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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호의 직장인 밥값론(4) 월급이란 무엇인가] “상사에게 듣는 욕값도 월급에 들어있죠” 

 

장중호 경영컨설턴트
업무, 정신적 스트레스,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사장·직원 모두 월급에 대한 관점 재정립해야

나는 결코 인사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관련 공부를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직장인으로서 정말 부끄럽지 않은 밥값을 하고 싶고, 또 인정받고 싶다. 그리고 나를 따르는 내 직원들이 밥값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주고 싶다.


직장인들은 매월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꾸려간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길에 오르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다음날 새벽까지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며 하룻밤을 저당 잡히는 것도 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다.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는 주말에도 군말 없이 회사에 나와 별 의미도 없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만약 회사에서 월급을 주지 않는다면 회사와 직장인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직장인이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이나 행동은 월급을 받는 만큼의 값, 즉 밥값을 하기 위한 월급쟁이의 의무다. 나는 가끔 팀원들과 회식을 할 때 이런 말을 한다. “월급쟁이는 월급이 입금되면 회사에 나오고, 월급이 안 들어오면 안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어쩌면 서글프거나 냉정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말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쌓은 경험에서 나온 월급에 대한 철학이다. 이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 걸지 마라

첫째, 회사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라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언제든 나를 필요치 않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때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사를 위해 내 젊음을 바치고, 내 모든 걸 걸었는데 어찌 이럴 수 있는가?’라며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못난 탄식을 하지 않도록 자기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직원이 회사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만큼 회사에서도 직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거나 과도한 것을 원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월급을 준 만큼 일을 시켜야 하는데 그 이상을 원하고, 개인의 가정생활까지 희생하길 바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많은 회사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대기업에서 주말 출근을 강요하고, 늦은 밤까지 술자리에 부르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회사나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가늠하는 사장이나 임원도 있다. 대개 그런 경우 자신들의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어 집에 가기 싫고 회사가 더 편하니 남들도 그렇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월급쟁이는 회사생활을 할 때 자기 철학을 명확히 가져야 한다. 특히 월급에 대한 철학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월급을 주는 입장이든, 받는 입장이든 모순적인 생각과 행동을 해서는 곤란하다. 월급을 주는 입장이라고 해서 직원의 모든 개인적인 생활까지 통제하고 회사에 올인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나 혹은 자신의 모든 것을 회사에 바쳤으니 ‘내 인생 책임져’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월급 액수는 근무 연수나 직책에 따라 달라지고, 보직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지만 그 구성값은 정해져 있다. 나는 과거 재미있는 경험을 계기로 월급을 구성하는 값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 적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과장급 직원이 보고한 내용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가지 지시를 내렸는데, 내가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르게 본인 마음대로 판단하고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화가 난 나는 그동안 참아왔던 불만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한마디로 그 직원을 쥐 잡듯 박살냈다. 평소에 맘에 안 들었던 행동부터 그날 일의 결과까지 약 30분 동안 언성을 높여가며 일방적으로 혼을 냈다. 그리고는 얼굴이 벌개진 과장을 자리로 돌려보냈는데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몇 시간 지나 그에게 차 한잔 하자고 불러낸 후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으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며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가 밝게 웃으며 “상무님, 괜찮습니다. 제 월급에는 상무님께 혼나는 매값, 욕값이 이미 포함돼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의 생각과 표현이 재미있기도 해서 크게 웃었다. 상사에게 혼이 났지만 그것을 꽁하게 마음에 두고 있기보다 아예 월급에 그 몫까지 포함돼 있으니 전혀 힘들어 할 필요가 없다는 발상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 말 한마디로 평소 인상이 좋지 않았던 그가 꽤 괜찮은 친구로 보이게 됐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과연 월급에 어떤 요소가 포함돼 있고, 그것들의 값은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만약 내가 받는 월급이 100만원이라면 그중 실제 업무에 해당하는 몫은 얼마이고, 그 외 회사를 위해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각각 어느 정도 비율로 구성돼 있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월급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


▎한파가 다시 몰려온 1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시민들이 잔뜩 웅크린 채 출근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회사에서 나에게 지급하는 월급은 크게 세 가지 항목에 대한 비용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직접적으로 내가 쏟는 시간과 역량에 대해 지불하는 물리적 비용이다. 공식적으로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이므로 보통 일주일에 약 40시간가량의 시간을 쏟게 된다. 여기에 출퇴근을 위해 약 2시간, 그 외 가끔 저녁 회식이나 야근 등으로 퇴근 후 시간을 부가적으로 회사에 바친다. 하루 중 취침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활동 시간을 차지하는 셈이다. 회사는 또 개인의 능력과 역량을 돈을 주고 산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성과를 내기까지 십 수년 간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고, 전공 및 교양과목을 배운 후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 전문 지식을 강화했으며, 다양한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거쳐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지금 회사에서 업무 성과와 실적을 내는 것이다. 회사는 일주일 약 80시간 동안 쏟아 붓는 이러한 나의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을 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신적인 비용이다. 세상의 모든 월급쟁이는 회사 규모에 상관없이 업무와 조직문화 적응 등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업무 실적과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원하지 않는 상황과 부딪혀야 하며, 맞지 않는 사람과 상대해야 하는 등 각종 어려움이 따른다. 많은 직장인이 이직을 고민하는 갖가지 이유 중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과 불화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봉이나 업무 여건에 대한 불만보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가 사람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실제 업무에 쏟는 물리적인 80시간뿐 아니라 때로는 하루 종일, 심지어 잠자리에 누운 순간까지 회사와 관련된 복잡한 일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때로는 불면증에 걸리기도 하고, 스트레스성 위장병이나 심장병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가족에게는 귀한 아들이고 딸이며 가장인데, 회사에서는 전혀 일면식이나 관계가 없던 사람이라도 상사라는 이유만으로 앞에서 굽실거리며 고개를 숙여야 한다. 설령 상사가 옳지 않은 판단이나 행동을 해도 그 앞에서 바로 반기를 들거나 반항하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상 아직 용납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상사의 오해나 동료의 실책으로 호되게 혼나고 욕을 먹기도 한다. 이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직급을 떠나 월급쟁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며, 회사에 주는 월급에는 이에 대한 보상도 포함되는 것이다.

셋째는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은 경제학 용어다. 한정된 자원으로 경제활동을 할 때 지금 취한 선택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다른 선택의 가치를 표현하는 비용이다. 경제생활에서 경제활동은 다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희생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취한 경제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희생된 활동을 통해 얻는 가치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적 관점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고 효율이 떨어지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낼 뿐 아니라 그 외 시간에도 업무와 조직 등 회사에 대한 생각을 하며 보낸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인생이나 경력 개발을 위해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된다. 지금 내가 선택해서 일하고 있는 회사가 최상인지,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회사 생활에 불만이 있을수록 다른 선택에 대한 아쉬움은 커지고, 회사 업무에도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직장인이 이런 기회비용에 대한 손실과 후회를 줄이고자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고 이직을 준비 중일 것이다. 그런 직원이 많을수록 회사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업무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이직으로 이어질 경우 다시 직원을 뽑고 업무와 조직에 적응할 때까지 투입되는 비용도 엄청나다. 그러므로 회사는 직원들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까지 월급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은 현재 회사를 최적의 선택으로 인정하고 충성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다.

사장이든, 직원이든 회사와 월급에 대한 철학과 관점을 재정립하자. 자신의 월급 명세서에 찍혀 있는 단순한 숫자를 세 가지 비용 항목으로 정리해 보자.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마음 상태에 따라 각 비용 항목의 비율은 달라진다. 만약 월급이 100만원인데 자신이 회사에서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상사로부터 시달림을 받는다면 그 정신적 비용에 대해 회사에서는 30만원을 지불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내 부하직원처럼 담당 임원에게 30분 넘게 혼나고 깨졌다면 아마 그날은 특별히 그 비용으로 회사에서 10만원의 매값을 치른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 부분을 따져 보자.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월급도 나보다 많고, 업무 환경이나 미래 비전도 좋아 보인다. 그 친구가 부럽고,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이 후회도 되지만, 그렇다고 즉시 사표를 내고 새 출발할 용기는 없다. 이런 고민을 갖고 있다면 회사에서는 그 기회비용에 대해 30만원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은 40만원이 내가 물리적으로 일한 시간과 업무, 성과에 대한 비용이다. ‘고작 40만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모두들 주중 공식적인 40시간에 부가적인 40시간을 더해 약 80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회사에 바치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 시간에 얼마나 회사에 집중하고 올인하고 있는가? 회사에 앉아 있는 하루 10시간 중 온전히 업무에 쏟아 붓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식사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스마트폰을 쳐다보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직장상사나 동료에 대한 불만과 짜증, 불화로 미루거나 차질을 빚고 있는 업무가 얼마나 되는가? 더 잘 나가는 동료들 때문에 속상해하고, 다른 생각을 하느라 놓친 아이디어나 기획안이 얼마나 되는가? 과연 나는 온전히 40만원만큼의 가치라도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고맙게도 회사는 다른 정신적 비용과 기회비용을 포함한 100만원의 월급을 나에게 입금해준다.

일할 맛나는 조직문화 만들어야

밥값을 하는 직장인은 월급에 대해 명확한 관점이 있다. 100만원만큼 제대로 밥값을 하려면 정신적인 비용과 기회비용을 줄여야 한다. 온전히 물리적인 시간과 업무 성과로만 월급을 받는 직원이 많을수록 그 회사는 강해지고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이것은 직원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장과 경영진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직원들이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민에 빠지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일할 맛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장중호 - 인공지능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경영컨설팅 업계에 뛰어들어 많은 기업의 사업전략 및 마케팅 전략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후 이마트와 GS홈쇼핑의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일하면서 유통 업계의 마케팅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저서로 [마케터가 알아야할 21가지 이야기] [나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다]가 있다.

1420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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