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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중후한 신사 같은 품격의 동딩우롱 

 

서영수
중국의 10대 명차에도 이름 올린 타이완의 대표적 반 발효차

▎동딩우롱은 일본인 취향에 맞춘 청향 제다방법에서 벗어나 농향·밀향·화향으로 다양한 맛으로 분화된다.
동딩우롱(凍頂烏龍)은 타이완을 대표하는 차다. 발효도 25~35% 정도로 완성되는 반구형(半球形)으로 말려 있는 청차다. 타이완 중남부에서 생산되는 동딩우롱은 타이완 북부를 대표하는 원산빠오종(文山包種)보다 30년 먼저 타이완에 뿌리내린 반 발효차다. 겨울비 추적추적 나리는 날 차가운 손을 단숨에 녹여주는 중후한 신사다운 품격을 가진 동딩우롱은 타이완과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다. 일본 먹방TV ‘고독한 미식가’에서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항상 마시는 차가 우롱이다. 우롱차를 좋아하는 일본인은 술과 우롱을 혼합한 우롱하이를 맥주 마시듯 한다. 타이완 10대 명차를 넘어 중국 10대 명차에도 이름을 올리는 타이완 차는 동딩우롱이 유일하다.

동딩우롱 원산지 중심에 있는 난토우현 루구향 차문화관을 찾았다. 차문화관 입구에 차를 채취하는 차농과 차를 만드는 조형물이 건물 양쪽에 세워져 있었다. 반가이 맞이하는 농회 소속 직원과 함께 차문화관을 둘러보며 동딩우롱에 대한 담화를 나눴다. 동딩우롱 재배 역사에 대해 직원은 “루구향 추샹촌에 살던 가난한 청년 린펑츠가 이웃들이 모아준 여비로 청나라 시절 과거시험을 보러 푸젠성에 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1855년 금의환향할 때 푸젠성 우이산 차 맛에 반해 묘목 36그루를 가져와 고마운 이웃에게 나눠 심도록 했다”며 “그중 치린탄에 이식한 12그루가 살아남아 동딩우롱의 조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얼음산봉우리란 뜻의 ‘동딩’


▎유산차방 차문화관에 있는 동딩우롱 조상나무.
차문화관 1층은 차를 직접 우려서 마시는 넓은 차실과 동딩우롱과 루구향에서 생산한 차를 판매하는 매장이 있었다. 2층에는 사진과 도표 그리고 실물로 동딩우롱 발자취를 손쉽게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있었다. 동딩우롱 차 시합에서 우승한 인물 사진이 연도별로 잘 정리돼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니 차 문화체험실과 시청각강의실이 준비돼 있었다. 직원은 외지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동딩우롱을 알려주기 위해 미처 준비 못한 통계수치와 답변은 꼼꼼하게 메모하며 e메일로 답해줄 것을 약속했다.

동딩우롱은 동딩산(해발743m)을 중심으로 루구·펑황촌·짱야촌·쭈산 일대에서 생산된다. 동딩산은 해발은 높지 않지만 경사가 심하고 강우량이 풍부하고 구름 낀 날이 많아 연평균 20°C가 넘는 기온에도 햇볕 드는 날이 드물어 서늘하다 못해 추위를 느껴 ‘얼음산봉우리’라는 뜻으로 ‘동딩’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푸젠성에서 가져온 청심오룡으로 만들던 동딩우롱은 1972년 국가 모범사업으로 지정되며 품종개량이 된 금훤·사계춘·불수로도 만든다. 1980년대부터 수출이 활성화되며 명차 반열에 오른 동딩우롱은 일본인 취향에 맞춘 청향 제다방법에서 벗어나 농향·밀향·화향으로 다양한 맛으로 분화된다.

동딩우롱을 만들 때 단일 수종이 아닌 서로 다른 차나무 품종에서 나온 찻잎을 섞어 새로운 향과 맛을 창출하기도 한다. 새로 개발한 금훤과 전통 품종 청심오룡을 혼합하면 독특한 꽃향기를 품은 동딩우롱이 탄생된다. 1987년 타이완 시인 리예(李野)는 차 애호가로서 차농과 함께 제차공법을 변형해 홍차와 맛과 색이 흡사한 혁신제품 홍수우롱(紅水烏龍)을 개발해 동딩우롱의 지평을 넓혔다. 최근에는 대중화를 위해 13등급으로 복잡하게 구분된 전통적 품질등급을 7등급으로 간소화시켰다. 695만m²에 달하는 대규모 재배지역에서 연중 12월~2월을 제외하고 계속 생산되는 동딩우롱은 끊임없는 연구와 품질 개선으로 타이완 대표 국민차로 사랑받고 있다.

동딩우롱 차 품평대회에서 우승한 차는 100g당 400만원에 팔린다고 했다. 차문화관을 둘러보는 동안 전문 차예사가 준비한 차 품평대회에서 우승한 동딩우롱을 맛봤다. 직원의 격한 칭송이 아니더라도 특등을 차지한 차의 위엄은 청차에서 풍기는 화사한 향을 선호하지 않았던 선입견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우승한 동딩우롱은 한 번 마실 5g도 구매할 수 없었지만 이등상 받은 차를 직원 배려로 조금 구할 수 있었다.

동딩우롱과 대나무로 유명한 쭈산으로 이동했다. 옛 버스터미널을 개조해 내부를 대나무로 만든 식당에서 대나무와 차를 소재로 한 쭈산 별미를 시식하며 1880년부터 5대째 가업으로 차를 만들어온 유산차방 대표 첸쭝쟈(陳重嘉)를 만났다. 첸쭝쟈의 아들도 대학을 마치고 가업을 이어 차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유산차방은 해외 지사도 갖춘 글로벌 차 회사다. 첸쭝쟈는 차나무 재배에서 찻잎 채취 가공 유통을 손수 하는 전천후 차인이다. 타이완 대학에서 강의도 하며 한국에서 연수하러온 차 학과 학생들에게 기술 지도를 하고 있다. 7년 전 유산차방 차문화관을 설립해 관광코스와 실습장으로서 지역사회를 빛내고 있다.

동딩우롱을 포함해 타이완 차산업 현주소를 체험할 수 있는 유산차방 차문화관을 향했다. 첸쭝쟈의 아내 예수펀(葉淑盆)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산차방 총경리를 맡고 있는 예수펀은 “차문화관 입구 정원에 있는 차나무 2그루가 바로 동딩우롱 조상나무”라며 “동딩산에서 옮겨와 이식에 성공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고 했다. 루구향 차문화관과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유산차방 차문화관은 지역 명소로서 손색이 없었다.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된 우롱차를 시음하면서 장기간 우롱차 보관을 위한 ‘탄배기술’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발효 과정에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 ‘가바’


▎동딩우롱 품평대회의 역대 우승자.
동딩우롱 제조전통기술에 능통한 첸쭝쟈는 신기술과 기능성 차에도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차 발효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가바(GABA, Gamma-Amino Butyric Acid)는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억제 신경전달물질이다. 아미노산이지만 단백질 조성에 관여하지 않는 가바가 부족하면 우울증과 치매 같은 신경계 질환이 발생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김치와 쌀에 인위적 가바 생성공법을 활용해 판매하고 있다.

※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1419호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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