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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상상의 나래 … 시를 닮은 레토릭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창의적인 비유로 연상작용 이끌어내야 … 시적 감수성 기를 필요

▎태양계, 2016.
우리에게는 기억이라는 이미지의 데이터베이스가 있습니다. 살면서 보고 느꼈던 이미지가 빼곡히 들어 차 있습니다. 이미지는 시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도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청각·후각·미각·촉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예술은 이미지를 다루는 예술입니다. 사진이나 그림 등 예술작품을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를 돌립니다. 그런데 기억은 불완전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서서히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망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기억은 저장된 시간과 반비례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충격이나 자극은 오래갑니다. 트라우마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기억도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 비슷한 것을 보면 잠재돼 있던 기억이 스멀거리며 기어 나옵니다. 어쩌면 사진은 잊혀져 가는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끄집어 내는 사진


▎은하수, 2016.
기억의 매력(?)은 연상작용입니다. 사진은 대상을 보고 느끼는 연상작용을 통해 의미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면 푸른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자유’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장미’를 보고 유혹을 느끼거나 하는 것입니다. 이때 두 관념 사이에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는 희박하지만 감성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있습니다. ‘자유’나 ‘유혹’은 원관념 ‘새’와 ‘장미’가 불러온 마음의 상인 ‘심상’입니다. 사진은 이 연상작용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이야기를 담고, 메시지를 전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만듭니다. 기억은 비유의 원천입니다. 시와 사진의 표현문법이 닮은 것도 바로 이 비유법 때문입니다.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비유법이나 과장법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진공부는 닮은 꼴 찾기부터 시작됩니다. 시로 치면 직유법입니다. 자 그럼, 즐거운 거짓말 놀이를 시작해 볼까요? 지난 겨울은 ‘역대급’ 추위가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했습니다. 북극을 싸고 도는 차가운 제트기류가 느슨해진 탓이라고 합니다.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의암호를 가봤습니다. 넓은 호수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조심스레 얼음판 위를 걷다가 어린 시절 과학책에서 보던 태양계의 형상[사진1]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릎을 꿇고 한참을 들여다 봤습니다. 얼음 속에 있는 기포들이 우주를 그려 놓았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의 태양계 행성이 줄지어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지구별은 어디에 있을까요. 빙판을 기어 다니며 우주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흥미진진한 발견의 기쁨에 혹한의 칼바람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태양계를 지나고 나니 이번에는 은하계[사진2]가 나타납니다. 수 만개의 별이 기다란 띠를 이루며 반짝입니다. 갑자기 별똥 별 하나가 ‘획’ 하고 지나갑니다.

사진의 레토릭은, 시도 마찬가지지만 비교 대상의 개념이 서로 먼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과 인형을 비교하는 것은 서로 개념이 비슷하기 때문에 신선한 레토릭이 아닙니다. 하지만 ‘얼음과 태양계’는 엉뚱한 조합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억은 얼음판의 기포를 보고 태양계를 떠올립니다. 시각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레토릭은 놀이처럼

이미지의 비유는 언어보다 훨씬 더 자유롭습니다. 논리보다는 지극히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자의식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차가 큽니다. 같은 대상을 보지만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연상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며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사진의 레토릭은 놀이처럼 해야 합니다.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야 창의적인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지시대상이 분명하기 때문에 직설적인 표현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추상적인 표현이 더 좋습니다. 좋은 사진은 쉽게 속살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흐린 기억의 한 구석을 툭 건드려 기억을 자극해야 합니다.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지요. 직유에서 은유로, 또 환유로 비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사진이 깊이가 있습니다. 사진 앞에 더 오래 머물게 합니다.

사진가는 시적 감수성을 길러야 합니다. 시에 나오는 비유적인 표현을 사진으로 형상화해 보는 것도 좋은 훈련이 됩니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사진은 물론 문학·미술·음악 등 감동적인 예술작품을 많이 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삶에 대한 통찰의 눈이 생기고 비유법이 신선하고 풍부해 집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398호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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