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산업 플랫폼, 그리고 산업 인터넷 

 

이민화 KAIST 교수
반복되는 요소를 공유하면 비용을 줄여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반복되는 요소를 재사용할 수 있으면 새로운 혁신이 촉진된다. 플랫폼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반복되는 요소를 공유해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올리고, 재사용으로 혁신을 촉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플랫폼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사례는 인수분해다. 예컨대 ‘aX+bX+cX=(a+b+c)X’로 인수분해하면 3개의 X를 한 개로 대체해 두 X의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공항을 공유하면 비행기 노선마다 공항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어 새로운 노선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정부의 규제가 풀리면서 공항을 비롯 각종 설비와 서비스를 공유하면서 저비용항공사가 혁신적 노선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윈도우나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시스템(OS)의 각종 모듈을 공유하면서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기 쉬워졌다.

그런데 정부의 규제가 강해지면 각종 공유에 드는 연결 비용이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수분해 과정에서 ( )의 비용이 X보다 크다면 플랫폼은 활성화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플랫폼은 연결 비용과 공유 요소 비용의 함수인 것이다.

연결의 한계비용이 제로(0)가 되면 플랫폼은 급격히 확산된다. 바로 유선 인터넷의 등장으로 온라인 플랫폼이 확산된 이유다. 유선 인터넷 덕에 정보의 연결 비용이 한계비용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 결과 구글·네이버·위키피디아 등 다양한 콘텐트 공유 플랫폼이 등장할 수 있었다. 유선 인터넷에 이어 무선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플랫폼이 물질의 영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유선 인터넷이 정보를 연결했다면 무선 인터넷은 정보와 물질을 이어줬다. 그 결과 아마존·알리바바·G마켓과 같은 거대한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플랫폼이 등장해 공유 플랫폼 경제가 경제 규모의 5% 규모인 콘텐트의 영역에서 실물 경제 영역으로 퍼져나갔다. 이어서 사물인터넷(IoT)이 등장하면서 제품과 서비스가 융합하는 ‘PSS(product service system)’가 등장했다. 소비자의 행동이 제품과 결합하고 애프터서비스가 사전 예지 서비스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연결 비용을 제로로 줄이는 인터넷의 진화에 발맞춰 플랫폼도 정보 플랫폼에서 제품 플랫폼을 거쳐 제품-서비스 플랫폼으로 공진화(co-evolution)되면서 공유 플랫폼 경제를 확산시킨 것이다.

이제 산업 IoT가 등장하면서 생산과 유통 프로세스의 연결 비용이 한계비용 제로화되기 시작했다. 방대한 실시간 생산과 유통 데이터가 IoT를 통해 저비용으로 연결되면서 산업 전체가 플랫폼 형태로 재편성되고 있다. 산업 플랫폼은 파이프 라인형 단일 기업의 닫힌 가치사슬을 해체하고 있다. 과거 파이프라인형 닫힌 가치사슬로 구성된 기업이 산업 생태계의 연결 비용이 한계비용 제로화되면서 최적의 역량을 가진 기업의 열린 생태계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피터 드러커 교수가 말한 기업의 양대 요소인 혁신과 마케팅이 개별 기업 단위에서 산업 생태계 수준으로 분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산업 플랫폼은 혁신 플랫폼과 유통 플랫폼으로 양분화돼 진화하고 있다. 정보(天)·물질(地)·인간(人)이라는 경제의 3 요소가 각각 생산·시장·소비의 3가지 활동으로 구성되는 플랫폼 진화에서 빠진 연결 고리가 산업 인터넷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기업은 이제 공통 요소를 플랫폼에서 공유한다. 과거 요소 중심의 효율성 경쟁에서 혁신 중심의 창조성 경쟁으로 전환하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개별 요소 차원에서 산업 생태계 차원으로 이동했다. 소비에서 시작된 사물인터넷 혁명이 이제 산업 인터넷을 통해 생산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산업의 예를 들어보자. 실리콘밸리에서는 소프트웨어의 95%를 공유 플랫폼을 통해 오픈소스로 공유하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의 공유 수준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5% 만드는 기업과 95%를 만드는 기업의 경쟁 결과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제는 개별 요소 경쟁이 아니라 산업 차원의 협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인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의 역량 강화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 간의 협력을 통한 전체 역량의 강화다. 협력은 공유 플랫폼을 통해 촉진된다. 산업 플랫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산업 플랫폼은 산업 요소와 프로세스를 연결하는 산업 인터넷과 공진화한다. 산업 인터넷이 연결 비용을 줄이는 데 비례해 산업 플랫폼의 확산이 촉진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다루기 어려웠던 생산과 유통과 서비스 현장의 실시간 데이터인 ‘에지 데이터(edge data)’를 산업 인터넷 기술로 획득·가공해 빅데이터화할 수 있게 됐다. 빅데이터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면 최적화된 예측과 맞춤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를 다시 로봇과 증강·가상 현실과 같은 아날로그화 기술로 현장에 접목하면 스스로 학습하는 스마트 공장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동일한 개념을 유통에 적용하면 스마트 유통이, 도시에 적용하면 스마트 도시가 구축된다. 현장의 방대한 실시간 데이터를 활용해 생산과 유통을 최적화하는 혁명에서 뒤진다면? 산업 플랫폼 전략이 당장 필요한 이유다.

산업 플랫폼의 인프라인 산업 인터넷 분야에서는 GE(프리딕스)·지멘스(마인드스피어)·보쉬(IoT 슈트) 등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산업 인터넷은 클라우드 기반으로 구축돼야 한다. 공통 요소를 공유해야 산업 차원의 경쟁에서 승자가 될 수 있다. 과거 산업경제 시대의 유물인 각개 약진 전략은 이제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데이터와 분석 소프트웨어를 공유하려면 반드시 클라우드 기반으로 가야 한다. 한국의 스마트 공장, 스마트 농장, 스마트 도시, 스마트 학교, 스마트 병원은 반드시 클라우드 기반으로 구축해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 소프트웨어를 클라우드에서 공유하면 특정 기업에 예속될 우려도 없어진다. 클라우드의 미들웨어를 오픈소스화하는 클라우드 파운더리(Cloud Foundry)를 GE나 지멘스 등의 산업 인터넷에서 채택하는 이유다. 공유의 이점은 누리되, 예속의 우려는 줄이려는 전략이다.

미래 산업은 산업 인터넷을 바탕으로 재구축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첫째 산업 인터넷을 무시하고 개별 기업 전략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는 산업 경쟁력을 확실히 추락시키는 길이다. 둘째 우리만의 독자적인 산업 인터넷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공인인증서 혹은 타이컴과 같은 갈라파고스화의 진화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셋째 글로벌 선도 인터넷과 서비스 호환성은 유지하는 독자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 산업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1406호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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