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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이상보 '갑사로 가는 길'의 ‘부동심’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투자의 세계에는 수많은 유혹 존재 … 자신만의 철학 정립하고 절제해야

▎사진:© gettyimagesbank
문학작품 하나로 큰 의미가 담기는 장소가 있다. 가보면 보잘것 없는 데도, 사람들은 홀린 듯 끊임없이 찾아간다. ‘세계 3대 사기’라 불리는 독일 라인강변의 로렐라이 언덕,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도 그런 범주다. 로렐라이 언덕은 하이네가, 인어공주상은 안데르센이 영혼을 불어넣었다. 박경리의 [토지]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 악양들판,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된 평창군 봉평장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정말이지 이야기는 힘이 세다.

수행 중 처녀와 지내게 된 대사

계룡산 어귀에는 낯익은 절집이 있다. 갑사다. 갑사는 조그마한 절집이다. 해인사나 불국사처럼 화려한 문화유산을 품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겹다. 왜일까? 한때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인연 그 때문일 것이다. 수필 [갑사로 가는 길] 말이다. 수필가 이상보가 썼다. 수필 속 ‘갑사로 가는 길’은 동학사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갑사로 내려가는 등산로다. 중간에 남매탑이 있다. 실제로 걸으면 4시간 정도 걸린다. 배경은 함박눈이 내리는 토요일 오후다. 저자를 포함한 4명의 등산객은 동학사에서 등산을 시작한다. 산 어귀부터 계단으로 된 눈 덮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일행들은 정상 인근 계명정사에서 숨을 돌리는데, 뜰 좌편에는 남매탑이 있다.

‘갑사로 가는 길’에 특별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남매탑의 전설이다. 1400여년 전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당의 승려 상원대사가 이곳에 움막을 치고 수도를 하고 있었다. 억수 같은 비가 오고 천둥이 치던 어느 날 밤에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움막에 나타나 아가리를 벌렸다. 대사가 호랑이의 목안을 들여다 보니 인골이 걸려있다. 인골을 뽑아주자 범은 어디론지 사라졌다. 여러 날이 지난 후 호랑이가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버렸다.

포인트가 되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대사는 정성을 다해 기절한 처녀를 돌본다. 알고 보니 경상도 상주읍에 사는 김화공의 딸. 한겨울에 눈 덮인 산길을 홀로 내려 보내긴 어려워 대사는 이듬해 봄 처녀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하지만 그 겨울 내내 대사를 지켜본 김 처녀는 스님에게 반한 지 오래다. 대사의 불심과 청정한 도덕, 온화하고 준수한 풍모에 연모의 정이 생긴 처녀는 부부의 예를 맺을 것을 청한다. 하지만 대사는 고사한다. 수행정진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의남매가 되기로 한다. 둘은 함께 계룡산으로 돌아와 평생토록 남매의 정으로 지내며 불도에 힘쓰다가 서방 정토로 떠난다. 뒷사람들은 이들을 칭송하며 탑을 세운다. 그게 남매탑이다. 남매탑은 두 사람이 입적한 후 나온 사리를 수습한 사리탑이다.

아무리 정토수행 중이라지만 홀로 있는 남자의 집에 등장한 처녀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엄청난 절제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자는 ‘얼음장같이 차야 했던 대덕의 부동심’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예나 지금이나 부동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세상이 갈수록 자극적이고 물질적으로 변하다 보니 더 어렵다. 부동심(不動心)이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다른 말로는 평정심이다.

부동심이 어디보다 필요한 곳이 투자의 세계다. 수익에 대한 유혹에 휩쓸리다 보면 끝이 없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투자 철학 없이 단기 수익을 뒤쫓다가 ‘쪽박’을 찬 투자자를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다. 위인이라고 다를 바 없다. 근대과학의 아버지 뉴턴은 남해주식회사 주식에 투자했다 큰 손실을 봤다. 뉴턴은 처음에는 큰 돈을 벌었지만, 계속 오르는 주가를 보고 다시 들어갔다가 가격이 폭락하면서 빈털터리가 됐다. 뉴턴은 “나는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까지는 계산할 수 없다”고 한탄을 했다고 한다.

부동심을 유지해 성공한 유명인도 있다. 케인스다. 케인스는 주식투자에 성공한 몇 안 되는 경제학자다. 그는 “주식 시장에서 종목을 고르는 것은 미인대회의 우승자를 고르는 것과 같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투자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냉정한 조언이다.

성공한 투자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심을 강조한다. 워런 버핏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매일의 주가 변동을 무시하라”며 “자신의 능력 안에서 평가할 수 있는 기업만 상대하라“고 조언했다. 윌리엄 오닐은 19가지 투자실수를 통해 “주변 말이나 루머에 솔깃하거나 시장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주식을 사다 보면 실패한다”며 “떨어지는 주식은 붙잡으면서 오르는 주식은 조금만 이익 나면 쉽게 팔아서도 안된다“고 충고했다. 조지 소로스는 “자신만의 투자 이론과 원칙을 정해야 한다”며 “위기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말고 인내하라”고 말했다. 존 템플턴은 성공투자 21단계를 통해 “사고를 절제하고 효과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며 “겸손함으로써 이기라”고 조언했다.

공포와 환희가 교차하는 투자판은 심리게임에 가깝다.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투자자들이 얼마나 과열됐는가, 혹은 침체됐는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계량적 지표를 만들었다. 이른바 투자심리선다. 투자심리선은 최근 12일 동안 주가가 전일과 대비해서 상승한 일수와 하락한 일수를 계산해 12일 중 상승 일수가 며칠이었는가에 대한 비율을 따진다. 즉 ‘투자심리선=12일 간의 주가상승일수÷12일×100’이다. 기간을 12일로 한정한 것은 인간의 심리가 12일을 주기로 변동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12일 중에서 상승 일수가 6일이면 투자심리선은 50%가 된다. 일반적으로 투자심리선이 75%(12일 중 9일) 이상이면 시장이 과열된 것으로 보고 매도를 권한다. 반대로 25% 이하라면 바닥권으로 봐서 매수를 제안한다.

월스트리트의 격언 중에서도 절제를 요구하는 내용이 많다. ‘죽은 고양이의 반등(Dead cat bounce)’은 죽은 고양이도 위에서 던지면 약간 튀어 오른다는 뜻으로 하락장에서 살짝 튀어 오르는 것을 상승 전환으로 쉽게 오판하지 말라는 뜻이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을 수 있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마라(Catch a falling knife)’도 유명한 격언이다. 가격이 급락하는 주식은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는 데 쉽게 매수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무릎에서 사고 어깨에서 팔아라’ ‘달리는 말에는 올라타지 말라’도 과한 욕심을 부리거나 즉흥적인 판단을 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과한 욕심 부리거나 즉흥적 판단 삼가야

투자를 즐겨했던 유명인으로 마크 트웨인이 있다. 마크 트웨인은 한 때 금광에 투자했고, 여의치 않자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막대한 빚만 졌다. 정작 대박을 터뜨린 것은 소설이었다. [톰소여의 모험] 등으로 번 인세와 강연료가 파산 위기에 몰린 마크 트웨인을 살렸다. 마크 트웨인은 “10월은 주식투자에서 특히 위험한 달 중 하나다. 다른 위험한 달로는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남매탑의 전설에 심취한 저자는 몇 일 동안이라도 머무르고 싶지만, 계속 쏟아지는 눈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발걸음을 뗀 저자는 아쉬운 듯 읊조린다. ‘하나,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려 하고 땀도 가신 지 오래여서, 다시 산허리를 타고 갑사로 내려가는 길에, 눈은 한결같이 내리고 있다’.

1425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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