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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열국지 재발견’(1) 포숙아] 주군 달라 대립한 관중을 재상으로 추대 

 

김준태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부와 권력 포기하고 제환공 보좌 … 자신의 역량 객관적으로 평가

풍몽룡이 정리한 [열국지(列國志)]는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그만큼 방대한 시기에 걸쳐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특히 ‘동양의 그리스 신화’라 불릴 만큼 이야기의 보고이며 철학과 사유의 원형이 담겨있다. 작품의 배경은 불확실성이 극도에 달했던 시기다. 문명이 전환하고,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가들은 부국과 혁신의 길을 모색했고, 사상가들은 인간과 공동체의 좀 더 나은 삶에 대해 고심했다. 시대와 환경은 다르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 다시 [열국지]를 펼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 : 김회룡
친구 간의 변치 않는 믿음과 우정을 가리키는 고사성어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일찍이 사마천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의 열전을 지으며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아를 더 찬미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실제로 주목과 찬사를 받은 것은 관중이지 포숙아가 아니다. [관자(管子)]라는 책과 함께 제자백가의 반열에 오르고, 공자로부터 “관중이 없었다면 우리는 머리를 풀고 옷깃을 왼편으로 하는 오랑캐가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관갈(管葛, 관중과 제갈량)’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명재상의 대명사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관중이다. 관포지교에 얽힌 일화를 제외한다면 포숙아는 철저히 잊혀져왔다.

명재상의 대명사가 관중이 된 사연

그러나 포숙아는 단순히 관중의 조연으로 치부할 인물이 아니다. 비단 관중으로부터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아”라는 찬탄을 들어서가 아니다. 그의 안목 자체가 관중을 능가하는 면이 있다. 이는 주군을 선택하고 왕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제나라 임금 희공(僖公)에게는 제아·규·소백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이 중 적장자 제아가 보위를 이어 양공(襄公)이 되었는데, 자식이 없었던 그는 이복동생인 규와 소백을 후계자로 삼고자 사부를 정해 이들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 때 관중이 형인 규의 스승이 되고 포숙아는 동생인 소백의 스승이 된다. 그런데 제양공은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간 누이동생 문강과 남녀관계를 맺는 등 음탕해 문제가 많은 군주였다. 이를 본 포숙아는 소백에게 “제가 듣건대, 괴상하고 음탕한 자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뒤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공자(公子)와 함께 다른 나라로 가서 후일을 도모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소백과 함께 인근에 있는 거나라로 떠난다. 거나라가 소백의 외가인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나라와 가까워서 언제고 즉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양공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포숙아의 예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현됐다. 제양공이 사촌 공손무지에게 시해당한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관중도 주군인 규를 모시고 규의 외가인 노나라로 피신했는데, 제나라와의 거리 차이가 소백과 규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신하들의 반발로 공손무지가 죽음을 맞자, 비어있는 보위를 놓고 소백이 좀 더 빨리 도착한 것이다. 포숙아가 관중과 무력으로 맞서고, 관중이 소백의 행보를 저지하고자 그에게 화살을 쏘아 날리는 일들이 이 와중에 벌어졌다.

제나라에 도착한 포숙아는 규와 소백 사이에서 주저하는 신하들에게 “소백이 먼저 도착하신 것이 곧 천명입니다. 더욱이 규 공자가 임금이 된다면 노나라가 이를 기화로 우리에게 사사건건 간섭할 것이니, 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설득한다. 형인 규가 명분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국익이라는 실리를 내세워 소백의 옹립을 정당화한 것이다. 이 소백이 바로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자 제환공(齊桓公)이다.

포숙아는 이어서 규를 제거하고자 나섰다. 규를 제나라의 왕으로 만들겠다며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노나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노나라에 반역자인 규를 죽이라고 요구했다. 노나라 임금 장공(莊公)은 제나라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결국 규를 처형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포숙아는 습붕을 사신으로 보내며 어떻게든 관중을 살려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관중의 능력을 눈여겨본 노나라가 그를 압송하기를 꺼려했지만 “관중은 우리 임금을 죽이려 한 원수이므로 임금께서 그 원한이 골수에 사무쳐 친히 관중의 목을 참하고 싶어 하십니다”라는 이유를 내세우게 했다.

그리하여 관중이 제나라로 압송되자 포숙아는 국경까지 나아가 그를 마중했다. 포숙아는 관중의 결박을 풀어주며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한다. 관중이 주군 규와의 의리를 저버리게 되는 것을 꺼려하자 포숙아는 “큰 일을 하는 자는 조그만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법이며, 큰 공을 세우는 자는 조그만 절개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 않는 법이네. 하물며 자네는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인재가 아닌가. 필부의 절개 때문에 대업을 저버리지 마시게”라고 설득했다. “나에게 활을 쏜 것을 생각하면 그의 살을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다”라며 관중의 등용을 반대하는 제환공에게도 “관중은 천하의 기이한 인재이니, 그를 등용하면 주군을 위해 천하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적극 추천했다.

나아가 포숙아는 자신을 재상으로 임명하려는 제환공에게 “신은 매사에 삼가고 조심할 뿐이니 그저 예에 따라 법을 지키는 수준입니다. 이는 신하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대임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합니다”라고 사양했다. “주공이 한 나라의 주인에 머물려면 소신으로 충분하지만 천하의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관중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있다. 자신이 안정과 유지를 담당할 수는 있겠으나, 천하를 경륜하며 부국강병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포숙아는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했다. “신이 관중만 못한 것이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너그럽고 부드럽게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둘째, 국가를 다스리되 그 근본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셋째, 충성과 믿음으로써 백성을 단결하게 하는 것이 그만 못하며, 넷째, 예의를 확립해 세상에 펼치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군사들을 격려하고 지휘해 용감하게 싸우고 물러서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포숙아의 추천으로 관중 등용했을 가능성

제환공이 관중을 불러오라고 하자 포숙아는 말을 덧붙였다. “범상치 않은 사람은 범상치 않은 예로 대우해야 하는 법입니다. 인재를 가볍게 대하면 임금 또한 가벼워지는 것이니, 부형(父兄)과 같은 예로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주공(主公)께서는 원수일지라도 어진 사람이면 존경하고, 높은 선비면 예의로 대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질 것이니, 천하의 뜻 있는 사람은 누구나 우리 제나라에서 등용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흔히 목숨을 노린 원한을 접어두고 관중을 중용한 제환공의 용인술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쉽지 않은, 훌륭한 자세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제환공이 그런 결정을 한 일차적인 이유는 관중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포숙아의 추천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등공신이며 믿고 의지하는 포숙아가 강력히 추천을 하니 ‘한번 시험이나 해보자’하는 심정으로 등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임금에게는 국가가 우선이라는 의무 기제가 있다. 충성이 담보되고 왕권에 방해가 되지 않는 이상, 사적인 감정보다는 자신의 통치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따진다. 당 태종이 정적인 위징을, 세종대왕이 역시 정적인 황희를 재상으로 삼았듯이 이와 같은 사례가 종종 발견되는 것은 그래서이다.

그러나 포숙아는 다르다. 제환공은 관중을 중용한다고 해서 포기해야 할 것이 없지만, 포숙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권력을 포기해야 했다. 포숙아라고 임금을 도와 나라를 훌륭히 다스리고 백성을 풍요롭게 하며, 천하를 경영하고 싶은 포부가 없었을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 역시 능력과 안목이 부족한 인물이 아니었다. 훗날 관중이 죽은 후에도 “포숙아를 재상으로 기용하고 관중의 정치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제후가 제환공의 명령에 복종했다”는 서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때 관중이 아닌 포숙아가 재상이 되었더라도 적어도 평균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물러나고 대신 관중을 추대하는 용단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포숙아의 결단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본인 스스로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중은 죽기 전, 후임자를 추천해달라는 환공의 부탁에 “포숙아는 군자여서 정치를 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는 선악을 대하는 태도가 지나치게 분명합니다. 물론 선을 좋아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문제는 작은 악이라도 못 견뎌 하는 것이니, 어떤 사람이 한 번 나쁜 짓을 하면 포숙아는 평생 그 사람을 미워합니다. 이러니 그 밑에서 누가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말은 들은 포숙아는 “관중은 나라에 충성할 뿐, 내가 친구라 해서 나랏일을 잘못 판단하지 않는다”라며 공감했다고 한다. 다른 한 이유는 포숙아가 관중을 추천할 때의 말 속에 있다. 자신이 재상이 되면 그저 임금의 핵심 측근이 재상이 되는 것뿐이다. 하지만 임금의 원수인 관중이 재상이 되면 ‘제나라 임금은 어질고 능력만 있으면 자신의 원수라 해도 귀하게 쓴다’는 평가를 얻게 된다. 그리 되면 자연히 온 세상의 인재들이 너도 나도 몰려든다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대신 최적임자를 추천했을 뿐 아니라, 공동체의 장기적인 인재경영까지 고려한 판단이었다.

공동체의 장기적인 인재경영 고려해 결단

이후 포숙아는 관중을 도와가며 묵묵히 조정을 지킨다. 관중에 비해 매우 미미하게 등장할 뿐이지만, 제환공의 월권을 지적하고 관중에게도 문제점을 지적하는 서술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간언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중이 죽고, 관중이 지명한 후계자인 습붕이 죽은 후 제환공이 나랏일을 부탁하자 “신이 지나치게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주공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라며 사양했는데, 제환공의 간곡한 권유를 이기지 못해 재상에 올랐다. 그런데 포숙아는 재상이 되는 조건으로 역아·초·개방 세 사람을 내쫓아 달라고 청했다. 이 세 사람은 관중이 간신으로 지목하며 멀리하라고 유언했던 인물들이다. 관중은 그동안은 자신이 둑이 되어 이들이 흘러넘치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둑이 무너지고 나면 장차 나라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여 포숙아 또한 이들의 축출을 건의한 것이다. 그러나 포숙아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제환공이 세 사람을 잠시 궁 밖으로 내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였기 때문이다. 포숙아가 “관중의 유언을 잊으셨습니까?”라고 항의했지만, 제환공은 “관중의 유언이 과도했다고 생각한다”며 듣질 않았다. 이 사건으로 포숙아는 울분을 참지 못해 홧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열국지]는 “포숙아가 죽자 세 사람의 눈앞에 걸릴 것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중에 이어 제나라를 지탱했던 포숙아라는 마지막 둑이 사라짐에 따라, 제나라는 쇠약의 길을 걷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패자 제환공도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다음 회에서는 제환공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다.

※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1422호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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