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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보조금 소득 역진성 논란] 부잣집 ‘세컨드 카’에 정부 도움이 웬말?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환경부, 지급 기준 바꿔 1억 넘는 차도 혜택... 美 소비자단체 “소득 상위 20%가 보조금 차지” 비판

▎테슬라 청담 전시장에 전시된 ‘모델S 90D’.
부잣집 ‘세컨드 카’에도 정부 보조금을 줘야 할까? 환경부가 전기자동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개정하기로 했다. 지급 기준이 바뀌면서 1억원이 훌쩍 넘는 고가 전기차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대한 소득 역진성과 정책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부는 7월 17일 10시간 이내 충전 완료 여부로 달라지는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폐지하는 대신 충전속도(최소 충전전류)를 새 기준으로 하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앞으로 완속 충전은 32A(1시간 당 약 7kWh) 이상, 급속은 100A(30분 당 약 20kWh) 이상 수용 가능한 전기차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충전시간 대신 충전속도로 보조금 지급 기준 바꿔

논란이 이는 부분은 1억원이 넘는 고가 자동차에도 보조금이 지급된다는 점이다. 바뀐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국내에 출시된 국내외 모든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는다. 그간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 테슬라 모델S도 포함된다. 모델S의 기본 가격은 1억1570만원, 풀옵션은 1억3000만원 수준이다.

전기차 보조금은 국비 1400만원에 지방자치단체별로 보조금 300만∼1200만원을 준다. 1억이 넘는 차를 살 정도의 경제력을 보유한 사람에게 1700만∼2600만원인 보조금을 줘 부담을 덜어주는 게 옳으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초 환경부는 10시간 규정 폐지를 논의하면서 그 대안으로 전기차 구매가격에 따른 차등 보조금 지급을 고려한다고 했지만 이번 개정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전기차 보조금 지급의 취지는 소비자의 구매부담을 낮춰 보급을 늘리려는 것이다. 실제 전기차 보급은 2015년부터 급증했다. 구매시 지원되는 구매보조금 확대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현행 전기차 보조금은 구매를 희망하는 사람의 소득 수준이나 차량 보유 대수, 구매 후 실제 주행거리 등 운행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하게 지급하는 형태다. 더구나 전기차의 가격이 기존 내연 자동차보다 비싸기 때문에 현행 보조금이 소득 역진성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근 미국에서는 전기자동차 구매 및 충전시설 확충을 위한 보조금 상당수가 고소득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소비자협회(ACI)는 미국 국가경제분석국(NBER)의 보고서를 인용해 “전기 자동차 보조금 10달러 중 6달러가 소득 상위 20 %, 연소득 2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가정에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아서 D 리틀(ADL)의 연구에 따르면 전기 자동차의 20년 유지비용은 기존의 소형 및 중형 차량보다 각각 44%, 60% 비싸다. 보조금을 받는다 해도 서민층에게는 비용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전기차 구매층이 고소득층으로 한정된다는 지적이다. ACI는 “전기차를 사지 못하는 납세자를 희생시켜 고소득층 전기차 소유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며 “전기차 보조금은 부자를 위한 복지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국내의 경우 미국처럼 전기차 구매자의 소득수준, 주거 형태 등의 특성이나 구매 이후 기존 차량의 처분여부 등에 대한 조사·분석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전기차 가운데 3500만 원 이하의 중저가 전기차는 81대 팔리는 데 그쳤다. 그 2배 가까운 가격인 BMW 전기차는 369대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률적인 보조금 지급으로 전기차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보급된 전기차는 1만855대에 이른다. 전기차 보급이 확대될수록 보조금 지급 정책은 지속하기 어려워진다. 정부는 2014년 ‘전기차 상용화 종합대책(전기차 대책)’에서 차량 1대당 지원 단가를 인하하고 대신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차량 1대당 보조금 규모를 줄이는 것에 비해 지원 대상이 급격히 늘면서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전기차 대책에서 올해 보조금 지원 대상을 3만대로 잡았으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1만4000대로 하향 조정했다. 그런데도 보조금 규모는 2015년 440억원에서 올해 1940억 원으로 2년 새 4.4배로 늘었다. 2020년에는 6만4000대에 보조금을 지원할 계획을 세웠지만, 보조금 규모를 대당 1000만원으로만 잡아도 총 예산이 6400억원으로 늘어난다.

전기 택배차, 승용차 대비 환경 개선에 효과적

막대한 세금이 쓰이는 것에 비해 기대하는 만큼의 환경 개선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ADL은 연구보고서에서 “전기차 충전소는 결국 화석연료 에너지에서 동력을 얻고,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셀과 배터리팩을 제조하는 데도 상당한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며 “결과적으로 중소형 전기차는 동일 기종의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1만2000∼1만 7000 파운드의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내뿜는다”고 분석했다. ACI는 “산술적으로 20년 간 전기차로 15만 마일을 주행하면 기존 자동차 대비 이산화탄소를 19% 절감할 수 있지만, 통계상 9%의 차량만이 20년 동안 정상적으로 운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구상의 모든 차가 전기차라고 해도 감축할 수 있는 온실 가스의 양은 1.8%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전기차가 일상에서 완전히 사용되지 않으면 전통 차량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분석이 맞다면, 한 번 만든 전기차의 사용을 극대화해야 환경 개선이라는 목적에 부합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인 전기차의 쓰임새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까지 개발된 배터리 용량과 전기 충전소 보급 현황을 고려했을 때 전기차의 장거리 운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범위가 제한되면 환경적 이익을 실현할 수 없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좀 더 효과적인 전기 자동차 보급정책의 수립과 집행이 필요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 같은 현행 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상용 전기화물차 개발 및 보급에 관련 예산과 정책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준영 국회 입법조사처 연구관은 “주행거리가 길고 공회전과 저속 운행이 낮은 소형 화물차, 특히 도심 운행이 많은 택배용 차량을 전기차로 전환한다면 승용차 대비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의 소득 역진성을 해소하기 위한 세부 보완책도 요구한다. 무주택자, 생애최초,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지원하는 부동산 대출 상품처럼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의 사후 환경개선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최 연구관은 “기존 보급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기차 운행과 관련된 정보획득 및 분석을 위한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1394호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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