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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기자의 ‘라이징 스타트업’(20) 루트에너지] 시민이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소 짓도록 도와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
땅 소유자-건설사-투자자 연결 플랫폼 만들어 …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 맞물려 주목

▎지난 1월 22일 서울 성수동의 루트에너지 사무실에서 만난 윤태환 대표가 재생에너지 시장의 미래 성장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김현동 기자
지난해 12월 2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올 내용을 발표했다. 바로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이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총발전량의 2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태양광 11.4%(36.5GW), 풍력 5.6%(17.7GW), 에너지저장장치(ESS) 및 기타 재생에너지가 3%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생에너지 시장 규모는 급격하게 커진다. 태양광 발전사업 시장 규모는 56조원, 풍력 발전사업 규모는 8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눈에 띄는 또 다른 내용은 시민이 손쉽게 태양광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형태로 참여하거나 시민이 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등의 방식에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재생에너지 사업은 정부나 지자체가 계획을 세우고 시민은 이를 따르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민 참여 활성화 방안은 에너지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시도다.

정부의 새 에너지 정책 발표와 함께 주목받는 재생에너지 관련 스타트업이 있다. 덴마크 공과대학 풍력에너지공학 석사 출신의 윤태환(37) 대표가 2013년 12월 창업한 루트에너지다. 시민이 직접 투자해 태양광·풍력 발전소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윤 대표는 “세계는 지금 재생에너지 시설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는 데 한국은 많이 뒤쳐졌다”면서 “유엔환경계획 자료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재생에너지 확대로 265조원이 신규 투자됐는데,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2% 밖에 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재생에너지 시장 성공 노하우 배우러 덴마크행

한국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던 그가 어떻게 덴마크 공과대학으로 유학을 갔는지 궁금했다. 심지어 수업을 받을 당시 유일한 한국인이었단다. 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풍력에너지공학 전공이 있는 대학”이라며 웃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그가 택한 것은 에코프론티어라는 에너지 컨설팅 전문 기업이다. “2번 떨어지고 3번째 만에 취업했다”고 말할 정도로 에너지 관련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물리학을 전공한 이유를 묻자 “물리학은 운동 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만드는 과학적 원리를 배우는 학문”이라며 “에너지 쪽에 관심이 많아서 학부 졸업 후 에너지 관련 분야 기업 취업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 입사한 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 있었다. 2008년 당시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녹색성장기구)라는 국제기구(GGGI)를 설립했는데, 이때 그가 컨설턴트로 참여하게 됐다. 그는 “당시 GGGI 설립에 필요한 펀드에 덴마크가 500만 달러 정도 펀딩했다”면서 “그때 처음으로 덴마크를 알게 됐다”며 웃었다.

덴마크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덴마크로 떠나고 싶었다. 덴마크는 독일과 함께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재생에너지 시장이 확대된 대표적인 나라다. 덴마크의 발전 사업 중 50~70% 정도는 시민이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규모만 해도 100조원 가까이 된다. 한국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재생에너지 시장이 열린 셈이다. 윤 대표는 “덴마크나 독일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수익이 나기 때문”이라며 “이에 반해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해서 성공한 모델이 없으니, 대기업 중심으로 모듈 생산 같은 제조업에만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 대목이 그가 덴마크 공과대학을 택한 이유다. 그가 대학원에 다닐 때 학교에 아시아인은 그를 포함 단 두 명이었다.

윤 대표는 덴마크 공과대학의 유엔 산하 기관인 유엔환경계획(UNEP)이 운영하는 에너지 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연구소 덕분에 재생에너지 시장에 대한 정보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는 덴마크에서 재생에너지 전문가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한국 소식에 발목이 잡혔다. 그는 “2013년 밀양 송전탑 문제가 터졌다”면서 “한국이 재생에너지 시장에서 낙후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덴마크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고 싶었다”고 귀국 이유를 밝혔다. 2013년 10월 한국에 돌아온 그는 2개월 후 바로 루트에너지를 창업했다.

그러나 그의 우려대로 재생에너지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무척 적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부터 높여야 했다. 에너지 빈곤층에 태양광을 지어주는 프로젝트인 ‘에너지 히어로’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이후에는 연립주택 위에 태양광을 지어주는 퍼즐이라는 이름의 비즈니스도 펼쳤다. 지난해 7월 재생에너지 플랫폼을 선보였다. 덴마크처럼 시민이 직접 재생에너지 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윤 대표는 “재생에너지 시설을 지을 수 있는 땅 소유자, 건설사와 시공사, 그리고 시민 투자자를 맺어주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했다. 루트에너지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부지와 건설사를 구하고, 발전소는 시민들의 직접 투자해 건설하는 방식이다. 펀딩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후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를 팔고 남은 이익금 일부를 통해 수익을 올리게 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은 공공성까지 얻게 된다. 그동안 힘들었던 지자체나 정부의 인허가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는 재생에너지 시설을 지을 땅이 부족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공공부지가 전국 토지의 30%를 차지하는데, 버려지고 방치돼 있다. 또한 민간인이 소유한 땅도 주인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목동·포천시 이어 올해 부산에 태양광 발전소 건설 펀딩

그는 경기도 지역 곳곳에 있는 창고 옥상을 예로 들었다. 이런 옥상을 재생에너지 시설을 만드는 데 제공하고, 건물주는 대신 임대료를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공공부지는 일반 기업이 사용하는 데는 특혜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그렇지만 시민들이 참여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사업은 특혜 시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그동안 일반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통해 나온 이익을 모두 독차지했다”면서 “이에 반해 루트에너지는 시민들이 이익을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발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 7월 서울 목동에 지었던 태양광 발전소 투자자 모집이 55분 만에 마감됐다. 목표액은 1억 8000만원이었다. 2호 시설은 경기도 포천시에 세웠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올해 초에는 부산시와 손을 잡고 부산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 건설 펀딩 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부산 시민이 투자를 하면 투자금의 7.2% 수익을 매년 얻게 될 것”이라며 “외부인은 지역민보다 0.5% 정도 낮은 수익을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1422호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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