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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사진도 사진의 대상이다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찍은 사진 아닌 각종 연출로 ‘만든 사진’ … 이미지와 진실에 의문 제기

▎사진1
사진은 촬영 형식에 따라 ‘찍은 사진(straight photo)’과 ‘만든 사진(staged photo)’으로 나눕니다. 찍은 사진은 사진가가 피사체를 연출이나 인위적인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찍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사진의 형식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보는 방식, 피사체를 보고 느끼는 즉각적인 감정, 발견의 미학을 중시합니다. 풍경사진처럼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진도 여기에 속합니다. 만든 사진은 현대적인 개념의 사진입니다. 오브제를 이용하거나 컴퓨터 그래픽, 연출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단순히 찍은 사진만으로는 사진가의 철학이나 신념을 담기에는 성에 차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든 사진은 회화적인 아름다움보다는 표현성과 창의성을 중시합니다. 다수의 가치관보다 개인의 독창성에 방점을 둡니다. 사진가 라인석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브제를 이용해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사진을 만듭니다. 사진을 찍고 이를 합성하거나, 사진을 프린트한 다음 사진 위에 오브제를 올려놓고 다시 찍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사진이 사진의 대상이 됩니다. 복제의 복제를 거듭하며 ‘이미지와 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13cm의 진실[사진1]: 사진 속에 자 네 개가 있습니다. 똑같은 13cm이지만 길이가 제 각각입니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자는 KS 인증 제품입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유령에게 홀린 느낌이 듭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비밀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는 사진을 보지 않고, 읽으려 합니다. 이미지의 문법은 텍스트와 다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13cm’라는 텍스트에만 집중합니다. “같은 ‘13cm’인데 왜 길이가 다르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1cm 단위로 눈금을 비교해 보면 자의 눈금 길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은 크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자를 찍는다고 실물 크기로 사진을 만들지 않습니다. 여기에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는 키가 있습니다. 먼저 각기 다른 자 사진 네 장을 찍습니다. 이를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의 크기를 각기 달리해 합성한 것입니다. ‘13cm의 진실’은 사라졌습니다. 어느 자도 정확하게 13cm를 말하지 않습니다. 사진은 복제된 이미지일 뿐입니다.


▎사진2


원본과 복제[사진2]: 카메라 두 대가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똑같은 카메라입니다. 자연상태에서 한 대의 카메라를 둘로 찍을 수는 없습니다. 이 사진은 디지털 합성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라 사진가는 이번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진을 합성합니다. 카메라 사진을 찍고 이를 인화지에 실물 크기로 프린트합니다. 그 다음 사진 위에 카메라를 마주보게 놓고 또 찍어서 프린트했습니다. 사진의 평면성을 이용한 눈속임입니다. 만든 사진의 형식을 따랐지만 결과적으로는 스트레이트 포토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대의 카메라 중 원본은 어느 것일까요. [사진3]에 나오는 100원짜리 동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찍은 것입니다. 똑같은 동전이지만 크기가 제각각입니다. 사진가는 복제놀이를 거듭하며 ‘원본과 복제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사진3


휘어진 도로[사진4]: 서울 시내 풍경을 찍은 사진입니다. 지진이 난 걸까요. 도로와 건물이 이리저리 휘어지고 뒤틀려 있습니다. ‘뽀샵질’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를 찍었을 뿐입니다. 다만 실재를 찍은 것이 아니라 액자 속에 있는 사진입니다. 습도 조절이 안돼 사진이 울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굳이 형식을 따지자면 이는 스트레이트 사진입니다. 라인석은 얘기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진의 피사체가 됩니다. 사진 역시 사진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의 일부를 찍은 사진이, 사진 자체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면, 사진이라는 세계의 일부를 찍어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은 권력이다’라는 말은 사진의 강력한 증명성에서 비롯됐습니다. 사진은 진실만을 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복제놀이 속에 전통적인 진리미학은 힘을 잃고 무장해제를 당합니다. 이제 사진은 더 이상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원본과 복제(이미지)의 구분도 사라졌습니다. 복제된 이미지가 실재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라인석의 사진들은 ‘복제의 복제’ 즉 시뮬라크르의 환영 속에 사는 현대인의 지각을 반영합니다. 한때 Jtbc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끌었던 ‘히든싱어’는 시뮬라크르의 예능 버전입니다. ‘통’ 속에서 나오는 소리만 들으면 진짜 가수와 모창가수의 구분이 어렵습니다. 오히려 가짜가 더 진짜 같습니다. 우리는 영화배우가 대통령이 되고, 탤런트가 국회의원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실재에 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드라마 속 이미지에 열광합니다. 현대는 실재와 이미지가 혼재된 세상입니다. 2000년 넘게 서구 정신사를 지배해 온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사진4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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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호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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