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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엔젤 투자자 데이비드 리가 말하는 스타트업 성공방정식] “스타트업 생태계 자산은 창업가의 시행착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포브스 선정 ‘최고의 벤처투자자 100명’ 중 82위 … 투자 받으려면 ‘왜 지금인가’를 설득해야

▎지난 6월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데이비드 리 대표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트위터·드롭박스·에어비앤비·그루폰·핀터레스트·포스퀘어의 공통점은?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글로벌 스타트업이다.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으로 등극한 곳도 있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VC) ‘에스브이(SV)엔젤’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SV엔젤은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엔젤 투자자로 명성이 자자하다. 실리콘밸리의 유명한 투자자 론 콘웨이와 함께 SV엔젤을 공동 설립한 이는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리(David Lee·43)다. 1억 달러(약 1145억원)를 운영하며 400여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한국 스타트업 중에서 비트코인 관련 스타트업 ‘코빗’과 인공지능 로봇 개발 스타트업 ‘아카’에도 투자하면서 한국에도 친숙한 엔젤 투자자다. 2014년 포브스는 그를 ‘최고의 벤처투자자 100명’ 중 82위로 선정했다.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리팩터 캐피털 설립

투자자로 성공 스토리를 쓰던 그는 지난해 1월 리팩터 캐피털(Refactor Capital)이라는 벤처캐피털을 설립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실리콘밸리가 그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지난 6월 28일 서울 역삼동 코엑스에서 열린 스파크랩 데모데이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스타트업의 성공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를 만났다. 데이비드 리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더욱 발전하려면 창업가가 실패해도 괜찮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투자자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다. SV엔젤이 투자한 스타트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트위터나 에어비앤비다. 그는 그러나 “투자에 실패한 곳도 많다”며 웃었다. 그는 투자의 실패를 줄이는 혹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기 위해 창업자들에게 집중했다. 그는 “유니콘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창업가의 공통점은 집중력”이라고 강조했다. “성공한 이들은 팀이나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집중한다”면서 “이런 면에만 창업가들이 집중하다 보니 일반 사람들처럼 대화하기 힘든 이들도 있었다”며 웃었다.

그는 리팩터 캐피털을 따로 세운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했던 SV엔젤은 핀터레스트 같은 대중성을 가진 스타트업에만 집중했다”면서 “리팩터 캐피털에서는 대중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을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스타트업을 찾고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트렌드 변화가 빠르다. 한동안 O2O(online to offline, 온·오프 연계)나 사물인터넷(IoT)이 주목을 받았고, 핀테크를 지나 요즘은 인공지능 분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계는 어떨까. 그는 “실리콘밸리에는 트렌드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 이유에 대해 “10년 전만 해도 실리콘밸리에도 특정 트렌드가 있었는데, 투자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며 “투자자가 별로 없어서 특정 분야에만 투자를 했고, 투자자가 투자하는 분야가 집중적으로 유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투자자도 너무 많기 때문에 일부 분야의 스타트업만 투자를 받는 그런 분위기는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AI에 투자가 집중되는 분위기가 있는데, 과연 좋은 결실을 맺을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AI에 쏠리는 투자 분위기 우려”

데이비드 리는 헬스케어 분야를 눈여겨본다. 24살 때 암 진단을 받고 이겨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의학 분야와 결합했을 때 나올 수 있는 파급력에 관심이 크다. 리팩터 캐피털은 6월 말 현재 20여 곳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는데, 이 중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이 30% 정도를 차지한다.

그가 투자자로 성공 스토리를 쓴 데는 인문학과 기술을 접목하는 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메릴랜드주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후 스탠퍼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전기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학도의 길을 가던 그는 엉뚱하게도 미국 뉴욕 로스쿨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진로 결정을 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가 기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MBA보다는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면 창업을 하거나 창업가들에게 자문을 하는 데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로스쿨에서 투자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많이 배웠다고 한다.

로스쿨 졸업 이후 그의 첫 직장은 로펌이었다. 4년 정도 로펌에서 경력을 쌓은 후 구글 신사업팀에 입사했다.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구글에서 4년 경력을 쌓은 후 창업에 도전했다. “왜 구글에서 나왔나”라는 질문에 “가장 잘 나갔을 때 창업에 도전해보고 싶었다”라며 웃었다. 구글을 나와 2007년 ‘스텀블업온(StumbleUpon)’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해 콘텐트를 추천해주는 소셜미디어였다. 구글 출신의 창업가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스텀블업온은 창업 5개월 만에 이베이에 매각됐다. 첫 창업에 엑시트까지 경험하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는 이후 창업가를 지원하는 역할에 관심이 커졌다. 그는 “만일 돈을 벌고 싶다면 차라리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게 더 좋다”면서 “나는 창업가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벤처캐피털 역할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창업가들에게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노하우를 전했다. 바로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창업가들의 장점은 순수함”이라며 “투자자를 설득하려면 왜 투자를 받아야만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1394호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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