 불혹을 넘긴 강수연까지 우승했다.

올해는 또 새롭다. 이보미가 우승 없이 주춤한 대신에 2015년에 진출한 김하늘이 3승을 거두면서 각 분야 선두를 점령했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KLPGA투어 8승을 거둔 김하늘은 국내에서 2011~12년 상금왕을 한 뒤로는 어린 선수들에게 밀려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골프 인생을 모색하기 위해 일본투어를 노크했다. 진출 3년 만인 올해 상반기에는 메이저인 살롱파스컵 등에서 3승을 거두면서 각종 차트 선두에 올라 있다.

윤채영에 이어 안신애는 색다른 매력으로 일본에 어필한다. 지난해 퀄리파잉스쿨에서 조건부 시드를 얻어 출전권을 얻었다. 한국에서 그렇듯 볼륨 있는 몸매에 짧은 미니스커트, 통통 튀는 팬서비스 등으로 첫 출전 대회부터 섹시스타로 자리잡았다. 단 세 개 대회에 출전했을 뿐인데 안신애가 출전하는 대회마다 갤러리가 대폭 늘고 있다. 일본 미디어들은 안신애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를 ‘아이돌’ 대하듯 보도한다.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섹시 아이콘의 등장에 투어도 흥행동력을 얻었다. 안신애는 국내에서 메이저인 KLPGA챔피언십을 포함해 3승을 거둔 만큼 실력도 갖춰 흥행의 아이콘이 될 수 있다. 이보미가 귀여운 외모와 친절한 팬서비스와 실력으로 일본에서 전성기를 누렸다면 올해는 도시적이고 세련된 김하늘, 섹시한 매력의 안신애가 일본 골프계를 달구고 있다.


이는 JLPGA투어도 반기는 바다. 1968년 시작된 JLPGA투어 50년 역사에서 10승 이상을 거둔 32명 중에 6명이 한국 선수다. 통산 상금 항목에서는 2위 이지희를 시작으로 3위(전미정), 7위(안선주), 8위(이보미)가 한국 선수다. 2010년 안선주를 시작으로 매년 상금왕이 한국 선수였다. 안선주가 3회, 이보미가 2회, 전미정이 1회다. 그럼에도 일본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투어를 활기차게 한다면서 반기는 분위기다.

100승을 쌓기까지 26년, 두 번째 100승을 추가하는 데 7년이 걸렸다면, 현재의 추세로 보아 300승까지 기간은 더 단축될 것이다. 7월 7일부터는 시즌 18번째 대회인 니혼햄레이디스클래식이 열린다. 그 뒤로 남아있는 대회만도 20개나 되고, 한국 선수는 이미 7승을 올렸다.

1391호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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