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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자연의 선에서 음악적 선율 본다”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
사진에서도 공감각 활용 요긴 … 더욱 깊고 풍부한 표현 가능

▎[사진1] 빨강의 푸가, 1921, 파울 클레
'백종원의 푸드트럭’이라는 인기 TV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음식 사업으로 일가를 이룬 백종원이 푸드트럭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내용입니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청년 창업자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집니다. 또 전문가의 핵심을 찌르는 조언과 질타로 문제를 타개하고 목표를 달성해가는 젊은이들의 노력이 감동을 줍니다.

음식의 핵심은 미각, 즉 맛입니다. 맛이 있어야 팔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보면 사업의 성패가 반드시 맛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사가 잘되는 집은 맛 이상의 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종원은 유난히 시각과 후각을 강조합니다. 주문이 없는 데도 일단 사람이 보이면 고기를 구울 것을 주문합니다. 불꽃과 연기, 냄새로 사람들의 시각과 후각을 자극하게 합니다. 또 식재료가 사람들 눈에 잘 보이도록 진열하게 합니다. 용기도 예쁜 것을 사용하도록 합니다. 신기하게도 파리만 날리던 가게에 손님이 몰려듭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푸드트럭 사업 성공의 공식은 볼거리(시각)와 냄새(후각)로 손님을 끌고, 맛(미각)으로 승부를 짓습니다. 특히 젊은층일수록 맛보다 볼거리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제 음식을 맛으로만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것이 현대인의 감각입니다. 어느 분야든 복합적인 감각, 즉 공감각이 있어야 주목받습니다.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의 감각이 있습니다.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입니다. 이를 오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뭔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대상을 주의깊게 볼 때는 본능적으로 오감을 활용하게 됩니다. 귀를 기울이거나 냄새를 맡고, 만져보는 적극적인 행위가 없어도 본능적인 감각이 시각과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각은 늘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북을 치는 장면을 보면 동시에 소리도 듣습니다. 공기의 울림이 몸의 촉각으로도 느껴집니다. 꽃의 경우 꿀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나 꽃 향기가 꽃을 더 아름답게 합니다. 고기를 굽는 장면을 보면 불꽃과 냄새가 미각을 자극하는 이치와 마찬가지입니다.

미술의 역사는 전통적으로 시각 중심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이성중심주의 철학에서는 본능적인 감각을 경계합니다. 특히 후각·미각·촉각 같은 감각은 불확실할 뿐 아니라 동물적이고 열등한 감각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회화에 청각이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모더니즘 시대입니다. 천재 예술가인 파울 클레(1879~1940)와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가 그 주인공입니다.

파울 클레는 음악가인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신도 수준급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그림으로 전향한 그는 바우하우스 교수로 재직하면서 소리의 패턴을 연구하고 이를 이미지의 패턴으로 옮기는 연구를 했습니다. 시각과 청각을 공유하는 이른바 ‘메타패턴’을 회화에 반영한 것입니다. 대표작인 ‘빨강의 푸가’[사진1]는 푸가라는 음악 형식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간략한 선과 형태로 음악적 리듬과 선율을 구현했습니다.

법학을 전공한 칸딘스키는 모스크바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인상파 화가의 전시회를 보고 그림에 매료돼 30대 후반의 나이에 회화로 전향했습니다. 어느 날 오페라를 보다가 ‘음악이 그림이고, 그림이 음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소리의 패턴을 회화에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추상적으로 표현된 그의 그림을 보면 회화의 문외한이 보아도 음악적인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그림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는 “색채는 건반, 눈은 공이, 영혼은 현이 있는 피아노다. 예술가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이다. 그들은 건반을 눌러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현대 예술은 감각의 해방, 공감각의 미학을 추구하게 됩니다. 청각·후각·미각·촉각까지도 예술의 대상이 됩니다.

사진에서 음악적 리듬감을 구현한 이는 미국의 풍경사진가 안셀 애덤스(1902~1984)입니다. 그는 수준급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자연의 선에서 음악적 선율을 본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또 “필름은 악보요 인화는 연주”라며 사진의 인화 과정을 음악에 비유했습니다.

“필름은 악보요 인화는 연주”


▎[사진2] 지리산, 2015, 주기중
공감각의 활용은 사진적 표현을 더 깊고 풍부하게 해줍니다. [사진2]는 장터목에서 바라 본 지리산 능선입니다. 산봉우리가 만들어내는 선율과 리듬감이 음악을 연주하는 듯합니다. 운해를 품고 점점 더 흐리게 겹쳐지는 능선이 메아리가 돼 울려 퍼집니다. 순간 사진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됩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08호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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