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제약산업 뒤흔들 꿈의 신약] 생체전자의약품·유전자 치료제 가시권 

 

김진구 기자 luckybomb85@gmail.com
기존 약과 달리 근원적 치료 목표 … 만성질환 퇴치에 역할 기대

▎유전자 치료제는 제약산업의 ‘제3의 물결’로 불린다.
지난해 8월, 구글과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하 GSK)이 함께 제약회사를 만들었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의 자회사인 베릴리 생명과학(Verily Life Sciences, 이하 베릴리)과 GSK가 합작해 ‘갈바니 생체전자공학(Galvani Bioelectronics, 이하 갈바니)’을 설립한 것이다. 베릴리와 GSK는 앞으로 7년 간 갈바니에 총 5억4000만 파운드(약 7925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각 산업을 대표하는 두 거물이 힘을 합친 이유는 생명공학과 전자공학의 조합으로 각종 질병을 정복하기 위해서다. 갈바니란 이름은 18세기 이탈리아 과학자 루이지 알로이시오 갈바니(Luigi Aloisio Galvani)에서 따왔다. 그는 개구리의 신경을 금속으로 건드렸을 때 뒷다리 근육이 비틀린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두 회사가 목표로 하는 ‘생체전자의약품(Bioelectronics Medicine)’ 개발을 엿볼 수 있는 이름이다. 생체전자의약품이란 우리 몸의 신경을 통과하며 다양한 질환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이거나 변형된 전기 신호를 바로잡는 소형 장치를 말한다. 몸에 이식한 작은 칩으로 관절염·당뇨병·천식 같은 만성질환을 완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년 내 당뇨병 완치 바이오칩 개발


▎생체전자의약품은 2023년 등장할 전망이다.
GSK의 생체전자공학 R&D 사업부 부사장이자 갈바니의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크리스 팸(Kris Famm)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2023년까지 신경을 자극하는 이식형 생체전자의약품의 최초 허가를 따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이미 제2형 당뇨병의 경우 동물실험에서 유망한 결과를 냈다. 당뇨병을 앓는 쥐에게 전기신호를 내는 미세한 실리콘 장치를 신경세포 주위에 부착하고 전기 공급을 조절한 결과,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갈바니 측은 7년 안에 의약품으로 승인받을 계획이다. 2형 당뇨병뿐 아니라 염증·내분비·대사 질환을 중심으로 생체전자 의약품 개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갈바니 회장인 몬세프 슬라우이(Moncef Slaoui)는 “모든 신체 활동은 신경계와 장기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기 신호로 통제되는데, 대부분 만성질환은 이 신호가 왜곡되면서 발생한다”며 “최신 기술로 전기적 상호 작용을 분석하고, 각 신경에 소형 장치를 부착해 불규칙한 전기 신호 패턴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전에 없던 전혀 새로운 치료법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릴리의 최고기술책임자인 브라이언 오티스(Brian Otis)는 “새로운 치료제 탐구 영역인 생체전자의약품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질병생물학에 대한 심도 깊은 전문 지식과 최신의 초소형화 기술이 융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글이 차세대 사업으로 헬스케어를 선정하고 연구개발에 돈을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당시 구글은 유전자 분석, 인간 생체지도, 신약 개발, 다이어트 지도 등 헬스케어 산업 전반에 걸친 장기 투자 계획을 세웠다.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은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관심 사업으로 자율주행차·인공지능 등과 더불어 헬스케어를 꼽았다.

구글은 갈바니 설립에 앞선 2014년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와 함께 눈물로 혈당을 재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시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개발이 완료되면 당뇨 환자들은 혈당 검사를 하기 위해 손가락을 바늘로 찌를 필요 없이 콘택트렌즈를 착용해 검사할 수 있다. 구글과 노바티스는 올해 안에 이 제품의 임상시험을 미 식품의약국(FDA)에 신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의 또 다른 헬스케어 자회사 ‘캘리코(Calico)’는 2014년 미국 제약사 애브비와 15억 달러(약 1조5600억원)를 공동으로 투자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노화 방지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캘리코는 인간의 평균 수명을 150세까지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신경계 질환 치료제 및 암 백신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제약 산업에 ‘제 3의 물결’이라 부르는 변화도 있다. 생체전자의약품 함께 미래 제약산업의 또 다른 축으로 꼽히는 ‘유전자 치료제’다. 유전자 치료제는 제약산업에서 ‘세 번째 물결’이라고 표현된다. 미세 화학분자를 합성해서 만드는 ‘합성 의약품’이 첫 번째, 살아있는 효모·세포를 이용한 ‘바이오 의약품’이 두 번째 물결이었다. 유전자 치료제는 지금까지의 신약 개발 상식을 다시 한 번 뒤엎을 변화를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다.

기존에 개발된 치료제는 대부분 질병이 진행하는 걸 지연시키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쳤다. 유전자 치료제는 병의 원인인 유전자를 교정해 좀 더 근본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DNA나 RNA 형태의 유전 물질을 체내에 주입하면, 이 유전 물질은 정상 유전자를 복제한다. 복제된 유전자는 바이러스 벡터를 이용해 유전 정보를 세포에 전달하고, 결국 결함이 있던 유전자의 역할을 보완한다.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 유전자 치료제는 단 한 번의 치료만으로 병을 완치할 수 있다. 암을 비롯한 유전질환·희귀질환의 치료에 대대적인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의 근원인 유전자 자체를 교정하는 기술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온 상태다. 화이자에서 개발 중인 혈우병 치료제를 예로 들면, 임상시험 단계에서 최소 1년 간 완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전질환인 혈우병은 혈액을 응고시키는 인자 중 하나가 부족해 생기는 병이다. 출혈이 발생했을 때 피가 굳지 않아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 쉽다. 현재 혈우병 치료법은 없다. 환자는 혈액응고인자를 매주 주사로 맞으며 평생 살아야 한다. 화이자의 치료제는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1년 간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1회 주입으로 응고인자 수치가 유지됐고, 더 이상 유전자 주입이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 기간이 늘어날수록 완치 기간도 길어진다. 화이자 측은 2020년까지 혈우병을 완치하는 치료제를 개발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이 치료제는 FDA로부터 혁신적 치료제(Break-through) 품목으로 지정됐다.

2020년 혈우병 유전자 치료제 등장

휴먼 게놈 프로젝트 완료 이후 생명공학기술이 급격히 진보하면서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가 속속 발견됐다. 암조차도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유전자 치료제는 특히 희귀 유전질환에 활용 가치가 크다. 세계적으로 3억5000만 명이 7000여종의 희귀질환을 앓고 있다. 이 중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희귀질환의 80%는 유전이 원인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이런 미개척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내로라하는 제약사들이 앞다퉈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이유다.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7 글로벌 바이오 컨퍼런스(GBC)’에 참석한 화이자 희귀질환사업부의 글로벌 총괄 대표인 마이클 고틀러(Michael Goettler)는 “10여년 전만 해도 유전자를 환자 치료에 활용하는 것은 꿈에 불과했다”며 “유전자 치료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까이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유전성 안(眼)질환에 대한 완치 사례가 축적되고 있다”며 “2020년에는 혈우병, 2025년에는 근이 영양증(희귀 근육병의 일종), 2030년에는 알츠하이머(치매)가 유전자 치료로 극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1395호 (2017.08.0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