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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박사의 힐링 상담 | 아픈 딸을 둔 아버지의 갈등 극복]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나 나를 돌보자 

 

후박사 이후경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나를 돕고 딸을 도와야 … 무거운 짐은 함께 들고 무력한 마음은 서로 나눠야

▎사진 : ⓒgetty images bank
8년 전, 그는 직장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향했다. 부인이 간호사로 취업했고 모아놓은 돈도 있어 제2의 인생을 기획한 것이다. 꿈꾸던 박사학위에 도전했다. 3년 전,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박사과정에 들어갔을 때 문제가 생겼다. 초등학생인 둘째 딸이 골육종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것이다. 초기 치료 실패로 의사를 믿지 못하게 된 그는 학업을 미루고 딸의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1년 전, 딸의 병은 성공적으로 치료됐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중2로 복귀했는데 학교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친구관계 때문이었다. 불면증과 걱정, 불안에다 한 번 침체되면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급기야 자살기도도 있었다. 그도 그간 딸 문제로 지치고, 자신감도 없어져 방황하고 있었는데, 그의 방황이 딸에게 영향을 준 듯하다. 딸은 매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호전되지 않는다. 자주 짜증을 내고 폭발하고 우울해한다. 엄마는 직업상 낮밤이 바뀌어 딸의 모든 정서는 아버지인 그가 책임지고 있다. 암 투병 때는 오히려 더 쉬웠다. 요동치는 정서 불안정을 아버지가 감당하기는 더 힘들다.

박사학위 포기하고 딸 간병에 매달려

한 달 전 그는 박사학위를 포기했다. 한국을 떠날 때 희망찬 포부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긴 세월 딸 투병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다시 딸의 정신적 문제로 방황하는 상태에서 논문을 쓰는 건 불가능했다. 꿈을 접고 딸을 위해 살기로 했다. 부인과 첫째 딸은 그의 결정에 무조건 동의한다. 모든 책임을 그가 져야 한다. 그런데 왜 그런지 점점 더 힘이 빠지고,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 과연 어찌해야 하나?

전쟁이 나거나 배가 조난됐을 때 국가나 이웃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 나부터 살고 싶지 않았을까? 가슴이 찡하다. 부모가 중병에 쓰러지거나 자식이 죽을병에 걸릴 때 부모와 자식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 나만이라도 피하고 싶지 않았을까? 코끝이 찡하다. 희생은 남을 위해 나를 바치는 것이다. 누구나 희생 앞에선 숙연해진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아버지여, 이 고통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

고통은 오성(悟性)의 껍질을 깨는 것이다.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아야 한다. 하루하루 삶의 기적을 간직한다면, 고통도 기쁨 못지않게 경이롭다. 고통은 대부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내가 나를 치료하는 쓰디 쓴 한 잔의 약이다. 슬퍼하거나 원망하기보다, 침착하게 받아 마셔야 한다. “모든 게 다 고(苦)다.”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다. 희로애락, 모두 고통이다. 고통의 반대는 기쁨이 아니고 평화다. 고통은 집착에서 오고, 집착을 없애면 마음의 평화(道)에 도달한다.

고통이 지속된다면 누구나 무력해지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보통 세 가지 대처방식을 보인다. 항복·반격·회피다. 항복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을 변화시키기에 너무 약하다.” 반격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왜 내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 문제가 너무 많다. 증명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회피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책임이 너무 무겁다. 그냥 어려운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다.”

희생의 덫에 빠진 사람이 있다. “나보다 남의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 소중한 이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그는 진심으로 남을 돌보고 고통을 공감한다. 남을 불편하게 하기 보다 자신이 불편을 감수한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무력감에 빠지거나, 우울증·신경쇠약에 걸리게 된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별거·사망 등으로 소년가장 역할을 한 경우다. 부모가 건강·경제·장애 문제가 있어 집안을 도운 경우다. 부모가 간호사·사회복지사·목사 등에 종사해 희생의 역할모델을 보여준 경우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걱정이다.” 효(孝)에 대한 공자의 답변이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르던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지적받기를 꺼리던 나쁜 모습도 있고, 잃어버린 순수함과 호기심도 비친다. 자식은 전생의 빚을 갚으려 낳고 기르는 것이다. 윤회의 시각이다. 보답을 받으려는 생각이 아닌, 담담하고 어려운 심정으로 길러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연장이다.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낳되 소유하지 않고, 행하되 의지하지 않고, 기르되 지배하지 않는다. 이를 현묘한 덕(德)이라고 한다.”

제로에서 시작했으니 잃어봐야 본전

자, 그에게 돌아가자. 그에게 탁월한 처방은 무엇인가? 첫째, 나도 돌보자. 그는 과도하게 딸을 돕고 있다. 아버지로서 충분히 딸을 위해 살았다. 일단 병은 나았고, 학교 적응은 또 다른 문제다. 절제가 필요하다. 도와야 할 일은 돕지만, 딸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놔둬야 한다. 도울 수 없는 일은 놔두고, 딸이 혼자 해야 할 일은 지켜봐야 한다. 그는 자신을 돕지 않고 있다. 계속 딸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나?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은 접근법이 다르다. 멈춤이 필요하다. 학위 포기의 이유가 딸이어서는 안 된다. 나를 돕고 딸을 도와야 한다. 잘못하면 함께 망가진다. 안 돕더라도 딸이 스스로 깨달아 하는 경우도 있다.

둘째, 가볍게 살자. 그는 과도하게 책임지고 있다. 아버지로서 훌륭히 가정을 이끌었다. 암 치료에 성공했고, 재발은 별개의 문제다.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미국에서의 제2의 인생과 딸의 병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무거운 짐은 함께 들 때 가볍고, 무력한 마음은 서로 나눌 때 힘이 솟는다. 그는 힘들게 살고 있다. 힘들게 산다고 책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위해 살면 안 되나? 여유가 필요하다. 가볍게 살자는 것은 요령껏 살고, 포부를 품지 말고, 빈둥빈둥 놀자는 것도 아니다. 남은 남대로 두고, 나는 최선을 다 하고, 운명이 지어가는 일을 고요히 맞이하여 큰 시야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는 태어났고 살았다. 그리고 웃었다.” 태어난 것에 기뻐하자.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제로에서 시작했으니 잃어봐야 본전이다. 병에 시달리다 떠나는 사람은 고통에서 벗어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자. 우연한 기회로 태어났으니 무엇을 이루겠는가? 잃을 것도, 이룰 것도 없다. 별과 나무를 그리며 꽃을 노래하고, 잠시 인연을 맺은 인생끼리 사랑하자. 언제 웃음이 터지는가? 일생 산에서만 살던 사람이 바닷가에 서서 확 트인 수평선을 바라볼 때 터진다. 나와 남의 까닭이 아닌 이름 붙일 수 없는 제3의 계획에 눈을 뜰 때 터진다.

후박사 이후경 - 정신과의사, 경영학박사, LPJ마음건강 대표. 연세대 의과대학과 동대학원을 거쳐 정신과 전문의를 취득하고,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임상집단정신치료] [후박사의 마음건강 강연시리즈 1~5권] [후박사의 힐링시대 프로젝트] 등 1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

1398호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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