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2) 아름다운 꽃은 혼자 피지 않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중매쟁이 유혹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
수분 이뤄줄 대상에 따라 꽃 색깔·향기, 꿀의 당도 다르게 선택

▎사진:© gettyimagesbank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좀 가신다 싶으면 어느 순간 붉게 변하는 섬이 있다. 푸른 남쪽 바다 거제 지심도와 여수 오동도가 대표적이다. 지금 이 섬에 가면 섬을 붉게 물들이며 꽃 대궐을 만들고 있는 수천 그루 동백꽃을 볼 수 있다. 이 속으로 들어가면 큼지막한 꽃으로로 천지가 붉디 붉다. 그러니 향기는 또 얼마나 아찔할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꽃 대궐엔 향기가 없다. 눈은 호사를 누리는데 코는 할 일이 없다. 더구나 멀쩡한 꽃이 툭, 통째로 떨어진다. 다른 꽃, 특히 곧이어 피는 벚꽃은 작은 꽃잎을 하나씩 흩날리며 흡사 봄날의 눈발 처럼 보는 이의 넋을 잃게 하는데, 이 꽃은 어느 날 툭 떨어지고 만다. 누군가의 말처럼 댕강, 허망하게 떨어져버린다. 그 모습이 마치 단칼에 사람 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절대 들이지 못하게 했다고 하던가(묘하게 꽃말은 청렴과 절조다).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소설가 김훈이 ‘꽃피는 해안선에서’ 이 붉은 꽃 무리를 보았던가 보다. 그는 이렇게 읊었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중략)…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이 꽃은 왜 이럴까? 자연은 먼 10억년 전, 내가 가진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해서 후손을 만드는 것보다 복잡하고 힘이 들긴 하지만 서로 유전자를 섞어서 후손을 만드는 게 훨씬 좋다는 걸 알았다. 내가 가진 유전자 반, 상대가 가진 유전자 반을 혼합해 더 강한 적응력을 가진 후손을 만드는 유성생식이다. 그래서 많은 동물은 좋은 시절이 온다 싶으면 짝을 찾아 나선다. 유라시아의 북쪽과 북아메리카에 넓게 퍼져 사는 불곰은 오로지 짝을 찾아 수백㎞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다.

식물은 그럴 수 없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운명이라 짝을 찾아 나설 수 없다. 그렇다고 주어진 운명에 순응만 하는 건 세상을 살아가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무슨 수를 내야 했다. 처음에는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 보냈다. 하지만 들이는 노력에 비해 성과가 별로였다. 수많은 꽃가루를 만들어 날린다 한들 그게 암술에 닿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순전히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바람이 항상 부는 것도 아니고, 어떤 때는 세고 불다가 또 어떤 때는 너무 약하게 분다. 종잡을 수 없다. 마치 비가 오기만을 바라는 천수답이 그런 것처럼 오매불망 기다려야 하고 우연을 믿는 수밖에 없다. 낭비도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스스로 짝 찾아 나설 수 없는 식물들


▎떨어진 동백꽃으로 붉게 물든 경남 거제 내도의 동백숲. 내도 동백은 2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절정을 맞는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벌과 나비 같은 전문 중매쟁이를 초대하는 것이다. 근데 초대한다고 올 것이며 설득한다고 선선히 수고해 줄까? 세상엔 공짜가 없고, 선의에 기대는 건 제 발등을 찍는 것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 제 살 길 찾기 바쁜 중매쟁이들은 순수한 자원봉사자들처럼 이타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런 세상의 이치를 알기에 식물은 중매쟁이들의 선의에 기대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고 유도했다.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달콤한 꿀을 준비해, 이들이 꿀을 먹는 사이 자연스럽게 꽃가루를 몸에 붙이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꽃 저 꽃 돌아다니면서 꿀을 먹는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일을 하도록,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꿀이 있다 한들 중매쟁이들이 모르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세상은 자기 능력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존재를 알아주는 법이 거의 없다. 알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니 어떻게 해야 할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알려야 ‘벌떼처럼’ 몰려든다. 그래서 탄생한 게 꽃이다. 꽃이 탄생한 이유는 하나다. ‘여기 맛있는 꿀이 있으니 와서 먹으라’는 표시다. 식당으로 치면 멋진 인테리어이고 홈페이지이며 화려하게 눈에 띄는 간판이다. 이뿐인가? 고급 식당일수록 고객을 대하는 디테일이 강하고, 특정 고객을 타깃으로 하듯 꽃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각각 선호하는 중매쟁이들이 따로 있다. 벌을 좋아하는 꽃이 있고 나비를 좋아하는 꽃이 있다.

벌을 부르는 꽃은 색깔부터 다르다. 노랗거나 파란 색으로 단장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 그러니까 벌이 좋아하는 색이기 때문이다(정확히 말하면 유난히 잘 보는 색이다). 이와 달리 새를 초대하는 꽃은 빨간 색 꽃을, 나비와 나방을 부르는 꽃은 특별히 꿀샘이 깊숙한 꽃을 만든다. 꿀샘이 깊숙한 꽃을 만드는 건 나비나 나방처럼 긴 입을 가지지 않으면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짝짓기에 도움을 주지도 않으면서 꿀만 먹고 가버리는 어중이떠중이 같은 사기꾼을 막기 위한 고객 맞춤화 장치이다. 빨대처럼 긴 입을 가진 고객에게만 허용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나방을 초대하는 꽃은 소박하다 못해 투박한데, 그도 그럴 것이 나방에게는 색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방은 캄캄한 밤에 활동하기에 시각보다 후각에 호소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아름다운 색깔 대신 아찔한 향기를 만든다.

역시 밤에 활동하는 박쥐를 중매쟁이로 선택한 꽃도 소박하지만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데, 하룻밤에 한 송이만 피우는 꽃이 많다. 아니 화끈하게 모든 꽃을 확 피우는 게 좋을 텐데 왜 감질나게 피우는 걸까? 다른 이유는 없다. 한꺼번에 다 피우면 한 번에 실컷 먹고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매일 밤마다 오라는 전략이다!

벌을 초대하는 꽃과 새를 초대하는 꽃도 전략이 다르다. 벌을 초대하는 꽃은 양은 좀 적지만 아주 단 꿀을 준비하는데 반해 남미 대륙에 서식하는 벌새를 초대하는 꽃은 양은 많지만, 당도는 낮은 꿀을 만든다. 새들은 한 번 방문할 때 벌보다 먹는 양이 많으니 이렇게 해야 한 번만 오지 않고 자주 온다. 우리가 보기엔 식물이 다양하니 꽃도 그렇구나, 싶지만 다 그럴 만한 각각의 이유가 있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고객을 부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지 않는가. 초대에 응한 고객이 편하게 즐기고 갈 수 있도록 해야 다시 올 것은 당연한 이치. 그래서 꿀을 먹을 때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손님들이 내려앉을 착륙장을 마련하는 건 기본 상식에 속한다. 어떤 꽃은 벌이 안정적으로 내려앉을 수 있도록 꽃잎에 우둘투둘한 돌기를 만들기까지 한다. 미끄럼 방지 장치다. 자신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많은 곳을 찾는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 벌들도 이런 곳을 더 많이 찾는다. 우리가 보는 꽃은 이런 노력과 배려가 한송이 꽃으로 승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니 아름답지 않겠는가.

1억4000년쯤 전 세상에 꽃 출현


▎산불 연기처럼 날리는 송화가루.
꽃은 언제부터 이 세상에 출현했을까? 원래부터 있었을 것 같지만 세상에 ‘원래부터’는 없다. 반드시 시작이 있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꽃도 마찬가지다. 꽃이 세상에 출현한 건 1억4000년쯤 전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람을 이용한 수분의 성공률이 적어 더 정확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찾은 결과다. 그러니 이런 꽃에는 식물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경험해온 세상의 원리가 들어있다. 대충하면 결과도 대충 나온다는 세상의 이치가 꽃 속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치밀하게 준비한다.

그러면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없는 데다 꿀도 없는 꽃은 뭘까? 이런 꽃은 짝짓기를 바람에 맡긴다. 바람에 맡기니 누구에게 아름답게 보일 일이 없다. 예를 들어 참나무가 그런 경우다. 워낙 많은 숫자이기에 나무 자체가 노랗게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가가서 보면 거대한 덩치의 나무에 비해 꽃은 아주 작다. 작아야 바람에 흩날리기 쉽고, 많아야 수분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데, 이런 꽃가루를 가능한 작게 많이 만들어 날린다. 인해전술 같은 무차별 배포 전략이다. 봄이면 주변을 뿌옇게 만드는 송홧가루를 날리는 소나무도 그렇다. 이런 식물을 풍매화라고 한다. 이 꽃가루는 머리카락 절반 굵기인 평균 0.03㎜(30㎛) 정도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우리의 목을 무사통과,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알레르기 비염이 생기는 이유다.

그렇다면 앞에 언급한 동백꽃은 왜 그럴까? 왜 꿀은 있는데 향기가 없고, 어느 순간 툭 떨어질까? 짝짓기를 해주는 동박새가 겨울에만 날아오니 겨울에 피는 것이고, 새가 좋아하는 색이 붉은색이니 그렇게 준비한 것이고, 향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굳이 내놓을 이유가 없다. 고객이 좋아하지 않는데 왜 하겠는가? 어느날 툭 떨어져버리는 것도 짝짓기가 끝나 더 이상 꽃을 달고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꽃이란 앞에서 말한 것처럼 고객을 위한 것인데 임무가 끝난 꽃을 왜 달고 있겠는가. 꽃을 피우는 것, 향기를 내뿜는 것 모두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기에 필요 없는 일에 힘을 쓰지 않는다. 고객 지향 외에는 관심이 없다.

각자의 이기적 행동이 서로를 번성하게 만들어

한마디로 아름다운 꽃은 홀로 피지 않는다. 아름다울수록 혼자 피는 꽃은 없다. 나홀로 아름답자고 피는 꽃은 없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피는 것도 아니다. 꽃은 누군가를 향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라는 상대가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몸짓이다. 이것이 꽃의 존재이유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몸짓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분명 꽃은 세상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걸 하는 것이고, 벌과 나비와 새도 꿀과 꽃가루 채취라는, 자기네가 먹고 살기 위한 일을 할 뿐이다. 둘 다 자신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는 이기적인 행위다. 하지만 이 이기적 행동이 묘하게 서로를 번성하게 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이뿐인가. 수많은 동물을 먹여살리는 생태계의 기반까지 제공한다.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잘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협력하고 공생하는 원리가 어떤 것인지 너무도 멋지게 알려주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다는 것인데, 자연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작동되고 있다.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법정스님의 [산방한담]. 바야흐로 봄이다. 꽃처럼 아름답게 살고 싶은가? 그럼 꽃처럼 해보라!

[박스기사] 무화과나무와 무화과말벌의 독점적 공생 - 아름답지만 위험하다! 긴밀한 파트너십

열대지역에 서식하는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는데도 열매를 맺는다. 보통은 꽃으로 벌이나 나비, 그리고 새를 불러들여 수분을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도 열매를 맺는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일까? 꽃이 없는 게 아니다. 열매 속에 꽃이 있을 뿐이다. 이 나무는 왜 꽃을 감추고 있을까? 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탄생한 것인데 말이다.

이 나무는 서로 헌신하는 딱 하나의 파트너가 있기에 자신을 홍보할 필요가 없다. 이 운명의 파트너는 무화과말벌. 무려 9000만 년 전부터 서로를 위한 공생을 해온 내력답게 둘의 협력은 정확하게 서로를 향해 있다.

무화과말벌의 일생은 이 열매 안에서 시작한다. 어미가 이 안에 낳은 알에서 먼저 나온 수컷은 열매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 안에서 짝짓기를 한다. 짝짓기만이 아니라 일생을 여기서 마감하기에 수컷은 바깥 세상을 알지도 못한다. 대신 녀석은 죽기 전 암컷을 위해 마지막 임무를 수행한다. 수정한 암컷이 밖으로 나갈 큰 구멍을 뚫어 놓는 것이다. 덕분에 수정한 암컷은 수월하게 밖으로 나가 다른 무화과나무 열매 속으로 들어간 후 그곳에 알을 낳고 역시 짧은 생애를 마친다.

이 과정에서 무화과나무의 수분을 해주는데, 다른 중매쟁이들처럼 몸과 날개에 대충 꽃가루를 묻혀 가는 게 아니다. 가슴주머니에 담아 가져간다. 무화과나무 열매 안에서 나고 자라는 대가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독점적인 이 상호공생은 둘에게 엄청난 이득이다. 무화과나무는 말벌과 그 후손이 살아갈 안전한 거처와 먹고 살 것을 마련해주고, 말벌은 나무의 수분을 전담한다.

나무는 다른 누구에게 보일 꽃을 만들 필요가 없어 소중한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말벌 또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위험한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역시 생산적이다. 그러니 9000만년이나 관계를 이어오고 있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십일까?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안전하고 좋은 운명적 관계이긴 하지만 서로에게 너무 의존적인 게 문제다. 만일 한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체할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둘은 아름답지만 위험한 관계다. 하긴 이 세상의 어떤 밀접한 관계가 그렇지 않겠는가? 장점의 뒷면은 단점이고, 세상 일이 다 그러한데 말이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images/sph164x220.jpg
1425호 (2018.03.19)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