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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파장 어디까지] 미국을 망친 흑역사 되풀이 되나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1930년 보호무역법인 스무트-홀리법 제정 후 대공황 맞아 … ‘준비된 경제 대통령’ 후버가 경제 망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8일(현지시간)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8일(현지시간)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글로벌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 행정명령으로 서명 15일 후부터 철강 25%, 알루미늄 10%의 관세가 부과된다. 이 조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1월 11일 이 법을 근거로 조사한 내용을 백악관에 제출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캐나다와 멕시코는 고율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국은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일본·중국·유럽연합(EU) 등도 마찬가지로 면제 대상에 들지 못했다. 트럼프가 세계 대부분에 관세 폭탄으로 융단폭격을 한 셈이다. 트럼프는 한국 등에서 수입하는 세탁기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는 문제도 언급해 보호무역 정책을 확대할 의도를 드러냈다.

트럼프발 글로벌 무역전쟁 막 올라

EU는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강력 대응을 예고하고 있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한바탕 장군멍군식 관세 포격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U는 이미 미국을 상징하는 리바이스 청바지나 버번 위스키,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 등에 고율의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트럼프도 EU의 맞불작전에 질세라 EU가 철강과 알루미늄 고율 관세 부과에 반발해 보복 관세를 매길 경우 유럽산 자동차에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이다. 철강과 알루미늄은 더 큰 무역전쟁을 부르는 신호탄의 하나일 뿐이다. 바야흐로 트럼프발 글로벌 무역전쟁이 막이 오른 셈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철강과 알루미늄 업체 노동자들이 그의 뒤에 병풍처럼 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수입 제품에 이러한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는 서명 직후 연설을 하면서 ‘국가 안보’라는 말을 수 차례 언급했다. 국가 안보 차원에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매긴다는 논리다. 자국 철강산업을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호한다는 것은 겉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이다. 자신의 표밭인 중서부의 쇠락한 산업지대인 러스크 밸리 노동자의 표를 확보하는 것을 진짜 배경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번 관세 부과에 영향을 받는 모든 국가에 대해 대미 수출이 미국에 가하는 위협을 해소할 수 있다면 면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가 면제 협상을 빌미로 세계에 대미 흑자 해소, 즉 미국 상품 구매 압박을 가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철강 가공업, 건설산업 등에 부메랑


하지만 이번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부가가 미국 경제에 도움을 줄지는 미지수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3월 3일자에서 미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산업은 이미 쇠락해 종사자가 20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 해리티지 재단이 상무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이와 달리 철강과 알루미늄으로 가공 제품을 제조하는 노동자는 650만 명에 이른다고 쓴 소리를 했다. 글로벌 시장은 물론 미국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져 이미 수많은 업체가 공장 문을 닫고 사업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대신 중소기업을 포함해 철강을 가공해 다양한 금속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고율의 관세 부가 탓에 재료인 철을 더 비싸게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미국산을 쓰든, 고율의 관세가 부과된 수입산을 쓰든 철강 가공 업체의 원가 부담이 늘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철강을 많이 쓰는 미국 건설산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 경기 회복을 이끌어온 건설산업이 침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이번 무역 규제를 통해 현행 73%인 미국 내 철강공장 가동율을 80%로 끌어올려야 안보 위협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현재 연 3600만t 규모인 미국의 철강 수입량에서 1000만t 정도를 줄여야 한다. 문제는 이 정도 물량이 미국이 아닌 다른 글로벌 시장에 풀릴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를 통한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 제한은 풍선효과를 유발해 글로벌 시장에서 철강 과잉 공급과 치열한 시장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글로벌 철강 가격이 더욱 내려가고 미국과의 격차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가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을 제한하기 위해 높은 관세를 물리기로 한 근거는 무역확장법(Trade Expansion Act) 232조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수입 제품이 미국의 안보를 저해하는지 여부를 조사해 이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수입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매길 수 있게 한 조항이다.

미국은 왜 이러한 법을 만들었을까. 1962년 제정돼 그해 10월 11일 발효된 이 법의 전문에 제정 목적이 나와 있다. ‘첫째, 미국의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미국산 농업·광업·산업 제품 등의 해외 시장을 키우며 유지한다. 둘째, 공개적이고 차별 없는 거래로 자유세계와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한다. 셋째, 공산주의 경제의 침투를 막는다.’ 냉전적 사고가 엿보이는 내용이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며 동서 냉전의 장벽을 더욱 높게 쌓고 있었다.

특히 그해 10월 14~28일 계속된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이를 더욱 고조시켰다. 10월 14일 미국 고공정찰기인 록히드 U-2기가 쿠바에서 건설 중이던 소련의 SS-4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MRBM) 기지와 건설 현장으로 미사일 부품을 싣고 항해하던 소련 선박의 사진을 촬영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미사일 위기는 소련의 니카타 흐루쇼프 공산당 제1서기가 쿠바 미사일 배치를 철회하는 대신 미국은 소련 국경과 멀지 않은 터키에 배치한 미사일을 철수하기로 비밀 협상을 하면서 끝났다. 하지만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무역확장법에 서명해 해외 시장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키우고 해외 자유 세계와의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며 공산권이나 비동맹권과는 멀리하는 정책을 본격화하게 됐다. 미 의회는 이 법을 바탕으로 대통령에게 관세를 최대 80%까지 결정할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공산권이 붕괴해 냉전체제가 사라지면서 이 법은 사실상 사문화했다. 현재 세계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헌법에 명문화한 나라는 중국·베트남·라오스·쿠바의 4개국 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발족하면서 이 법은 더욱 쓸모가 없어졌다. 미국은 WTO 체제 출범 이후 99년 원유, 2001년 철강 수입품에 대해 이 법을 근거로 조사에 나선 적은 있었지만 보복 관세로 이어지진 않았다. 자유무역을 앞세워 다른 나라의 시장 개방을 압박하던 미국에 이 법은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트럼프가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이 법을 무덤에서 다시 끄집어 내서 철강과 알루미늄의 수입을 제한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판과 반발을 부를 것이 너무도 뻔하다. 게다가 이번 수입 제한의 대상은 ‘공산권’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이자 ‘자유세계’인 유럽과 한국, 일본까지 포함한다. 도대체 법에도, 논리에도, 국제사회의 현실에도 맞지 않은 조치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냉전시대 산물인 무역확장법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3월 5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조치 강화 대응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더구나 역사적으로 보호무역은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반대로 발목을 잡아왔다. 미국 경제사학자 존 스틸 고든은 저서인 [월스트리트 제국]에서 “대공황은 1929년 10월 29일 주가 대폭락이 아니라 이듬해 6월 17일 제정된 보호무역법인 스무트-홀리법 제정 이후 시작됐다”라고 주장했다. 1929년 10월 29일의 블랙프라이데이 주가 대폭락은 대공황의 상징적인 전조였을 뿐 이를 실제 이끈 것은 미국의 허버트 후버 당시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구체화한 스무트-홀리법에 서명한 1930년 6월 17일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사실 1929년 10월 29일 미국 증시가 폭락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 주가지수는 1930년에 들어서면서 상당히 회복해 대폭락 이후 전체 하락폭의 절반 이상으로 회복했다. 경제의 또 다른 지표인 소비와 기업 투자 등도 그렇게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1930년 5월 후버 당시 대통령도 “(블랙프라이데이) 이후의 공황은 끝났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정작 문제는 이 선언 다음 달인 6월 후버 대통령이 스무트-홀리법에 서명하면서 발생했다.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이던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보복 경고에도 후버는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신 기꺼이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후버는 이미 농산물 수입 관세를 높여 미국산 농산물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표밭인 중서부 농업지대의 유권자 표심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 상황에서 제조 업계의 관세 인상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경제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가 후버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그가 이 보호무역 밥안에 서명하자 영국 등 20여 나라가 미국산에 보복관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무역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스무트-홀리법에 따른 무역전쟁은 미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았다. 미국 경제는 만신창이가 됐다. 법이 시행된 1930년의 미국 수출은 52억4100만 달러를 기록했던 1929년보다 30% 이상 줄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기업 매출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기업 실적도 급속도로 악화했다. 기업에 운영자금을 빌려준 은행에선 부실 채권이 빠르게 늘었다. 견디지 못한 은행의 파산 사태가 발생하자 예금주들은 자신들의 돈을 지키기 위해 너도나도 예금인출에 나섰다.

이런 뱅크 런은 주가에도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일시 회복세를 보이던 주가지수가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1929년 블랙프라이데이 이후 주가 대폭락은 2개월 정도 지속됐지만 스무트-홀리법 제정 이후에는 주가 하락세가 무려 2년 6개월 가까이 지속됐다. 미국 경제가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공황으로 이어졌다. 대공황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의 허리를 휘게 했다. 미국 경제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대에 호황기를 누린 뒤 일시 회복과 침체와 갈림길에 있을 때 스무트-홀리법이 제정돼 자유무역을 막고 교역을 억제한 셈이다. 이에 따라 보호무역법이 없었다면 대공황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올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법안에 서명해 보호무역에 불을 당긴 후버 대통령은 역사 속 대통령 평가에서 늘 최악의 명단에 오른다. 20세기 미국의 최대 재난인 대공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후보 시절 ‘준비된 경제 대통령’으로 통했다. 상무 장관을 지내며 경제를 아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경제선거 공약을 내세워 대선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기업에 임금 상승을 종용하는 권위적이고 비경제적인 방식으로 빈곤 극복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경제시스템에 대한 지나친 간섭은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며 대공황이 눈앞에 왔는데도 개혁도, 영세민 지원도 거부했다. 보호무역의 시대를 연 것은 최악의 실수였다. 이 때문에 자신의 믿는 것만 앞세우고, 현실에 대한 이해와 성찰은 부족하다는 평을 듣는다. 이는 당시 미국민에게도, 후버 자신에게도 불행이었다.

경제 논리 아닌 정치 논리 따른 최악의 판단

불황 탈출 처방으로 보호무역 정책을 채택한 후버의 실패는 세계 정부에 커다란 교훈을 줬다. 경기 침체기가 오면 누구나 보호무역의 유혹에 이끌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현명한 정부는 시장을 닫는 일시적인 마약 대신 자유무역을 통한 장기적인 통상 확대를 처방전으로 냈다. 무역 적자를 비롯한 교역 불균형은 1980년대 플라자 합의처럼 다자간 환율 조정을 비롯한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역사적 교훈을 무시하고 있다. 트럼프는 과연 역사의 교훈을 뛰어넘는 천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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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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