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모델링: 상식을 뒤엎는 알파고의 수법이 출현하자 바둑 전문가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대부분 알파고의 바둑수가 괴이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서도 그 괴상한 수법을 배워 실전에 응용하려고 한다. 승부세계에서는 승자가 권위를 갖는 법이니, 천하무적인 알파고를 흉내 내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알파고 모델링은 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세돌 9단도 알파고가 정석에서 자신에게 썼던 새로운 수를 두었다. 최고수 커제 9단은 알파고의 때이른 3-3침입을 아예 전매특허처럼 쓰고 있다. [3도]는 올해 중국 갑조 바둑리그에서 커제 9단이 리친청 9단과 둔 바둑이다. 백번인 커제는 백6의 수로 흑귀에 뛰어들었다. 알파고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장면에서 3-3 침입을 한 기보는 없었다. 귀의 실리를 차지해도 흑에게 튼튼한 세력을 허용해 좋을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바둑에서 백14로 갈라치고 보니 흑의 세력이 크게 빛나는 모양은 아니다. 막상 이렇게 된 포석을 보면 지금까지 믿어온 관념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파고는 이처럼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수들을 자유롭게 두는 경향이 있다. 인간처럼 체면이나 철학 같은 것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알파고의 수법을 모방한 이 바둑은 커제의 명국으로 끝났다. 예술처럼 멋진 바둑을 두어 승리로 장식한 것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3패를 당하고 눈물을 흘린 커제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던 듯 공식 시합에서 22연승을 거두었다. 그렇게 보면 커제는 인공지능과의 대면으로 큰 도약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AI와 트레이닝: 인공지능의 영향은 프로기사들의 훈련방식에도 나타난다.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 바둑 연구가 가속화되어 AI 바둑고수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의 딥젠고, 중국의 절예(絶藝), 대만의 CGI 등의 프로그램이 크게 업그레이드 됐다. 한국의 돌바람 프로그램도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외국의 프로그램보다는 뒤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제1회 중신증권배 인공지능 바둑 오픈전 8강에서 한국의 돌바람은 일본 딥젠고에게 불계패를 당했다. 4강에 오른 딥젠고는 중국의 절예를 꺾고 결승에서 대만의 CGI와 접전을 벌인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 인공지능 바둑대회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12개 인공지능 바둑이 참가했다. 알파고 대결 이후 중국 기사들은 인공지능 ‘절예’와 트레이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 고수들과 대국하는 것보다 인공지능 바둑과 두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중국 바둑계는 실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면 빠르게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올라서자 중국 기원의 서가에 있던 일본 바둑책 대신 한국의 책이 자리를 채운 적이 있다. 최강자의 기술을 배워야 정상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본 것이 틀림없다. 중국 프로 기사들의 인공지능 바둑고수와의 트레이닝은 실력 향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으로 발견하지 못하는 수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근래 중국은 국제바둑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세계 최강으로 올라섰다. 한국에서도 프로들이 훈련을 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우리와 경합하는 중국 바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AI 고수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한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듯 아주대 전자공학과 감동근 교수는 한국기원 등과 연합해 새로운 한국형 인공지능 바둑을 개발하고 있다. 멀지 않아 세계적인 프로그램들과 비슷한 수준의 인공지능 바둑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바둑 분야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으로 의료·회계·경영·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빅데이터를 토대로 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그 분야의 표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끼리의 경쟁을 보려고 하며, 기술 훈련에서 인공지능 선생을 선호하게 될지도 모른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