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박상기의 ‘센’ 협상 |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논란] 협정 파기 확률 0% 역공으로 주도권을 

 

박상기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트럼프 주장 미국에 이롭지 않다’ 부각할 필요... 수입 미국 제품 조사로 압박하는 방법도

▎문재인 대통령이 6월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공동 언론발표를 마친 후 박수를 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혹은 파기’ 발언에 불안감과 반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7월 25일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요청한 미국 정부에 역으로 FTA의 경제적 효과를 먼저 분석하자고 제안했다. 앞으로 두 나라 공동위원회에서 논의할 의제는 물론 개최 시기와 장소를 두고 치열한 물밑 협상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성격 급한 독자들을 위해 결론부터 말한다면, 일부 협정 항목에 대한 부분적 개정 협상은 가능할 전망이다. 다만 협정 파기 확률은 0%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협상하고 싶다고 바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국 의회의 엄격한 조사와 심사를 거쳐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는 미국의 대외통상조약 협상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어 트럼프의 말처럼 파기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한·미 FTA 파기 확률을 0%로 보는 건 미국이 우리보다 한·미 FTA의 덕을 더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미 FTA 덕 많이 보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하게 잘못된 협정’이라며 당장 뜯어고치자고 난리인데 무슨 한가한 말이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찬찬히 짚어 보자. 미국이 첨예하게 나오는 대표적인 두 가지 수입 물품이 있다. 하나는 한국산 자동차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산 철강제품이다. 특히 한국산 철강 제품에는 반덤핑 관세를 최대 20%까지 추가로 물리겠다고 윽박지르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의 제조 업체들이 나서서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연하다. 제조업의 주요 부품이자 소재 원료인 철강·철판의 가격이 오르면 득 될 게 없다. 특히 중국산과 대비해 가성비 좋은 한국산 철강제품을 구하기 어려워 난리다. 경기 회복에 따라 철강재 수요도 늘어나면서 세계 철강 제품 가격도 오르고 있다.

미국 철강산업의 퇴조는 저가 중국산 제품이나 가성비 좋은 한국 제품 때문이 아니다. 미국 철강산업 자체의 경쟁력 저하 탓이 크다.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소의 토리 와이팅 연구원은 2016년 9월 ‘미국 철강 시장은 자유무역이 필요하지 국수주의가 필요한 게 아니다’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 근로자 가운데 최상급 수준인 평균 연봉 7만 달러의 고임금 근로자가 철강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트럼프 말대로 한국산 철강 제품에 보복성 반덤핑 관세 20%를 부과하면, 미국 제조 업체들이 먼저 들고 나설 판국이다.

또 하나 트럼프의 말에서 틀린 대목은 미국 철강산업에 치명타를 날린 당사자는 우리가 아니라 중국이란 사실이다. 세계철강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세계 철강 생산량 점유율은 1995년 기준 12.7%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49.5%로 높아졌다. 이미 공급이 넘쳐나는 시장에 중국산 철강 제품까지 쏟아져 나와 취약한 미국 철강 제품의 시장경쟁력을 일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의 철강 제품에 대한 보호 관세 부과 조치가 미국의 산업을 보호하기는커녕 대량 실업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수입 철강 제품에 대해 최고 30%에 이르는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로 승인했다. 그러나 그 여파로 2002년 한 해 동안 관련 생산 업체에 종사하던 20만 명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리하자면, 트럼프의 한국산 철강 제품 보복관세 부과, 더 나아가 한·미 FTA 재협상 혹은 철폐는 실효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이런 사실을 우리도 알고, 미국 정부는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트럼프는 압박을 가하는 것일까. 미국은 정부의 수장이든 기업의 CEO든 아무리 작은 손해라도 용납을 못한다. 또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비즈니스적 특성이 강하다. 필자는 국제 비즈니스 협상 컨설팅을 하면서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기업 역시 수시로 재협상을 요구한다. 경기가 나빠져도 계약 조건 재조정 협상을 요구하고, 원부자재 가격이 조금만 나빠져도 재협상을 바란다. 발생하지도 않은 잠재 리스크를 이유로 계약을 깨기도 하고 재협상을 강요하기도 한다. 심지어 CEO나 주요 책임자만 바뀌어도 거의 예외없이 재협상을 걸어온다.

이에 대해 적지 않은 우리 기업은 초기에 약간의 저항과 협상 시늉을 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고 마무리 짓고는 한다. 미국·유럽의 정부나 기업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초반부터 강하게 압박해 협상 의지를 꺾은 다음, 막판에 약간의 실익을 제공해 대외적 위신을 세워주며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미국 내 반(反) 트럼프 정서와 연계해 미국 내에서 한·미 FTA 재협상이 부당하다는 여론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철강을 비롯한 한국 제품이 좋은 품질과 괜찮은 가격으로 미국 국민에게 이익이 되고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트럼프의 요구는 미국의 이익에도 반하는 조치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계획 철회 카드로 압박하는 방법도 있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의 투자 확대 유보와 제3국으로의 투자거점 이전 가능성으로 관련 주정부를 지렛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다만,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한국에서 퍼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계획 철회 카드도 내밀 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Tit for Tat)’라는 대응도 필요하다. 한국에서 팔리고 있는 미국산 자동차·전자제품 등에 대한 품질·환경·안전 문제 등을 조사해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트럼프 정부를 압박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항공기·무기·의약품에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대적 협상공세(Snow Job) 전략도 고려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우리가 필요하고 유익한 군사·경제·외교 사안별 ‘필요사항’을 구체적으로 문서화해서 미국 측에 추가 협상 어젠다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 측 입장이나 주장만 나열하는 게 아니라 우리 측 요구 사항을 왜 미국이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그것이 왜 미국에도 이익이 되거나 적어도 손해가 아니라는 점을 논리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이 외교통상 또는 비즈니스 협상에서 흔히 쓰는 방법이다. 사실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 측이 이 전략으로 큰 성과를 거뒀다.

※ 필자는 BNE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다. 위스콘신 매디슨 MBA 출신으로 현대·기아차, CJ E&M, KT, 현대중공업 등의 국제협상컨설팅을 수행했다.

1395호 (2017.08.0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