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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시점·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기’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시간·공간의 무수한 조합 가능 … 피사체를 어디서·어떻게 보느냐도 중요

▎사진1. 인삼밭, 2016.
검은색 차양막과 십자가, 푸른 보리밭…. 사진1(인삼밭, 2016)에는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기호들이 있습니다. 검은색은 어둠의 색이자 죽음의 색입니다.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십자가는 공동묘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푸른색은 생명의 색입니다. 검은색 차양막과 푸른 보리밭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삶과 죽음을 가릅니다.

사진에는 역설의 미학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인삼밭입니다. 인삼은 건강식품의 대명사이자 보신제로 쓰이는 약재입니다. 인삼은 원래 깊은 숲 속에서 자라는 음지식물입니다. 직사광선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인삼을 재배할 때는 검은색 차양막을 칩니다. 빛을 가리고 인삼에 맞는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줍니다.

드론 이용한 항공촬영이 각광받는 이유는

인삼밭의 지주목은 정면에서 가까이 보면 십자가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서 비스듬히 보면 마치 십자가처럼 보입니다. 지주목을 십자가처럼 보이게 하는 데는 사진의 다양한 테크닉이 적용됩니다.

첫째, 망원렌즈를 이용합니다. 원근감을 줄여서 십자가의 간격을 줄여 다닥다닥 붙어 보이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십자가의 조형미가 공동묘지 효과를 냅니다. 망원렌즈는 또 사진의 평면성을 부각시킵니다. 검은색과 푸른색의 대비 효과가 커집니다. 둘째, 어두운 검은색과 밝은 지주목의 노출 차이를 이용해 검은색 차양막을 더 어둡게 해서 검평면처럼 처리합니다. 셋째, 망원렌즈로 프레임의 폭을 좁혀 이미지를 단순하고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멀리 떨어져서 좁게 보는 것이 낫습니다.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진은 시간이라는 X축과 공간인 Y축이 변수로 작용하면서 거의 무한대의 조합을 만들어 냅니다. 무수하게 흩어져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어느 한 시점(Time)과 관점(View point)을 선택하는 것이 사진의 전략입니다. 핵심은 표현입니다. 내가 사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선택이 달라집니다.

시간은 사진을 찍는 순간입니다. 빛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자연광인 태양은 시간대에 따라 빛의 각도와 강도, 심지어 색(색온도)까지 달라집니다. 빛은 각도와 강도에 따라 사물의 형상을 바꿔놓는 마법을 발휘합니다.

공간은 피사체를 보는 관점을 뜻합니다. 멀리 또는 가까이, 넓게 또는 좁게 찍을 수도 있습니다. 앉거나 누워서, 서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 보기도 합니다. 또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사물의 형상이 제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다루는 예술입니다. 사진가는 무한대의 조합 속에서 전략을 세우고 시간과 공간을 결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르게 보기’입니다. 가장 좋은 전략은 시각의 내성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것입니다. 최근 드론을 이용한 항공촬영이 각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시각의 내성에서 벗어나 우리 눈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각은 밤보다는 낮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올려 보거나 내려보는 것보다 서서 보는 눈높이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뒤나 옆보다는 앞에서 많이 봅니다. 틈새나 구멍, 가려진 장애물 너머보다 트인 시각에 내성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가는 평범한 시각, 내성으로 길들여진 이미지에서 끊임없는 탈주극을 벌여야 합니다.

명확한 이미지는 단순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은 삶을 반영합니다. 우리 삶은 복잡미묘합니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때론 가려지고, 모호한 단면이 인생사를 훨씬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진가가 몸을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사진은 발로 찍는다”는 말은 이 때문입니다. 어떤 피사체가 눈에 들어오면 찍기 전에 먼저 대상을 둘러 보아야 합니다. 가까이 또는 멀리, 서서, 앉아서, 누워서, 올라가서,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도 봐야 합니다. 때로는 대상을 가리는 장애물도 사진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 다음 관점을 정하고 때를 기다립니다. 이때 사전 시각화가 돼야 결과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사진가가 시간과 공간을 택하는 전략입니다.

사전 시각화 과정 필수


▎사진2. 법고, 2015
사진2(법고, 2015)는 해인사에서 승가대학생이 법고를 치는 장면입니다. 법고는 불교의식에 쓰는 북으로 주로 아침 저녁 예불을 알릴 때 사용합니다. 경건한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올려다 보는 관점을 택했습니다. 법고 밑에 누워서 촬영을 했습니다. 절도 있는 손동작, 휘날리는 저고리 소매 자락, 뒤에서 들어오는 역광 빛이 어우러지며 엄숙한 법고의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397호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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