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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바둑의 한류처럼 한국을 4차혁명의 메카로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1980년대 한국류 정석을 만들어 반상의 혁명 이끌어 … 교육·치료·행정제도 영역서 한류 가능

작년에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면서 4차 산업혁명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 말은 원래 독일에서 ‘인더스트리 4.0’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것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4차 산업혁명’으로 강조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우리는 알파고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에 관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구글이나 일본·중국 등에서 인공지능바둑을 열심히 개발할 때도 한국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을 개발해도 당장 돈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한국이 갑자기 4차 산업혁명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작년부터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과 자료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4차 산업혁명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알파고로 인한 충격을 가장 가까이서 체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컴퓨터가 정복하기 어렵다던 바둑에서 최고수 이세돌이 무참히 무너지는 장면을 생생히 지켜보며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를 다른 나라 사람보다도 더 깊이 통감하게 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인공지능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생존이 어렵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할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인은 위기상황이 오면 빠르게 대처하는 국민이다. 우리는 미리 대비하는 것은 약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외환위기 때 장롱 속에 숨겨둔 금을 모으며 위기를 타개했고,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 사고 때 자원봉사의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손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이번에도 이러한 위기대응 본능이 작동한 것으로 생각된다.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나라의 갑작스런 ‘4차 산업혁명’에 관한 담론의 쇄도는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페이스북이나 카톡방 등에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한 페이지가 생겨나고, 여러 분야의 명사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대응전략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전문가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고 놀랄 정도다. 이런 현상은 외국과 비교해서 좀 특이한 것 같다. 해외에서는 아직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도 실감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인공지능 등 컴퓨터 기술의 진화는 디지털혁명의 연장이니 혁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치 4차 산업혁명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한국이 유난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반상의 한류: 근래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열풍을 보니 예전에 바둑계에서 일어난 한류열풍이 생각난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이 세계 바둑의 패권을 쥐고 있던 시절 한국 기사들은 ‘한국류 정석’이라는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며 반상의 혁명을 일궈냈다. 그 때의 경험을 돌이켜본다. [1도]에서 흑1로 들어올 때 백2로 흑돌의 옆구리에 갖다 붙인 수가 한류 바둑열풍의 시초다. 이 수는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약한 기성 우칭위안 9단이 이전에 둔 적이 있다. 여기에는 기존의 일본식 바둑과는 다른 매서운 맛이 포함되어 있다. 기존의 정석은 흑1에 백A로 귀를 지키거나 백B로 협공하는 수였다. 백2는 이런 상식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바둑수에 관한 사고방식의 혁명이라고 할 만하다. 기성 우칭위안은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은 클라우스 슈밥처럼 바둑수의 혁명적 사고방식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혁명적인 사고를 살짝 보여준 후 더 이상 개발하지 않았다. 이 틈새시장을 한국 기사들이 파고들며 정석의 혁명을 이루게 되었다.

[2도]는 조훈현 9단과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이 국제기전에서 둔 바둑이다. 백1의 옆구리붙임에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석이 나왔다. 이것을 외국 기사들은 ‘한국류 정석’이라고 칭했다. 이후 한국 기사들은 이 모양에서 나올 수 있는 정석을 철저하게 파헤쳐 기존의 정석책에는 없는 신상품을 10개 가까이 생산해 냈다. 놀라운 것은 이 정석혁명이 이 모양으로만 끝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널리 파급되었다는 점이다.

[3도] 이런 모양에서 백1에 흑2로 다짜고짜 붙여가는 수는 매우 파격적인 수다. 최근 알파고도 이런 특별한 붙임수를 자주 선보여 인간고수들을 놀라게 했는데, 예전에 한국기사들도 이런 수로 외국기사들 특히 일본기사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 기사들은 이러한 혁명적 수법을 여러 곳으로 확대해 나가 ‘한국류 정석’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창조해 냈다. 정석(定石)이라는 보편적인 바둑기술 영역에 한국의 색채가 들어간 상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정석에 특정 국가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한국류가 유일하다. 그만큼 특별한 무엇인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약한 인공지능: 바둑에서 한국류 정석이라는 혁신적 상품을 개발해 세계를 제패한 것을 살펴보았다. 우리 사회에 부는 4차 산업혁명의 특별한 열풍을 이처럼 정상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는 없을까. 지금의 열풍을 잘 살린다면 그것이 황당한 꿈은 아닐 것 같다. 슈밥이 4차 산업혁명을 주창했지만 우리는 한국 기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것의 뿌리를 뽑아내 신기원을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해서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활성화는 한국에서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보다 다른 측면을 공략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핵심적인 기술은 인공지능이다. AI나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여 일을 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을 개발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은 투자를 해 이 부문을 선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 외의 영역을 공략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의 수집 및 처리, 새로운 일자리 창출, 인간과 기계의 공존, 기계화에 따른 심리적 문제해결 등의 부문을 연구개발한다. 4차 산업혁명이 컴퓨터 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교육이나 치료, 행정제도 개선 등 그러한 기술에 따른 부대적인 일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문을 선점한다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둘째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략과 모델을 개발한다. 우리 한국은 IT산업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경력이 있다. 이번에는 4차 산업혁명 대응전략으로 세계의 관심을 끌어보기로 한다. 새로운 환경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실질적인 모델을 개발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나 정부기관의 행정체계와 민원처리 등을 4차 산업혁명에 맞게 개선한 모형을 보여줄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의 교육방식도 새로운 시대에 맞게 수정을 한다. 기업의 경영방식도 인공지능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 우리나라에 부는 4차 산업혁명의 열풍을 보며 이것을 한류상품으로 만드는 방향을 생각해 봤다. 바둑의 한류처럼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의 메카가 되는 꿈을 꿔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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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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