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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검, 담배의 경제학] 사회적으론 백해무익, 경제적으로 무해유익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수출시장에서 신선 농축산물보다 담배 비중 커...흡연에 따른 의료비용 등 수조원 추정

담배는 건강에는 백해무익(百害無益)하다. 4800여종의 화학물질과 69종의 발암(의심)물질을 함유해 암 발병률을 최대 6.5배까지 높인다. 우리나라에서 흡연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한 해 수만 명에 이른다. 이에 따른 의료비용 등을 감안하면 흡연의 사회·경제적 피해는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결코 무익하지 않다. 담배로 지난해 해외에서 5억9600만 달러(약 6571억원)를 벌어 들였다. 정부가 국내에서 담배로 걷는 세수도 한 해 10조원이 넘는다. 뜨거워지고 있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가격·유해성 논란을 계기로 담배의 두 얼굴을 살펴봤다.


▎사진 : GETTY IMAGES BANK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다시 40%대를 돌파했다. 성인 남성 흡연율은 1998년 66.3%로 고점을 찍은 후 줄곧 떨어지는 추세였다. 특히 담뱃값이 큰 폭으로 올랐던 2015년에는 사상 최초로 30%대인 39.4%를 기록했다. 하지만 2년을 버티지 못했다. 가격 인상 효과가 떨어지면서 지난해 40.7%로 1.3%포인트 오르면서 도로 40%대에 진입했다. 해마다 흡연율 자연 감소분이 3%가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되레 늘어난 수치다. 올해 들어서도 담배 소비량은 줄지 않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담배 판매량은 17억2000만갑으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7억갑을 넘었다. 상반기 담배 판매량은 2014년 20억3000만갑이었다가 담뱃값을 올린 2015년에는 14억6000만갑으로 큰 폭으로 줄었지만, 판매량이 다시 늘어 지난해(17억8000만갑)와 올해 모두 17억 갑을 넘었다.

가격 인상, 경고그림에도 담배 소비량 늘어

정부가 2015년 2500원이던 담뱃값을 4500원으로 올릴 때만 해도 “담뱃값 인상으로 금연 효과가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담배 소비량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 시행에 들어간 담뱃갑 경고그림의 금연 효과도 거의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고그림이 처음 등장한 지난해 12월(월 판매량 2억9000만갑) 이후 담배 소비량은 점점 줄어들어 올해 2월에는 2억4000만갑이 팔리는 데 그쳤다. 그러나 3월 이후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더니 6월에는 3억1000만갑이 팔렸다. 담배 소비가 늘면서 정부가 지난해 담뱃값에 부과해 거둔 담배부담금만 2조963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부담금이 3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담배부담금은 2014년 1조6284억 원이었으나 담뱃값 인상으로 2015년 2조4757억원으로 급증했다.

크게 늘어난 담배부담금 덕에 전체 건강증진기금도 2014년 2조2218억원에서 2015년 3조426억원, 2016년 3조4248억원으로 1조원 이상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와 2015년 담배 세수는 각각 12조3761억원, 10조5181억원에 이른다. 담뱃세가 10조원을 넘어선 것이다. 이에 따라 담뱃세가 국내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2.6%에서 2015년에는 3.6%로, 지난해에는 4%로 커졌다. 부담금과 세수가 확 늘어날 수 있었던 건 담배가 세금·부담금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현재 4500원짜리 담배 1갑에서 차지하는 세금과 부담금 비중은 73.7%(3318원)에 이른다. 담배소비세가 22.3%(1007원), 지방교육세 9.8%(443원), 건강증진(담배)부담금 18.6%(841원), 개별소비세 13.2%(594원), 부가가치세 9.6%(433원)다. 출고가 및 유통마진은 26.2%(1182원)다. 정부가 최근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개별소비세를 인상하기로 함에 따라 연간 430억원가량의 세수 증대 효과가 추가로 나타날 전망이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개별소비세는 기존 126원이었지만 최근 일반담배의 90% 수준인 403원으로 대폭 인상됐다.

담배는 세금·부담금 덩어리


아이러니하게도 담배 소비 즉, 흡연율이 다시 증가함에 따라 나라 재정은 든든해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되고 있다. 수출시장에서 담배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신선 농산물보다 월등히 높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농축산식품 수출액은 총 32억98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30억9600만 달러보다 6.5% 증가했다. 이 가운데 담배 수출액은 5억9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억 9900만 달러보다 무려 19.5% 증가했다. 전체 농축산식품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1%나 된다. 담배 수출액은 가공식품 가운데 대표 품목인 음료수 1억7600만 달러, 라면 1억7500만 달러와 비교해서도 3배 이상 많다. 특히 김치와 인삼, 토마토, 사과, 닭고기 등 신선 농축산물의 수출액(4억7800만 달러)보다 많다.

한국산 담배는 세계 50여개국으로 수출된다. 주요 시장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일본, 미국, 베트남, 호주 등지다. 특히 양담배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 시장에서 매년 10% 안팎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2015년과 지난해 2년 연속 UAE, 일본과 함께 한국산 담배 3대 수출국 자리를 차지했다. 수출이 크게 늘면서 담배 제조사인 KT&G의 해외 담배 판매량은 이미 국내 판매량을 추월했다.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더 커진 것이다. 지난해 KT&G의 해외 담배 판매량은 2015년 대비 4.7% 증가한 487억 개비로 2년 연속 최고 판매량을 경신했다. 총 8억1208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 이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무역의 날 행사에서 ‘7억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KT&G 측은 “몽골을 비롯해 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의 최근 매출도 급성장하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 역시 해외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17% 성장하는 등 순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4년 금연하면 1년치 대학 등록금 벌어


이처럼 담배는 경제·산업적 측면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담배를 끊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처럼 경제·산업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담배를 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경제·산업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2015년 정부가 담뱃값을 인상하려 하자 실제로 담뱃잎 생산 농가나 산업계를 중심으로 우리 경제·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담배를 끊는 사람이 늘면 단순하게는 담뱃잎 생산 농가나 담배제조사, 편의점 등 담배 판매처 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30년 이상 담배와 경제의 관계를 분석한 미국 일리노이대 경제학과 프랭크 찰룹카 교수는 “담배 규제가 고용 등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담배 업계의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며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올 초 미국 국립암연구소·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 발간한 ‘담배 및 담배 규제의 경제학’ 보고서의 총책임자를 맡았다. 이 보고서는 전 세계의 전문가 130여 명이 11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21세기 담배 규제 정책과 효과를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00쪽에 달하는 보고서에 따르면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난 세금은 금연 정책에 투입되고 흡연 감소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나게 된다. 흡연 감소가 끌어오는 경제적 효과가 흡연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보다 크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금연정책의 평가와 발전방향 모색을 위한 국제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찰룹카 교수는 “담배로 인한 질병이 줄어들고 사망자가 감소하면 노동 생산성이 개선된다”며 “담배 구입에 쓰던 돈을 다른 상품·서비스에 쓰게 되고 세금 증가분이 의료·교육 등 공공 부문에 투입되면서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각국의 담배 규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며 “담배 규제의 목표는 담배 소비로 인한 폐해가 미미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연의 경제적 효과는 사실 개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4500원짜리 담배 한 갑을 매일 태우는 흡연자가 열흘만 금연하면 4만5000원을 아낄 수 있다. 이렇게 한 달이면 13만5000원을, 1년이면 162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여기에 ‘기회비용’을 고려해 따져보면 3년 금연할 경우 4인 가족이 유럽으로 여행갈 수 있는 항공기 티켓을 살 가격을 모을 수 있다. 15년 금연하면 자녀의 결혼 예식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4년 금연하면 1년치 대학 등록금을 아낄 수 있다. 이는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담뱃값이 현재 가격으로 유지되고 흡연자가 매일 담배를 한 갑씩 계속 피운다고 가정했을 때 드는 비용을 기회비용으로 따져 어느 수준인지 실제로 비교한 것이다. 분석 자료에 따르면 5년 간 담뱃값을 모으면 1년 아르바이트로 벌 수 있는 금액을 모을 수 있다. 17년 금연하면 4년 대학을 다닐 수 있는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고, 30년이면 주택 1년치 월셋값이 나온다.

WHO “한국 담배 규제 이행 불성실”

문제는 정부의 담배 규제 정책이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에 이어 경고그림을 도입했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이 담배 규제기본협약(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 FCTC)을 불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WHO는 올해 발간한 ‘세계흡연실태보고서’에서 “한국은 6개 조항 중 판촉·후원금지 조항 등 2개는 이행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FCTC은 세계가 담배를 근절하기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로 약속한 것이다. WHO는 실용적이며 이행 가능한 6개의 담배 수요 감소 조치(MPOWER)를 선별한 후회원국의 이행 수준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보고서는 한국이 2015년 담뱃값을 인상했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담뱃값 비율이 가격 인상 전후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금연구역 정책도 미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11년부터 금연구역을 확대하고 있지만, 교육시설과 보건시설을 제외한 공공장소에서는 흡연이 일부 허용된다. WHO는 식당·커피숍·술집 등을 모두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담배 광고, 판촉·후원 금지 조항은 아예 이행 실적이 없거나 조저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FCTC에 따르면 모든 형태의 담배 광고·판촉·후원 활동을 금지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담배 광고와 판촉을 일부 허용한다. 또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후원 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금연지원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10% 삭감했다가 뒤늦게 올해 수준으로 인상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인숙 의원(바른정당)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018년 정부예산안’에 반영된 내년도 국가금연지원서비스 예산을 1334억원으로 올해 1467억원보다 134억원(10%)이 줄였다.

이 중 약 30억원이 질병관리본부에 흡연 폐해연구 등의 목적으로 이관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104억원 정도가 감액된 것이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복지부는 최근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키로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감액보다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아직 의결된 것은 아니라 정확하게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은 “추후 흡연율을 계속 떨어뜨리기 위해선 편의점 등에서의 담배 광고·진열 금지나 흡연 폐해 경고그림 확대 등 추가 비가격 정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1410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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