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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민 기자의 센터링경제학(17) 통계지표의 함정] ‘볼 점유율→승리, GDP→질적 성장’ 담보 못해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축구나 경제나 지표 맹신하지 말아야 … 정직한 숫자에도 속을 수 있어

▎울리 슈틸리케 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요즘 축구 중계나 기사를 보면 숫자가 많이 나온다. 더 정확히 말하면 통계수치가 자주 보인다. 볼 점유율, 패스 횟수, 패스 성공률, 달린 거리, 스프린트 횟수 등이다. 이런 지표들은 팀과 선수의 경기 내용을 단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내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독자나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데 사용된다. 축구시장의 확장과 함께 기술의 발전으로 수집할 수 있는 자료의 종류가 늘었고,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도 발전한 덕이다. 통계나 지표를 활용하는 건 미디어뿐만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구단들이 팀의 구성이나 훈련, 전술 수립 과정에 통계와 지표를 적극 사용했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미 유럽에서는 데이터를 통한 전력 분석이 자리를 잡았고, 국내에서도 서서히 전력분석관의 몸값이 높아지는 추세다.

분석도구 넘어 달성 목표로 쓰이는 지표


▎2000년대 중반 점유율 축구로 유럽 축구를 제패한 FC바르셀로나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리오넬 메시.
전술적인 측면에서 데이터와 지표가 갖는 가장 큰 기능은 팀의 특징과 장·단점에 대한 분석이다. 가령 어떤 팀의 ‘30m 이상의 롱패스’ 횟수가 비교적 많다고 치자. 이를 통해 이 팀이 긴 패스 위주의 역습 축구, 또는 흔히 말하는 ‘뻥축구’를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나아가 특정 데이터 자체를 플레이의 지향점으로 삼기도 한다. ‘지금 우리 상황이 이런데, 앞으로는 긴 패스 횟수를 줄이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각 감독이 생각하는 승리 방정식에 따라, 또 상대 팀의 전술에 따라 방향은 다르지만, 어쨌든 승리라는 큰 목표 아래 특정 지표를 작은 목표로 삼는 것이다.

경제는 특히 이런 지표의 중요성과 역할 비중이 상당히 큰 영역이다. 실제로 쓰이는 곳도 많다. 가령 나라 경제를 이해하는 데는 물가·금리·고용률·무역수지 등의 지표가 활용된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는 매출액·주가·시장점유율 같은 지표가 있다. 대표적인 것만 이 정도고,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숫자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활용법은 축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 상태를 해석하고, 때로는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데 쓰인다.

예컨대 한 기업이 위기에 처해 있다. 돈을 버는 게 기업의 목적인데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한다.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지표가 활용된다. 가령 매출액총이익률이나 원가가산율을 통해 물건을 만든 비용, 즉 원가 수준을 다른 회사와 비교해볼 수 있다. 영업이익률이나 순이익률 등은 물건을 팔고 얼마나 남기는지 같은 수익성을 보여준다. 자기자본수익률이나 이자보상배율은 회사의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또는 안정적으로 굴러가는지를 알려준다.

이런 지표를 보고 문제를 발견했다면, 경영자는 다시 이 지표로 목표를 세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자,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을 보니 우리는 많이 팔고도 남기는 돈이 적은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앞으로는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데 주력합시다.” 롱패스 횟수를 줄이자는 지시를 받은 선수들이 의식적으로 짧은 패스를 하게 되는 것처럼 이 회사 직원들은 일을 하면서 영업이익률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회사가 원하던 수익성 회복을 추구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표를 통한 해석과 그것을 목표로 삼는 게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다시 축구로 돌아가자. 수많은 축구 관련 지표 가운데 최근 팀 전술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볼 점유율이다. 한 팀이 얼마나 공을 소유한 채 경기를 하고 있느냐를 가리킨다. 예컨대 A팀과 B팀의 점유율이 40% 대 60%였다고 하면 B팀이 전체 경기 시간 중 60% 시간 동안 공을 소유하고 경기를 끌고 간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점유율이 높으면 그 팀이 경기를 지배한 것으로 해석한다. 공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서 흐름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티키타카 붐으로 ‘볼 점유율’ 중요성 대두

볼 점유율의 중요성은 2000년대 중반부터 특히 강조됐다. ‘티키타카’로 대표되는 스페인 국가대표팀과, FC바르셀로나의 영향이 컸다. 이들의 특징은 우세 속에서 저절로 볼 점유율이 높아진 게 아니라 연속되는 짧은 패스와 빠른 압박을 통해 의도적으로 볼 점유율을 높였다는 것이다. ‘득점을 올리기 위해서는 볼을 소유해야 한다. 볼 소유가 없으면 득점도 없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볼을 소유하고 있으면 실점의 가능성은 0에 가깝고, 상대에게 소유를 주면 실점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라는 축구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당시 스페인 대표팀은 월드컵과 유로를 연이어 제패했고, FC바르셀로나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유럽 프로축구 무대에서 절대강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볼 점유는 승리의 열쇠로 여겨졌고, 점유율 축구는 어딜 가나 연구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유럽의 프로축구뿐 아니라 국내의 ‘조기축구’에서도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빨리 앞으로 차”에서 “짧게 패스해”로 바뀔 정도였다. 볼 점유율은 경기와 팀마다 관심사가 됐고 저마다 볼 점유율을 어떻게 하면 끌어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면서 점유율의 핵심인 패스 횟수와 성공률도 덩달아 중요한 지표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볼 점유율과 득점을 올리고 승리하는 것의 관계는 그리 밀접하지는 않다. 아무리 오랜 시간 볼을 소유해도 상대의 수비벽을 뚫고 슛을 쏘지 않는 이상 득점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볼 점유율이 낮아도 짧은 시간에 적진으로 가져가 득점을 올릴 수도 있다. 볼 소유는 경기 흐름의 우열을 나눌 수 있는 지표이긴 하지만 최종의 결과를 가르는 건 득점이다. 볼 점유율로는 압도적으로 뒤진 팀이 경기를 이기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2016-2017 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우승한 레스터시티는 20개 팀 가운데 최하위권의 한 시즌 평균 볼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때로는 볼 점유율이라는 지표에 집중하는 전술이 독이 되기도 한다. 일단 실제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원활한 볼 점유를 위해선 선수 개인 역량이 뛰어나야 하고 조직적이 준비도 해야 한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 가랑이만 찢어지는 결과를 낳기 쉽다. 또 점유율 축구는 불안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볼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패스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계속 패스를 하면서 전진하려면 공 주위 선수들이 패스를 받기 위해 계속 움직여야 하고, 이는 많은 선수가 정해진 위치를 벗어나 함께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점유가 막다른 길에 다다라 공을 뺏기는 순간이면, 자리를 갖추지 못하고 뒷 공간을 크게 열어둔 상태에서 역습을 받는 약점을 노출한다.

때로는 볼 점유율에만 목적을 두다 보니 선수들이 발은 멈춘 채 후방에서 안정적이고 단조로운 패스만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통계상으로 패스 횟수와 패스 성공률, 볼 점유율이 확실히 오른다. 그러나 이는 무의미한 숫자일 뿐이다. 상대에게 물러나 수비 진형을 갖출 시간만 주고 득점 기회는 창출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점을 저지한다는 것 말고는 쓸 데가 없다. 더 많은 기회를 만든다는 볼 점유의 본래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고, 오히려 그 목적에 불리한 비생산적 상황을 만드는 셈이다.

지표에 집중한 전술이 독 되기도

이런 팀의 경기는 결과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매력적이지 못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졸음을 부르는 무의미한 점유율은 지루한 영화와 같다”고 표현했다. 멀리서 볼 것 없이 얼마 전까지 한국 국가대표팀의 축구가 그랬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끈 국가대표팀은 점유율을 중시했고, 실제로 통계상으로 높은 점유율을 확보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내내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였다. 세계적인 명장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그의 저서에서 “볼 점유율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라며 “중요한 것은 볼 점유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많이 알고, 또 믿고 있는 경제지표도 비슷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경제성장의 척도로 삼는 국내총생산(GDP)이 대표적이다. GDP는 한 나라 안에서 가계·기업·정부가 생산활동에 참여해 창출한 부가가치 또는 최종 생산물을 시장가격으로 모두 더한 수치다. 즉 ‘거래를 통해 오고 간 돈’의 총합에 가깝다. 생산이 얼마나 이뤄졌는지를 따져 보기에는 아주 좋은 통계다. 표준화된 산출방법이 잘 갖춰져 있어 이용하기에도 편하다. 통상 GDP 성장률을 ‘경제성장률’로 혼용하기도 한다. 정책적으로도 GDP 성장률은 핵심 지표다. 경제상황을 분석하는 도구뿐 아니라 일정 수준을 정해 달성해야 할 기준점으로도 삼는다.

그러나 GDP에도 허점이 있다. GDP는 성장 총량만 보여 줄 뿐 그 질은 말해주지 않는다. 좋은 성장이든 나쁜 성장이든 간에 그 수치가 증가하는 허점도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국민경제의 자산과 부채에 대한 정보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외부적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도 알려주지 못한다. 공유경제 등 신산업 영역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빠진다. 70년 전 미국 의회의 요청에 따라 GDP를 창안한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스스로 “GDP로 산출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의 한 대목을 보자. 중국의 두 억만장자가 공원을 산책하다 누런 개똥을 봤다. 한 사람이 경쟁자를 놀려줄 요량으로 개똥을 먹으면 1억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설마 했는데 그는 개똥을 덥석 먹고 돈을 챙겼다. 이번엔 개똥 먹은 부자가 같은 제의를 했다. 본전 생각이 간절한 부자는 개똥을 후다닥 먹어 치웠다. 돈도 돌려받았다. 이를 들은 경제학자는 이렇게 답변한다. “두 분은 애국자입니다. GDP가 2억 달러나 늘어났으니까요.” 축구에서 후방에서만 도는 비생산적인 패스 횟수나 점유율처럼, GDP에도 무의미한 숫자가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성장 총량만 보여주는 GDP 성장률의 한계

GDP뿐 아니라 많은 경제지표의 이면에는 이런 맹점이 있다. 예컨대 기업의 관점에서 보면 회사의 성장을 판단할 때 주요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점유율이 매출과 직결되는 건 아니다. 경쟁 회사가 적게 팔면서 매출을 늘리는 프리미엄 전략이라면 점유율은 무의미하다. 매출액이 절대적이지도 않다. 번 돈과 실제 남는 돈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영업이익률만 볼 수도 없다. 수익성이 회사의 미래 투자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표는 유용한 도구다. 다만, 경제지표가 가진 허점을 간과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상황은 별로 좋아진 게 없는데 지표만 보고 좋아졌다고 착각하는 일이 생긴다. 경기지표와 체감경기가 따로 노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특히 지표를 목표로 삼아 그것에만 매몰되다 보면 이런 착시를 간과하기 쉬워진다. 엉뚱한 해결책을 만들 가능성도 커진다. 골을 넣기 위해 필요한 건 볼 점유율이 아닌데도 더 많은 패스 횟수에만 집착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표를 목표로 삼는 것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한 숫자에도 속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420호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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