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김경준의 디지털 인문학] 소말리아 해적과 베네치아 상선의 공통점 

 

김경준 딜로이트 경영연구원장

2011년 1월 아프리카 동부 해안에서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다. 우리나라 상선 삼호쥬얼리호를 납치했던 소말리아 해적을 우리나라 해군이 소탕하고 인질 전원을 모두 구출한 것이다. 당시 침착하고 용기있게 사태에 대응한 석해균 선장은 국민적 영웅이 됐다. 흥미로운 점은, 소말리아의 유구한 상업의 역사가 해적들에게도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해적 사업도 투자에 대한 이익 분배, 위험 부담에 따른 보상, 투자 지분의 배분 등이 합리적으로 적용되는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정당성 여부는 논외로 하고, 해적 사업도 위험을 감수한 이익을 기대하는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인류 역사상 상거래가 시작된 이래 일관되게 형성되고 적용되는 기본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소말리아는 무역 중심지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소말리아의 선원과 상인들은 아프리카 동부의 교역을 주도했고, 로마시대에는 인도, 그리스 간 중계무역으로 크게 번성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정치·사회적으로 비교적 안정을 유지했던 소말리아는 1990년대 초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면서 해적 집단의 본거지가 됐다. 소말리아 인근 해역이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무역의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이 배경이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소말리아 해적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통상 2척의 공격선과 1척의 보급선이 필요한 해적 사업은 투자자와 행동대원 모집으로 시작된다. 상선을 공격하는 행동 대원은 A급 지분,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는 육상 지원팀은 B급 지분을 인정받고, 해적질이 성공해 몸값을 받으면 배분이 시작된다. 착수 자금 투자자에게 몸값의 30%가 우선 돌아가고, 팀의 선임자들에게 10%, B급 지분 보유자들에게는 정해진 고정급이 지급된 후 나머지를 A급 지분 보유자가 차지한다. 이익 배분이 합리적이지 않으면, 팀원들이 몸값을 훔쳐 달아날지 모르기 때문에 철저히 인센티브 제도를 유지하고, 보상 수준은 공평하게 책정된다. 수익성 높은 해적 사업에 투자하고 지분을 거래할 수 있는 일종의 증권거래소도 생겨났다. 해적 증시는 2009년 8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북동쪽으로 약 400㎞ 떨어진 인도양 해안 도시 하라디레에서 개장했다. 수익성이 높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세계 각지의 소말리아 출신 이민자들까지 투자에 나서고 있고, 해적 행동대원으로 목돈을 번 사람들이 투자자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소말리아 해적은 초기의 생계형 범죄가 아니라 해적질에 필요한 자금이 세계에서 모이고, 국제조직이 해적에게 선박 운항 정보를 제공하는 거대한 글로벌 비즈니스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런 소말리아 해적 사업의 운영 방식은 르네상스 시대 지중해 무역을 독점해 전성기를 누렸고, 근대 해상무역 관련 제도의 원형을 만든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역선 운영과 흡사하다. 베네치아가 해상 교역에서 만든 투자 지분의 개념은 후일 네덜란드의 주식회사 제도로 발전한다. 베네치아에서는 선박을 소유한 선주, 항해를 담당하는 선장과 선원, 선적화물 화주의 3종류 투자자가 있었다. 항해에서 얻은 수익을 각 그룹에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기준이 있었고, 이 투자 지분을 거래할 수도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이나 베네치아 상선이나, 오늘날의 선박펀드나 모두 위험 부담과 이에 따른 보상이라는 인센티브 구조에 따라 구성돼 있으며, 위험에 투자하고 이익을 얻고 배분하는 사업의 본질은 동일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해적은 스티븐슨의 동화 [보물섬](1883)의 후크 선장 이미지로 유명한 카리브 해적이다. 이들도 나름의 합리적인 인센티브 구조와 협력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17세기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해적의 전성시대였다. 대항해 시대가 개막되면서 대서양의 물동량이 증가했지만, 스페인을 비롯한 영국·네덜란드·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자국 무역선을 보호할 해군 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일종의 공백기였기 때문이다. 자메이카에 자리한 해적의 집결지 포트로열에는 500여척이 정박할 수 있는 대규모 항구에 약탈한 화물을 거래하는 대규모 시장이 있었다. 1662년에는 해적의 화폐를 주조하는 공장까지 생겨날 정도의 호경기를 누렸다. 세력이 커진 해적들은 연합해서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 있는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를 습격할 정도로 강성했다. 초창기 해적들은 주로 선원 출신 범죄자들의 생계형 도둑질에 가까웠지만, 점차 약탈 규모가 커지고 인원이 늘어나면서 조직 형태를 갖추고 나름의 지배구조와 규율을 갖추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비록 국가의 법률을 벗어난 범죄자들이지만 공정하게 운영되는 합리적인 내부 규율을 가지고 있었다. 철저히 실력에 따라 조직을 갖춰야 생존할 수 있는 엄혹한 환경에서 각자의 자발적 협력을 이끌어내되 규율을 갖춘 팀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해적 조직도 엄정한 실력주의, 합의에 따른 권위, 기여도에 따른 공정한 분배, 엄격한 규율이라는 인간 세계 조직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해적 선장은 과거의 직책이나 신분이 아니라 실력에 근거해 정했다. 해적 입장에서도 능력이 부족한 자가 지휘하면 성공률이 낮아져 수입이 줄어들고, 실패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선장의 자질은 중요한 사안이어서 투표를 통해 선장을 선출했다. 일단 선출된 선장이 해적선의 전투와 운영 전반을 관장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명되면 해적들은 투표로 파면시켰다. 해적들은 해군의 전쟁위원회를 모방한 위원회를 만들어 해적 집단 간의 노략질 지역과 역할 분담, 갈등해결 등을 조정했다. 해적들은 항해 전에 선상 생활, 선원 임무, 근무 규율, 재물 분배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규정된 문서에 서명했다. 당시 육지에서 노예였던 흑인도 해적선 안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인종 간 평등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카리브 해적이 자생적으로 만든 조직질서에는 냉혹한 환경에서 각자의 역량을 토대로 협력해 생존해야 하는 인간 조직의 공통적 속성이 내재돼 있었다.

현재 국제적 골칫거리인 소말리아 해적조차 투자와 이익 배분에서 상거래의 보편적 관행을 따르고 있는 점은 흥미롭다. 또한 17세기 카리브 해적이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역량에 따른 협력에 근거해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비록 해적질 자체는 비난 받아야 할 범죄이지만,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조직 구성과 운영의 보편적 원칙이 존재함을 해적의 역사를 통해서 실감할 수 있다.

※ 필자는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는다.

1406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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