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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사진예술의 상대성의 문법...명암·색·명도·크기·움직임, 비교대상 따라 달라져

▎[사진1] 영흥도, 2016
'빛이 강하면 그늘도 깊다’. 당연합니다. 지극히 물리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사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는 명언은 없습니다. 우리는 늘 남과 견주어 행복과 불행을 이야기 합니다. ‘상대성의 원리(?)’입니다. 시각예술에도 이 상대성의 ‘문법’이 적용됩니다.

첫째, 빛이 그렇습니다. 사진에서 절대적인 빛의 밝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조리개 수치를 높이거나 셔터타임을 빠르게 하면 밝게도, 어둡게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둠도 마찬가지입니다. 빛의 밝기를 강조하려면 어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반대로 어둠의 깊이는 빛이 말해 줍니다. [사진1]은 영흥도 풍경입니다. 해질녘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주변이 컴컴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평선이 열리며 구름 사이로 나오는 빛이 바다에 떠 있는 배를 비춥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흰색 바탕의 회색은 어둡게, 검은 바탕의 회색은 더 밝게


▎[사진2] 갯벌, 2014
둘째는 색입니다. 색도 빛이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색의 효과를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채색과 유채색 또는 보색관계에 있는 두 색을 대비시키는 것입니다. 채도가 도드라집니다. 어둡게 찍으면 색감도 더 짙어 집니다. 이를 미술 용어로 색대비라고 합니다. 두 가지 색이 서로 영향을 미쳐 서로 다툼이 강조돼 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갯벌 속에는 생명들이 활기차게 꼬물거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서적인 색감은 어둡고, 침침하게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갯벌 속에 사는 칠게·짱뚱어·조개 같은 생명들은 대개 무채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빠르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보호색으로 무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갯벌이 품고 있는 생명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2]는 전남 무안에서 붉은 노을 빛을 이용해 갯벌을 찍은 것입니다. 물이 빠지고 갯벌이 드러납니다. 갯벌을 기어 다니는 칠게가 검은 실루엣으로 나옵니다. 칠게 물그림자가 데칼코마니처럼 나타납니다. 침침해 보이던 갯벌에 활기가 넘칩니다.

색대비에는 명도대비도 있습니다. 어떤 색이 밝기가 다른 두 배경 위에서 대비될 때, 밝은 색은 더 밝게, 어두운 색은 더 어둡게 느껴집니다. 일종의 착시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흰색 바탕의 회색은 어둡게, 검은 바탕의 회색은 더 밝게 보입니다. [사진3](이정현, 아주특별한사진교실 1기)은 명도대비 효과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진입니다. 무의도에서 갈매기 무리들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회색빛 날개와 흰색 몸통을 가진 같은 종류의 갈매기입니다.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날고 있는 갈매기는 검게 보이고, 어두운 산이 배경이 된 갈매기는 희게 보입니다.


▎[사진3] 갈매기, 2017
움직임 강조할 때는 프레임 안에 고정된 것 있어야


▎[사진4] 낙화유수, 2014
셋째는 크기입니다. 사진은 절대적인 크기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무리 크고, 높은 산이라도 손톱 만하게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손톱만한 곤충도 산처럼 크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절대적인 크기는 주변에 있는 비교대상과 견주어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동양의 산수화가들은 산수풍경의 숭고미를 나타내기 위해 사람을 개미 만하게 그려 넣습니다.

넷째는 움직임입니다. 피사체의 움직임이나 흔들림을 강조할 때는 고정된 것이 프레임 안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느린 셔터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풀을 찍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프레임 안의 모든 것이 다 흔들리면 어지럽기만 합니다. 산만해보이기 쉽습니다. 나무 밑둥이나 풀 아랫부분이 고정돼 있으면 흔들림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표현됩니다. [사진4]는 ‘낙화유수’라는 작품입니다. 계곡물에 벗꽃잎이 떨어져 일렁입니다. 느린 셔터(1/2초)로 찍었습니다. 물결이 이는 부분의 꽃잎은 흔들렸지만 멀리 있는 꽃잎은 고정돼 있습니다.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떠 내려가는 낙화유수의 이미지가 훨씬 더 강조됩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00호 (2017.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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