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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초점 맞는 범위 ‘피사계 심도’의 마법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배경 흐리게 만드는 아웃포커싱 효과 … 주제 부각하거나 원근감·깊이감에 관여

▎Cosmos시리즈, 2017
어르신들이 쓰는 말 중에는 구수한 말이 많습니다. 특히 비유적인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대부분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노모께서 눈이 흐리다며 “눈에 주먹 댄 것 같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안과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았습니다. 백내장 진단이 나왔습니다. 정도가 심해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주먹 댄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신적인 충격을 받거나, 현기증으로 눈 앞이 어지럽고, 잘 보이지 않는 경우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눈에 주먹을 바싹 가까이 대면 초점도 맞지 않고, 주먹이 두 개로 겹쳐 보입니다.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초점 맞추려면 대상과 최소한의 거리 필요

카메라 렌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대상과 최소한의 거리가 필요합니다. 이를 카메라 용어로 ‘최소 초점거리’라고 합니다. 렌즈에 따라 다르지만 약 30~100cm 떨어져서 촬영해야 초점이 맞기 시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이 뭉개지고, 흐려집니다.

사람은 눈이 둘이기 때문에 흐릴 뿐 아니라 둘로 겹쳐 보입니다. 문틈이나 구멍을 통해 뭔가를 찍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과물을 보면 문이나 구멍 주변은 윤곽이 흐려 보입니다. 카메라를 바짝 갖다 댔기 때문에 문이나 구멍이 최소 초점거리 범위 안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최소 초점거리를 줄여서 아주 가까이서 촬영할 수 있는 렌즈를 접사렌즈(macro lense)라고 합니다. 꽃이나 아주 작은 사물을 찍는 분들이 선호하는 렌즈입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것을 아주 크게 찍을 수 있습니다. 접사렌즈는 특성상 초점이 맞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선명도에 큰 차이가 납니다. 배경이 흐릿하게 뭉개지기 때문에 주제를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망원렌즈 역시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흔히 ‘여친 렌즈’라고 하는 것은 망원렌즈이거나 밝은 렌즈, 즉 조리개 f값이 아주 낮은 렌즈를 일컫는 말입니다.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해 여자친구가 훨씬 더 돋보이고, 예뻐 보이게 찍을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배경을 흐리게 하는 것을 ‘아웃포커싱’이라고 합니다. 이는 ‘피사계 심도(Depth of Field)’와 관계가 있습니다. 어려운 사진 용어입니다. 피사계 심도는 초점이 맞는 범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사진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이를 이해하면 사진 공부의 절반은 끝났다고 말합니다.

카메라에는 빛의 밝기를 조절하는 기능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셔터 타임입니다. 셔터막이 열리는 시간, 즉 사진을 찍는 시간을 짧게 하거나 길게 해서 빛의 밝기를 맞춥니다. 다른 하나는 조리개입니다. 렌즈 구멍을 좁게 하거나 넓게 해서 빛을 조절합니다. 렌즈 구멍의 크기를 f값(숫자)으로 표시합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빛의 밝기를 재는 것을 측광이라고 합니다. 측광은 셔터타임과 조리개의 함수관계로 결정됩니다. 시간을 짧게 하면 구멍을 크게 하고, 시간을 길게 하면 구멍을 작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때 렌즈구멍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초점 범위, 즉 피사계 심도가 달라집니다. 렌즈 구멍을 열어줄수록(f값이 낮을수록) 초점이 맞지 않는 부분이 흐릿해지는 아웃포커싱 효과가 커집니다. 반대로 렌즈 구멍을 작게할수록 초점 범위가 넓어져 전체적으로 선명한 화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사진은 배경이 흐려지는 정도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는 사람의 눈과 차별되는 사진만의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사람의 눈은 뭔가를 볼 때 순간적으로 매우 빨리 초점을 맞추며 보기 때문에 아웃포커싱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사진에서 피사계 심도를 이해하는 것은 ‘착한 거짓말’의 시작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별 같은 동그란 기포

피사계 심도는 주제를 부각시키거나 원근감, 공간적인 깊이감에 관여합니다. 예를 들면 조리개 수치를 낮게 해 인물사진을 찍을 경우 배경이 뭉개져 인물이 돋보입니다. 여러 개의 피사체가 일렬로 겹쳐질 때, 맨 앞에 있는 사물에 초점을 맞추면 뒤로 갈수록 흐려져 원근감이 부각됩니다. 키가 다른 어떤 대상을 위에서 부감으로 찍을 경우 공간적인 깊이감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사진은 꽁꽁 언 겨울강에서 얼음을 찍은 것입니다. 공기와 물이 만나면 기포가 생깁니다. 얼음 속에 무수히 많은 기포가 있습니다. 얼음이 두껍게 얼면 기포의 위치가 서로 다릅니다. 이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 기포와 카메라와의 초점 거리가 제각기 다릅니다. 얼음 중간 깊이에 있는 기포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사진을 찍습니다. 조리개 수치를 각기 달리해 사진을 찍으면 공간적인 깊이감이 달라집니다. 조리개를 약간 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기포의 선명도가 서로 차이가 납니다. 원근감과 깊이감이 강조됩니다. 동그란 기포가 검고 먹먹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별처럼 보입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19호 (2018.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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