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가치는 발견의 미학 … 창조와 상상력 뒷받침 돼야
▎Cosmos in beer시리즈, 김수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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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에서 제왕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객이 있었습니다. 제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그림은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화객이 말했다.“개와 말이 가장 어렵습니다.”제왕이 다시 물었다.“무엇이 쉬운가?”“귀신과 도깨비가 가장 쉽습니다. 무릇 개와 말은 사람들이 아는 것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앞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이 그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귀신과 도깨비는 형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쉽습니다.”중국 고전 한비자(韓非子,기원전 약 280∼233년)에 나오는 말입니다. 극히 유물론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화론(畵論)입니다. 한비자는 중국의 대표적인 법가(法家)다운 예술론입니다. “법(法)은 드러내야 하고, 술(術)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는 말로 유명합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도 존재
▎Cosmos ni beer시리즈, 김수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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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비자의 화론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이미지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눈에 보이는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심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유심론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개와 말은 그리기가 쉽습니다.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조금만 훈련을 받으면 비슷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귀신과 도깨비의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심상을 그리려면 상상력이 뒷받침 돼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창작의 과정이 따릅니다. 예술은 상상력을 먹고삽니다.카메라는 한비자의 논리에 적합한 지극히 유물론적인 도구입니다. 사진으로 구현할 수 있는 형체는 반드시 현실에 존재해야 합니다. 사진은 빛의 흔적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진으로 찍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에서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걸까요? 사진을 가르쳤던 제자 김수교씨에게 얼마 전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Cosmos in Beer]라는 사진집과 함께 전시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우주’와 ‘맥주’가 어떻게 맥이 닿을까요. 사진집을 열어보는 순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무릎을 치는 반전이 있었습니다. 맥주 거품에서 우주를 본 것입니다. 그는 맥주를 아주 좋아하는 제자였습니다. 어느날 맥주를 마시다가 맥주의 거품과, 둥근 맥주잔에 서린 김에서 기포를 보고 우주를 상상한 것입니다. 작가 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우리의 일상은 보이는 것과 보려하는 것 그 사이의 긴장감 속에 살아 있다. 일상의 무료함을 술 한 잔으로 잊을 때가 있다. 특히, 맛있는 맥주 한 잔을 들이켤 때면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맥아, 홉, 효모, 물 등이 만나 만들어진 맥주. 그 안에 깃든 고유한 맛. 콸콸, 콸콸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잔에 담긴 맥주의 영롱한 빛깔과 폭신한 거품. 보고 있노라면 큰 행복감에 젖어 든다. 잔에 감도는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을 마신다. 그리고 잔을 멀찍이 두고 그저 바라본다. 잔을 기울여도 본다. 그 안에 오롯이 마음을 빼앗기고, 그렇게 여행은 시작된다. 새어 나오는 상상의 끝자락에 올라타 우주를 유영하는 자유를 맛볼 시간. 자, 이제 시작.’그리고 카카오톡 별명까지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Hitchhiker)’로 바꿨습니다. 그에게 맥주는 일상이자 우주가 됐습니다. 우주에는 천억개의 은하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는 천억개의 은하계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그것도 은하계의 변방에 있는 태양계,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지구별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우주의 이미지는 기껏해야 허블 망원경이 보내온 사진뿐입니다. 수박 껍질에 바늘을 꽂은 격이라 할까요. 김수교에게 우주는 한비자가 말한 ‘귀신과 도깨비’의 세계입니다. ‘미지(未知)이자 미지(未地)’의 영역입니다. 상상력으로 도달한 세계입니다. 시적 상상력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심상이기도 합니다. 현실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알 수 없는 우주를 유영하고 있습니다.
맥주잔에 서린 김에서 우주를 상상사진의 전통적인 가치는 발견의 미학입니다. 그 발견은 유전을 파거나 금을 캐는 과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창조적인 발견이어야 예술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맥주 한 잔 마시는 지극히 미미한 일상이 광대한 우주와 통한다는 것, 바로 사진을 찍는 즐거움이 아닐까요. 소소한 일상 속에 우주가 있듯이 사진의 소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좋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상의 축지법을 발휘하는 일입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