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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인공지능 바둑고수에게 배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알파고 이후 국내외 바둑계 새 트렌드 ... 인간이 착안하지 못한 묘수 많아

인류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인공지능 알파고는 올해 퇴를 선언하며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알파고는 일반사회뿐만 아니라 바둑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기술적인 면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바뀌게 될 미래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알파고 충격: 인공지능 알파고는 작년에 세기의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을 꺾은 후 다른 고수들에게도 60전 전승을 거두었다. 몇 달 전에 있었던 랭킹1위 커제 9단과의 대결에서도 3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알파고는 가공할 전적으로 인공지능이 두뇌게임에서 인간을 넘어섰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구글은 이것으로 알파고의 역할은 끝났다고 보아 은퇴 선언을 했다. 이제 알파고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알파고가 던진 파장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프로기사를 비롯한 바둑인들은 심리적인 면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 알파고의 능력보다도 알파고가 보여준 바둑의 내용이 더 큰 쇼크였다. 알파고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수를 구사하며 인간 고수들을 제압했다. 말하자면 새로운 발상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셈이다. 발상의 차이, 즉 사고방식의 차이로 인간을 능가한다는 것이 특이하지 않는가. 비즈니스로 치면 다른 경쟁 기업보다 새로운 생각으로 승리를 거둔 것과 같다. 발상의 전환으로 성공한다면 많은 기업가들은 솔깃할 것이다. 생각만 바꾼다면 경쟁력이 높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짓궂게도 구글은 알파고와 알파고가 둔 기보 50국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던져주었다. 알파고끼리 둔 바둑을 연구해 보라고 인터넷에 공개한 것이다. 그런데 기계끼리 둔 이 기보가 사람과 알파고가 둔 것보다 더 파격적이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착안하기 어려운 수들을 서슴없이 두고 있다. 어떤 프로기사는 알파고가 4차원적인 바둑을 둔다고 머리를 흔든다.

[1도] 한 예로 이런 포석 장면에서 백1에 붙이고 흑2로 받을 때 또 백3에 붙이는 수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초반에 백1과 같이 난데없이 붙이는 수는 두지 않는다. 더구나 흑2로 된 장면에서 장난치듯 백3으로 붙이는 수는 상상을 초월한 수. 알파고는 이런 식으로 사람이 생각지 않는 수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것이 프로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2도]에서 알파고는 정석이나 포석의 유행도 변화시킬 만큼 파격적이다. 이런 모양에서 백6과 흑13으로 상대방 화점의 3-3에 들어가는 수를 때이르게 두고 있다. 주변에 돌이 없는 상황에서 이처럼 3-3에 침입하는 수는 프로들의 사전에는 없는 수였다. 3-3에 들어가는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들어가는 수를 프로들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알파고는 “지금 들어가면 왜 안 되지?”라며 이런 수를 거침없이 두고 있다. 화점에 대한 이 3-3 침입으로 인해 근래 자취를 감춘 빈 귀 착점의 3-3이 다시 등장했다. 3-3은 한 때 조치훈, 사카다 9단 등이 애용했던 수였다. 그러나 귀를 차지한 위치가 낮다고 보아 요즘은 거의 두지 않았는데, 알파고 이후 상대방이 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예 3-3에 두는 수가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알파고 모델링: 상식을 뒤엎는 알파고의 수법이 출현하자 바둑 전문가들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대부분 알파고의 바둑수가 괴이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서도 그 괴상한 수법을 배워 실전에 응용하려고 한다. 승부세계에서는 승자가 권위를 갖는 법이니, 천하무적인 알파고를 흉내 내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알파고 모델링은 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세돌 9단도 알파고가 정석에서 자신에게 썼던 새로운 수를 두었다. 최고수 커제 9단은 알파고의 때이른 3-3침입을 아예 전매특허처럼 쓰고 있다. [3도]는 올해 중국 갑조 바둑리그에서 커제 9단이 리친청 9단과 둔 바둑이다. 백번인 커제는 백6의 수로 흑귀에 뛰어들었다. 알파고 이전에는 지금과 같은 장면에서 3-3 침입을 한 기보는 없었다. 귀의 실리를 차지해도 흑에게 튼튼한 세력을 허용해 좋을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바둑에서 백14로 갈라치고 보니 흑의 세력이 크게 빛나는 모양은 아니다. 막상 이렇게 된 포석을 보면 지금까지 믿어온 관념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알파고는 이처럼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수들을 자유롭게 두는 경향이 있다. 인간처럼 체면이나 철학 같은 것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알파고의 수법을 모방한 이 바둑은 커제의 명국으로 끝났다. 예술처럼 멋진 바둑을 두어 승리로 장식한 것이다.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3패를 당하고 눈물을 흘린 커제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던 듯 공식 시합에서 22연승을 거두었다. 그렇게 보면 커제는 인공지능과의 대면으로 큰 도약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AI와 트레이닝: 인공지능의 영향은 프로기사들의 훈련방식에도 나타난다.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 바둑 연구가 가속화되어 AI 바둑고수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일본의 딥젠고, 중국의 절예(絶藝), 대만의 CGI 등의 프로그램이 크게 업그레이드 됐다. 한국의 돌바람 프로그램도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외국의 프로그램보다는 뒤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얼마 전 중국에서 열린 제1회 중신증권배 인공지능 바둑 오픈전 8강에서 한국의 돌바람은 일본 딥젠고에게 불계패를 당했다. 4강에 오른 딥젠고는 중국의 절예를 꺾고 결승에서 대만의 CGI와 접전을 벌인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이 인공지능 바둑대회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12개 인공지능 바둑이 참가했다. 알파고 대결 이후 중국 기사들은 인공지능 ‘절예’와 트레이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 고수들과 대국하는 것보다 인공지능 바둑과 두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중국 바둑계는 실력 증진에 도움이 된다면 빠르게 도입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으로 올라서자 중국 기원의 서가에 있던 일본 바둑책 대신 한국의 책이 자리를 채운 적이 있다. 최강자의 기술을 배워야 정상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본 것이 틀림없다. 중국 프로 기사들의 인공지능 바둑고수와의 트레이닝은 실력 향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고정관념으로 발견하지 못하는 수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근래 중국은 국제바둑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세계 최강으로 올라섰다. 한국에서도 프로들이 훈련을 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우리와 경합하는 중국 바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AI 고수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한다. 그런 요구에 부응하듯 아주대 전자공학과 감동근 교수는 한국기원 등과 연합해 새로운 한국형 인공지능 바둑을 개발하고 있다. 멀지 않아 세계적인 프로그램들과 비슷한 수준의 인공지능 바둑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바둑 분야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으로 의료·회계·경영·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빅데이터를 토대로 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그 분야의 표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인공지능끼리의 경쟁을 보려고 하며, 기술 훈련에서 인공지능 선생을 선호하게 될지도 모른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01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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