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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편결제 전쟁 그 후] 현금 없는 사회는 축복일까 저주일까 

 

한정연 기자 han.jeongyeon@joongang.co.kr
최대 수혜자는 정부... 빈곤계층, 정보화 소외계층 어려움 가중될 수도

▎중국의 한 식당에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받고 현금은 받지 않는다는 스티커가 크게 붙여 있다. / 사진 : 조상래 플래텀 대표
기자는 지난 1주일 간 현금을 두 번 썼다. 한 번은 혜화동 노점상에서 핫도그를 사면서 1000원권 두 장을 냈고, 또한 번은 마포 복권방에서 1만원을 내고 로또복권 5000원어치를 샀다. 현금지급기가 눈에 잘 안 띌 때면 1주일씩 현금 한 푼 없이 다닐 때도 곧잘 있다.

기자만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결제연구팀은 지난해 12월 ‘2016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전국의 19세 이상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2년 동안 건수 기준으로 가장 많이 줄어든 지급수단은 역시 현금이었다. 현금으로 대금을 지불한다는 사람은 2014년 37.7%에서 26%로 11.7%포인트 줄었다. 가장 많이 쓰인 지급수단인 신용카드는 2014년 34.2%에서 50.6%로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은 이미 2015년 지급결제 보고서에서 금융회사·IT업체들과 공동으로 먼저 ‘동전 없는 사회’를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근거를 만들어야 할 국회에서도 아직 제대로 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모 의원실은 “동전 없는 사회 얘기는 들어봤지만 관련 질문에는 노코멘트”라고 했다.

은행이 현금 인출은커녕 입금도 해주지 않고, 상점에서 현금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게 곧 현금 없는 사회다. 물론 결제수단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간편결제, 카드 혹은 제3의 디지털 화폐 저장장치가 현금의 빈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현금 유통 크게 줄인 스웨덴

실제로 스웨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스웨덴은 2030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발표하고, 소매점에서 현금 결제를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현금 결제도 중단됐다. 전국 1600개 은행 지점 중 이미 900곳 이상에서 현금을 보관하지 않는다. 현금 예금을 받지도 않고, 인출할 수도 없다. 덴마크도 비슷한 노력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현금 대신 직불카드 형태인 핀카드를 사용하는 게 현금을 내미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고액의 현금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이스라엘 기업은 150만원 이상을 현금으로 결제할 수 없다.

법정 지폐의 역사는 고작 162년에 불과하다. 1855년 영란은행에서 독점적으로 지폐를 발행한 게 시작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금화와 은화로 결제하는 데 한계가 왔다.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위조가 힘든 종이돈을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법정 화폐 인쇄가 가능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비현금화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거의 최정상급이다.

그런데 일부 나라에서 이렇게 열심히들 현금을 없애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인 필요가 있고 기술적인 여건이 된다면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일까? 우리는 현금 없는 사회의 장점으로 투명성·효율성·안전성·간편성을 꼽는다. 하지만 단편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는지를 알아 채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KERI 브리프 - 현금 없는 경제: 의미와 가능성(2016년 10월, 김성훈 박사)’ 보고서를 한 번 읽어볼 만하다. 보고서는 현금 없는 경제에서 정부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조언한다.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저물가·저금리가 지속되면서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 한계상황을 ‘마이너스 금리(Zero Lower Bound)’로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현금을 인출해서 집에 숨겨 놓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수 있고 그 정책적 효과도 크다는 얘기다. 동전과 화폐를 만들고 유통하는 데 드는 비용도 줄일 수 있지만 부차적인 수준이다.

보고서는 한국에서도 마이너스 금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한국에서도 저성장·저물가 상황이 불가피하고,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거의 유일한 통화정책”이라는 것. 물론 마이너스 금리의 전제 조건은 현금 없는 경제다. 이것만이 유일하게 은행의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금리의 선결 조건도 무현금 사회

미국 클리블랜드 중앙은행은 미국이 금융위기 당시 발권력을 동원해 달러를 마구 찍어 시장에 공급하는 양적완화 대신 금리를 마이너스 5~6%로 조정했으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인플레이션 전망: 서비스 가격 책정에서의 필립스곡선 효과’).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의 다른 한 축은 현금 없는 사회에서의 재정정책이다. 핵심은 현금 거래로 가려진 지하경제나 조세회피 의도를 원천 차단해 정부가 약 20조~64조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현금 없는 사회’의 가장 큰 수혜자가 정부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소비자의 편의성도 의미가 크지만, 세계 각국 정부가 소비자를 위해서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건 아니다. 예외적으로 중국은 소비자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알리페이도 중국 소비자들이 온라인 쇼핑을 안심하고 즐기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중국은 선진국들과는 달리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여건도 되고 목적도 확실하지만 현금 없는 사회가 언제 올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A국가의 화폐 시스템이, B국가와 직결돼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화폐라는 것이 한 국가 내부의 거래수단일 뿐 아니라 국경을 넘어 거래가 되는 게 보편화 돼 있다”며 “전 세계 국가의 디지털 화폐 환경이 균등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소개한 한국은행의 지급결제 수단 관련 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급수단으로 현금을 꼽은 건 60대와 20대로 각각 35.9%, 35.2%나 됐다. 연소득 2000만원 미만의 최빈곤층은 무려 59%가 현금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연소득 6000만원 이상의 현금 선호 비율이 7.9%인 것과 대조적이다. 미취업 청년층이나 은퇴한 노년층 그리고 빈곤층일수록 현금 수요가 많다.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해 말 500루피(약 8600원) 이상 고액권 유통을 즉시 중단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서였다. 인도에선 빈곤층은 물론이고 중산층 대다수도 현금을 사용한다. 이들은 신권 교환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써야 할 돈을 제때 쓰지 못 하는 등 한동안 큰 고생을 했다.

현금 없는 사회가 오면 가장 난처한 사람들은 바로 빈곤층과 노년층, 취업을 못 했거나 학생인 청년들일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보안 시스템을 지닌 신용사회가 온다면, 신용 자체가 없거나 낮은 이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구걸도 스마트폰으로 한다’거나 ‘노숙자들이 잡지 ‘빅이슈’를 팔면서 카드 결제를 해준다’는 말이 비록 현금 없는 사회나 간편결제가 보편화 된 사회를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언급돼야 하는 사례이긴 하다. 소외계층이 어떻게 새로운 신용사회에서 소외받지 않고 금융 거래를 이어갈 수 있을 지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현금 없는 사회가 제도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동전을 없애겠다고 당장 동전이 없어지지 않겠지만 ‘선의의 동전’으로 살아가야 할 이들에게 대체수단을 마련하지 않고 동전을 없애면 누군가는 생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화폐가 없으면 위조지폐 감별기를 제조하는 기업은 어떻게 될까요? 지갑산업이 어떻게 될지도 궁금한데요?” 문규학 대표의 말이다.

1394호 (2017.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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