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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하리리 총리의 사퇴 파동에 담긴 중동의 패권 경쟁] 수니파 사우디, 시아파 확장 적극 저지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산유국 몰린 중동 정세 혼돈 속으로 사우디 vs 이란 첨예한 갈등

▎사퇴 의사를 번복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11월 22일(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에서 자택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중동의 작은 나라 레바논에서 날아온 작은 돌이 중동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일파만파의 풍파를 불러오고 있다. 레바논의 하드 하리리 총리가 11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암살 위협을 이유로 사퇴를 발표하고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와 이를 지원하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을 비난한 것이 시작이다. 하리리 총리는 자신이 헤즈볼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슬람 수니파로 레바논과 사우디의 이중국적자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헤즈볼라는 “하리리 총리의 사임은 사우디의 결정”이라며 “미국·사우디·이스라엘이 공모해 그의 사임을 결정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사우디가 헤즈볼라를 약화시켜 레바논 내정에 간섭할 목적으로 하리리 총리를 감금하고 사퇴를 종용했다고 거들었다. 레바논 내정이 사우디와 이란의 대결로 이어진 셈이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레바논에서 대리전을 펼친 셈이다. 하리리 총리의 사임과 관련한 갈등이 사우디와 이란의 국제적인 대결로 불거지자 레바논의 미셸 아운 대통령은 하리리가 귀국할 때까지 이를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리리는 프랑스와 이집트를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을 만나 후 11월 21일 귀국했으며, 22일에는 사퇴를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겉으로만 보면 해프닝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지만 중동의 뿌리를 살펴보면 이는 커다란 ‘전쟁’의 징조일 수 있다.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유다. 이를 살펴보자. 사우디와 이란이라는 중동 산유국이 벌이는 국제적인 대결을 살펴보고 중동을 둘러싼 국제정치의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하리리 총리, 사퇴 번복


역사적으로 이란을 제외한 중동 국가 대부분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오스만튀르크의 영토였다. 1차대전 중 오스만 튀르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편을 들어 동맹군에 참가했다. 그러자 이들과 맞서 싸운 연합군의 핵심이던 영국과 프랑스는 대전이 끝난 후 오스만튀르크령 중동을 분할 점령해서 서로 차지하기로 합의했다. 1916년 5월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밀약을 맺고 이를 문서화했다. 합의 내용은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던 러시아에도 전달됐는데, 1917년 11월 7일 10월혁명으로 정권을 차지한 볼셰비키가 ‘제국주의자들의 음모’라며 이를 공개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이 밀약에 따르면 영국은 팔레스타인 지역(현재의 요르단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과 이라크를,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 등을 차지하기로 했다. 1918년 1차대전 종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협정대로 중동 분할 점령에 들어갔다.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을 점령한 프랑스는 1920년 시리아에서 레바논 지역을 분리해 자치권을 부여했다. 프랑스는 마론파를 비롯한 기독교도가 사는 지역만 분리해 친유럽 기독교 국가를 만들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동에 기독교 국가의 교두보를 만들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다. 기독교 지역만 분리해 두고두고 프랑스의 영향권에 두겠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토나 인구가 지나치게 작은 미니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지자 일부 무슬림 지역을 합쳤다. 이 과정에서 동부 베카계곡 등의 시아파 무슬림 지역까지 영토에 합쳤다. 해안 지역에서 무역과 상공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기독교도가 가난한 무슬림 농부와 유목민을 관리하는 구조였다. 레바논은 프랑스가 애초 의도했던 기독교 지치지역 대신 기독교-무슬림 공존 자치지역이 됐다. 레바논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을 당해 해외 영토를 관리할 여력이 없자 1943년 독립했다.

프랑스는 1930년 레바논을 제외하고 남은 레바트 점령 지역을 합쳐 시리아를 구성했다. 시리아는 원래 종교와 지역에 맞춰 5개의 나라로 분리하려던 것을 하나로 합친 모자이크 국가다. 수니파 무슬림이 거주하는 다마스쿠스국과 알레포국, 그리고 해안지대 이슬람 시아파 알라위트계 거주지인 알라위트국, 그리고 동남부 드루즈신자 거주지인 드루즈국을 인위적으로 통합해 시리아를 만들었다. 시리아는 1963년 아랍민족주의를 지향하는 바트당의 쿠데타로 일당독재 국가가 됐다. 바트당 정권은 1971년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이 들어서며 일당독재에서 일인독재 체제로 바뀌었다. 2000년 하페즈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가 대통령직을 물려받으면서 세습 정권이 됐다. 하지만 이 나라는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주민이 봉기하고 이어서 시리아 내전으로 발전했다. 21세기 최대의 인도주의적 참상이라는 이 비극적인 내전에서 지금까지 33만~47만5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전쟁으로 비화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은 인구의 16%를 차지하는 알라위트파가 주축이다. 시리아 기독교도 상당수도 타종교에 관용적인 정부군을 추종하는 편이다. 애초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아랍의 봄’ 봉기에 나섰던 시위대의 상당수는 총을 잡고 이슬람 수니파 민병대가 됐다. 시리아 내전은 처음엔 서구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과 독재정권 간의 대결로 비쳤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구의 다수를 구성하지만 정치적인 힘이 없는 다수 수니파와 독재정권을 지탱하면서 특권을 유지한 소수 알라위트파 간의 대결이라는 성격도 분명히 있다. 알라위트파는 이슬람 시아파의 한 분파이기 때문에 이는 곧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결이라는 성격이 있다.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 vs 시아파 대리전


▎사우디는 2015년 수니파 연합군을 조직해 예멘의 하디 정권을 지원하면서 내전에 개입했다. 지난 6월 32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오른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이를 주도했다.
내전으로 시리아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는데도 내전이 끝나지 않는 것은 내전이 국제적, 대리전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수니파가 주축인 반정부군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아파의 한 분파인 알라위트파가 주축인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 이웃한 레바논의 시아파 민병대인 헤즈볼라도 든든한 지원줄이다. 시리아 내전은 한풀 벗겨보면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인 셈이다. 사우디는 서남쪽으로 국경을 맞댄 예멘에서도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예멘에선 2014년 이슬람 시아파인 후티 반군이 수니파인 아베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 정부를 공격하면서 내전이 발생했다. 하디 대통령은 수도 사나에서 쫓겨나 사우디에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는 2015년 수니파 연합군을 조직해 하디 정권을 지원하면서 내전에 개입했다. 지난 6월 32세의 나이로 왕세자에 오른 무함마드 빈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주도했다. 무함마드는 2015년 1월 부친인 살만 국왕이 즉위하자 부친이 맡고 있던 국방장관을 물려받았다. 장관이 된 그가 처음으로 나선 일이 예멘 내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었다.

사우디는 주로 공군력을 앞세워 예멘 각지를 폭격하고 있다. 사우디의 개입 후 지금까지 예멘에서 8600명 이상이 숨지고 5만 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후티 반군 측은 주장하고 있다. 유엔은 예멘 인구 2760만 명 중 2070만 명이 사우디 등의 지상과 해상 봉쇄에 따른 기아와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겪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콜레라가 발생해 88만 4000명이 감염돼 2184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후티 반군은 2015년 6월 이후 100발 가까운 탄도 미사일을 사우디로 발사했다. 최고 1200km를 날아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킹칼리드 국제공항 상공에서 사우디 방공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요격된 것도 있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사우디와 예멘에서 패트리엇 미사일이 요격한 후티 반군의 미사일은 1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티 반군은 상당한 미사일 전력을 보여왔다. 지대함 미사일로 미국 해군과 수니파 연합군의 함선도 공격해 미 해군이 SM-2 미사일로 요격한 적도 있다. 후티 반군은 내전에서도 미사일을 전술용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750km 거리의 정부군 지휘소에 탄도미사일을 명중시켜 중장을 포함한 고위 장교들을 폭사시켰다. 후티 반군은 지난 3월 20일 드론을 이용해 사우디가 주도하는 수니파 연합군 패트리엇 포대 공격까지 시도했다. 미사일과 요격 미사일 간의 ‘창과 방패의 전쟁’이 강대국 간이 아니라 중동 사막의 사우디와 예멘의 후티 반군 사이에서 불붙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전쟁이 치열한 미사일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미사일과 요격미사일의 대결이 격화하자 사우디가 세계 미사일 방어용 무기의 ‘진공소재기’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상당량의 패트리엇 미사일을 들여온 것에 이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사들여 실전에 배치하기로 했다. 공항이나 군 기지 등 시설 방어용인 패트리엇과 비교할 수 없는 첨단 무기체계다. 200km 작전 반경에서 최고 150km까지 방어할 수 있어 하나의 지역을 지킬 수 있다. 문제는 150억 달러에 이르는 도입 비용과 미국의 승인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 9월 초 사드의 사우디 판매를 승인했다. 사드를 사들여 자국에 배치하는 최초 사례다.

사우디, 미국·러시아·중국제 미사일 도입


▎시리아 내전은 국제적, 대리전 성격이 있다. 시리아 수니파가 주축인 반정부군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고 있다. 시아파의 한 분파인 알라위트파가 주축인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 이웃한 레바논의 시아파 민병대인 헤즈볼라도 든든한 지원줄이다. / 사진:AP=연합뉴스
또 다른 놀라운 일은 사우디가 러시아제 S-400 방공미사일 시스템도 들여오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사우디의 살만 국왕은 지난 10월 5일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S-400 구매에 합의했다. S-400의 구매 규모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억~40억 달러로 추정된다. 미국의 동맹인 사우디는 러시아와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다. 그런데도 사우디는 미사일 방어라는 안보 목표를 위해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러시아 무기체계를 사기로 했다. 세계에서 미국의 사드와 러시아의 S-400을 동시에 보유하는 나라는 처음이다. 사우디의 안보실용주의다. S-400은 러시아 외에 인도와 중국이 도입을 결정했으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도 관심을 보인다. 사우디는 1700km 범위에서 마하 10의 속도로 적의 방공망을 뚫고 항공모함이나 핵심 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중국산 동펑-21(DF-21) 탄도 미사일도 이미 2007년부터 운용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러시아·중국과 모두 미사일을 거래하며 전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북한에서 기술을 도입해 미사일을 개발, 생산하고 있는 이란이 자리잡고 있다.

후티 반군은 자신들이 발사한 미사일을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예멘의 과학기술이나 방위산업, 산업경제 수준을 봤을 때 어불성설이다. 이란으로부터 완제품을 공급받았거나 부품을 조달받은 후 조립했을 가능성이 크다. 후티 반군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북한과 미사일 협력을 계속해온 대표적인 국가로 중동의 수니-시아 갈등이 한반도까지 연결될 태세다. 실제로 이란은 중동에 ‘시아파 초승달’ 또는 ‘시아파 반달’로 불리는 지정학적, 국제 전략적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왔다. 이는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거나 정치적 영향력이 큰 국가와 지역을 연결하면 초승달이나 반달 모양이 된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페르시아 만의 바레인(65%)에서 시작해 그 북쪽으로 이란(90~94%), 그 서쪽으로 이라크(65%)와 지중해 연안의 시리아(16%이나 정부군이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트(11%)가 주축)를 거쳐 레바논(27%)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이 용어는 2004년 이란이 이라크의 총선에 개입하려고 시도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요르단의 압둘라 2세가 처음 사용했다. 중동에서 이란의 세력 확장 야망, 이슬람 종파 문제, 지정학적인 고려를 결합한 용어다. 이란이 지역의 시아파 세력을 연결해 지중해쪽 출구를 확보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지역 패권국가로 성장할 지정학적인 바탕을 마련할 수 있다. 당시 이라크 총선에서 수니파는 국내 갈등으로 선거를 보이콧했으며 그 결과 이라크의 정국은 시아파가 장악하게 됐다. 이는 이라크가 이란의 영향권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사우디, 이라크와의 국경 따라 1000km 방호벽 설치

사우디는 그런 이라크와 814km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다. 대부분 황량한 사막지대라 국경이 열려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든 물자든 얼마든지 오갈 수 있다.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인 이슬람국가(IS)의 전사들은 물론 이란의 사주를 받은 이라크의 시아파도 마음만 먹으면 쉽사리 사우디에 침투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간 이라크와 접경한 사우디 서북부는 긴장에 휩싸였다. 무장대원들이 침투해 사우디 군인 3명이 숨지고 자살테러범 4명이 사살되는 사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는 살만 국왕이 국방장관이던 2014년 9월부터 이라크와의 국경을 따라 총연장 1000km에 가까운 방호벽을 설치해왔다. 벼랑길 등 지형지물을 이용해 침입자가 이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할 5중 벽을 설치한 첨단 시설이다. 3만 명 규모의 국경 경비대가 배치돼 감시시설에서 근무하게 된다. 20km마다 감시 레이더를 설치하고 벽에 감지 센서까지 부착해 외부인의 침임을 철저히 통제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공중에는 정찰기와 무인감시기가 상시 정찰활동을 벌이게 된다, 이 업무도 사우디 국방장관인 무함마드 왕세자가 맡고 있다.

무함마드는 2016년 1월 “아랍 세계는 시아파의 보름달에 맞서고 있다”라며 이란을 경계했다. 이는 이란의 하산 루하니 대통령이 2015년 12월 “시아의 초승달도, 수니의 초승달도 없으며 오직 이슬람의 보름달만 있다”며 “이슬람 세계는 단결해서 세계에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발언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누가 봐도 시리아와 예멘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민병대가 활동하며 시아파의 영역을 넓히는 것을 견제한 발언이다. 2017년 11월에 벌어진 레바논 하리리 총리의 사퇴 파동은 그 견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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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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