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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바둑경영] 신화를 십분 활용하라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바둑 기원에 다양한 ‘설’ 존재 ... 외교·비즈니스 등에 영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바둑의 오랜 격언처럼 상대의 손 따라 두지 않는 외교 정책을 펴고 있다.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심오한 게임인 바둑은 누가 만들었을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한다. 하지만 먼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라 언제 누가 바둑을 고안해 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외교와 비즈니스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순 창제설: 바둑의 기원(起源)에 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바둑은 중국이나 티베트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한다. 혹자는 한국에서 나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몇 가지 설 중에서 중국이 발상지라는 주장이 정설처럼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바둑은 한국·중국·일본의 삼국에서 성행했고, 세계 75개국에 보급이 된 현대에도 이 세 나라가 바둑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여러 가지 자료로 볼 때 바둑은 중국에서 나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보급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국이 발상지라고 믿게 만드는 자료 중에 ‘요순(堯舜) 창제설’이 있다. 삼황오제의 한 사람인 요제가 아들 단주를 위해 바둑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중국의 [박물지]나 [설문] 등 대여섯 가지 고문헌에는 현군인 요임금이 바둑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어떤 문헌에는 요제의 뒤를 이은 순제가 아들 상균을 위해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신화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상고시대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요순은 사실 실존인물이었는지도 약간 의문이다. 실존인물이었다고 해도 당시 바둑과 같은 정교한 게임을 만들어낼 만큼 지적인 면으로나 문화적인 면에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전쟁의 게임인 바둑을 만들어서 자식에게 가르쳤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어떤 이는 단주와 같은 어리석은 인물이 바둑을 잘 두었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고 한다.


[1도] 바둑은 영토싸움이다. 이 포석은 흑이 오른쪽에 백은 위쪽에 커다란 진(陣)을 펴고 있다. 흑과 백이 서로 영토를 많이 차지하기 위한 지략을 구사한다.

[2도] 백1과 같이 흑의 영토를 깨뜨리기 위해 침입하면 공격하고 달아나는 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에서 자칫하면 대마가 포위되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요순과 같은 어진 황제가 과연 이런 살벌한 게임을 개발했을까.

[3도] 바둑을 둘 때 영토경쟁, 즉 집짓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백1과 같이 두어 살자고 할 때 상대방은 잡으려고 하는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진다. 이 모양은 백5까지 패가 된다. 패는 요술쟁이라는 말을 할 만큼 바둑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다. 원래 바둑을 만든 사람이 이런 희한한 규칙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종횡가 제작설: 또 다른 바둑 기원설로는 춘추전국시대에 종횡가(縱橫家)들이 만들었을 것이라는 설이 있다. 종횡가란 제후들 사이를 오가며 여러 국가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는 합종책과 연횡책을 논한 제자백가의 하나다. 이들은 독특한 변설로 책략을 도모하며 열국의 연합체를 조직시켜 그 힘의 균형을 이용해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사상가들이었다. 소진(蘇秦)과 장의(張儀)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책모에 뛰어난 종횡가들이 바둑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바둑은 영토전쟁의 게임이니 전국시대의 전략가들과 코드가 맞는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바둑을 ‘전쟁의 기예’로 보아 병법과 같은 것으로 간주했다. 고대의 바둑이론서인 [기경(棋經)13편]은 손자병법을 모방해 13편으로 구성했다. 하지만 종횡가 바둑제작설을 부인하는 내용이 있다. 전국시대에 앞선 춘추시대의 인물인 공자가 바둑에 관한 얘기를 했다. 또한 [춘추좌씨전]에서도 “임금 갈아 앉히기를 바둑 두듯 한다”는 표현이 있다. 이런 내용을 후세 사람이 썼을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래도 바둑은 전국시대보다는 그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조위기설의 영향: 바둑을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를 안다면 좋으련만 머나먼 과거의 일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바둑의 기원만이 아니다. 우리 인류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로 인해 인류의 탄생에 관한 창조론과 진화론이 양립하고 있다. 바둑을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요순창조 신화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는 경향이 있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바둑을 거론할 때 요순을 들먹이곤 했다. 예를 들어 중국 원나라 때 바둑에 관한 글을 썼던 우집이나 구양현 같은 학자들은 바둑을 옹호하는 논리 중 하나로 요순을 인용했다. 황제가 바둑을 임금이 해도 되느냐고 묻자 우집은 좋은 것이라고 답을 하며 요순 같은 성군이 바둑을 만들었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를 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때 [혁기론]이라는 바둑에 관한 글을 썼던 이덕무가 요순을 언급했다. 이덕무는 소년 시절 바둑모임에 갔다가 바둑을 못 둔다고 가축 취급을 당한 경험담을 적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요순이 바둑을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 바둑을 변호하고 있다. 이 외에도 요순을 인용한 경우는 상당히 많다. 오늘날에도 서양의 바둑연구가들은 요순 창조설을 필수적으로 얘기하고 있다. 옛날 누군가가 적어놓은 신화가 팩트인 것처럼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 신화는 바둑을 중국의 문화로 믿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몇 년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후진타오 주석에게 바둑판을 선물했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의 대통령을 만날 때 프로기사 창하오 9단을 대동하며 바둑 얘기를 했다. 이런 바둑외교의 밑바탕에는 중국이 바둑의 발상지라는 관념이 작용하고 있다.

요순창조 신화는 바둑산업의 흥행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바둑 분야에서는 레저스포츠와 함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바둑교육이 성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요순이 어리석은 아들을 깨우치기 위해 바둑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바둑을 배우면 두뇌가 개발되고 인성함양도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중국에서 ‘단주위기’라는 바둑교육회사를 운영하는 기업가도 있다. 요제의 아들 단주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은 것이다. 어리석었던 단주가 바둑으로 똑똑해졌다는 신화를 이용하려는 마케팅 전략일 것이다. 이 회사의 대표인 류진씨는 명지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 정수현 - 1973년 프로기사에 입단한 후 1997년 프로 9단에 올랐다. 제 1기 프로신왕전에서 우승했다. 한국프로기사회장, KBS 일요바둑·바둑왕전의 해설자를 역임했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바둑 읽는 CEO』 『반상의 파노라마』 『인생과 바둑』 등 3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420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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