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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확 기술을 아시나요?] 사람의 발걸음도 방송 전파도 전기로 활용 

 

이연경 인턴기자 lee.yeongyeong@joongang.co.kr
소형 웨어러블 기기 수요 늘면서 관심 커져 … 학계·스타트업 중심으로 제품 잇따라 내놔

▎스타트업 ‘이노마드’는 청계천 바닥에 소형 수력 발전기가 든 ‘우노’를 설치하고 무료 스마트폰 충전소를 열었다.
2007년 미 MIT 건축대학원 연구진이 새로운 발전소 설립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발전소 이름은 ‘군중 발전소(Crowd Farm)’. 말 그대로 사람, 정확히는 사람이 바닥을 밟을 때 바닥재에 가해지는 압력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핵심 부품은 사람이 내리누르는 압력을 흡수할 푹신한 바닥재와 압전소자다. 압전소자는 표면에 압력을 가하면 전압이 발생하는 압전효과를 작동 원리로 한다. 걸을 때마다 가해지는 체중만큼의 압력을 압전소자를 통해 전기로 바꾸는 것이 이 발전소의 원리다. 연구진에 따르면 평균 체중의 사람 한 명이 한 번 걸을 때마다 소비전력이 60와트인 전구를 1초 동안 켤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긴다. 당시 연구진은 경기장·콘서트장·지하철역 등에 모이는 군중을 무공해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이처럼 일상에서 버려지거나 그냥 사라지는 운동에너지·열에너지 등을 전기에너지처럼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을 ‘에너지 수확 기술’이라고 한다. 압전소자로는 파동과 진동에너지도 ‘수확’할 수 있다. 2009년 인텔은 TV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전파를 모아 전자 온도계를 작동시킬 만큼의 전기에너지를 생산했고, 스위스의 한 시계회사는 사람이 손을 흔들 때 생기는 진동에너지로 작동하는 시계를 개발했다. 또 다른 수확 원리인 열전효과는 금속과 같은 전도체에 온도차를 주면 전기가 발생하는 원리다. 열전소자를 이용하면 차량·발전소 등에서 흘러나오는 폐열은 물론 사람의 체온까지 수확해 전기로 만들 수 있다.

충전식 배터리 대체 가능


▎2. UNIST 손재성 교수팀이 제작한 열전발전기. 열전잉크와 압출형 3D 프린터로 소자를 제작하기 때문에 둥근 관 모양의 열원 형태에도 꼭 맞게 만들 수 있다. / 3. 영리법인 ‘쉐어라이트’는 저개발 지역에 제품을 무상으로 보낸다. 가나의 한 주민이 열전소자를 이용해 만든 무전력 램프 아래서 책을 읽고 있다. / 4. 소의 목에 부착된 스타트업 ‘우양코퍼레이션’의 센서. 발정기의 소는 활동량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데 센서가 이를 감지한 후 데이터를 주인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최근 스마트워치를 비롯해 저전력 에너지가 필요한 웨어러블 기기의 수요가 늘면서 에너지 수확 기술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충전식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이 2016년 내놓은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 기술동향과 산업전망’ 보고서는 육체의 움직임, 근육의 이완현상, 혈압이 만든 전력으로 바이오센서나 나노디바이스 등을 충분히 구동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에너지 수확 기술로 소형 센서를 작동시킬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인 수mW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마이크론(㎛)이나 ㎜ 크기의 초소형 센서나 인체 삽입 의료기기 등은 작동 때 단위부피당 0.1~10mW 크기의 전력을 소비한다. 단위부피 당 10~500mW 정도의 전력을 소비하는 스마트폰 등 휴대용 기기를 작동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려면 소자의 효율을 더욱 높여야 한다. 최창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원은 2015년 보고서에서 “(현재 소자 기술 발전 속도를 보면) 2020년경 열전발전 효율이 15%에 이르러 2025년에는 보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압전발전의 경우 “세계적 기술 수준이 원천 기술 개발 및 실증 단계라 단기간 내 상용화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이 기술을 이용한 창업과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설립 3년차 스타트업인 우양코퍼레이션은 배터리 없이도 쓸 수 있는 가축용 센서 개발에 성공했다. 이 회사의 김진홍 대표는 “가축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진동에너지가 나온다”며 “무선 신호 센서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0.1mA 정도의 전력이 필요한데 자체 개발한 압전소자가 진동에너지를 재료로 충분한 양의 전력을 만든다”고 말했다. 왜 가축용 센서일까. 김 대표는 “발정 시기를 확인하고 적당한 시점에 인공 수정을 하는 것이 소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중요하다”며 “센서는 소의 활동량을 감지하는데, 발정 시기의 소는 활동량이 크게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에너지 수확 기술로 창업에 뛰어든 이유로 ‘제품에 대한 확신’을 꼽는다. 그는 “현재 국내외 농가에서 쓰는 제품은 가격이 비싼데도 충전식 배터리를 달고 정보 송신 거리도 짧은 무선주파수인식(RFID) 기반 센서”라며 “우리 제품은 따로 충전이 필요 없고 정보 송신 거리가 긴 블루투스 기반이라 훨씬 편리하다”고 강조했다.

영리법인 쉐어라이트의 발광다이오드(LED) 램프는 버려지는 열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제품 하단에는 작은 양초와 찬 물이 담긴 컵이 있다. 열전소자는 이 가운데서 양초의 열에너지가 만든 온도차를 전기로 만든다. LED칩 제조 공장을 함께 운영 중인 쉐어라이트의 박은현 대표는 “공장에서 폐기되는 LED칩을 처리할 방법을 고심하다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박 대표는 이 램프를 아프리카·동티모르 등 저개발 지역에는 무상으로 보낸다. 온라인에서는 개당 2만5000원에 팔고 있다. 지난해 1200개가 팔렸다. 박 대표는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 중”이라며 “개당 수익은 5000원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단파장 자외선을 방출하는 폐 UVC-LED칩을 이용해 물 살균기도 개발 중이다. 손으로 돌릴 수 있는 수동 발전기를 장착했다. 그는 “램프를 공급한 지역을 방문했을 때 주민들이 깨끗한 물이 없어 어려움을 호소해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일러 배관이나 자동차 배기가스관 등에서도 사라지는 열에너지가 있다. 하지만 기존 평판형 열전소자는 관 모양에 맞게 모양을 변형시킬 수 없어 열에너지 수확이 어렵다. UNIST 신소재공학부의 손재성 교수팀은 이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했다. 지난 1월 16일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열전발전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한 것. 핵심은 ‘열전잉크’와 ‘압출형 3D 프린팅 기술’이다. 열전잉크는 잉크 형태의 열전소자로 3D프린터의 재료가 된다. 잉크와 3D프린터를 이용해 원하는 모양의 소자를 출력하는 것이다. 손재성 교수는 “(개발한 잉크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유기물 없이 무기물만 이용해 만들어 전기적 특성과 성능도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열전잉크의 성능지수는 상용화된 열전소재의 성능지수과 유사한 수준이다. 나노화학이 전공인 손 교수가 에너지 수확을 연구한 지는 10년째다. 그는 자신을 ‘나노 열전소재 전문가’로 소개한다. 손 교수는 “이전까지 열전소자는 변형이 어려운 벌크 형태로 많이 생산됐다”며 “(열전소자에) 나노기술을 더하면 사용 범위가 넓은 소자가 나올 거라 확신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개발국에 제품 무상으로 보내기도

설립 4년차를 맞은 스타트업 ‘이노마드’에겐 흐르는 물이 에너지원이다. 로켓 모양으로 생긴 이 회사의 제품 몸체에는 소형 수력 발전기가 들어 있다. 흐르는 물에 5시간 정도 담가 두면 스마트폰 2대, 노트북 1대를 충전할 수 있는 전력이 나온다. 제품의 이름은 ‘우노’. 길이는 24cm, 무게는 800g 정도다. 이노마드의 박혜린 대표는 “보조배터리처럼 들고 다니며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나온 이 제품은 3개월 사이 약 5000대가 팔렸다. 박 대표는 “전체의 95%가 해외에서 팔린다”며 “물 위에서 카약·카누 등의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의 창업은 대학생 시절 떠난 인도 여행이 계기가 됐다. 그는 “전력 설비를 갖추지 못한 마을이 많았다”며 “특별한 인프라 없이도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현재 마을 단위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듈형 전력소를 개발 중”이라며 “레고 블록처럼 원하는 개수만큼 발전기를 끼워 쓸 수 있어 기존 제품보다 많은 전력을 생산한다”고 말했다.

1424호 (201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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